[경향] 복지운동 시즌2

2014. 5. 28. 11:0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_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방선거가 일주일 남았다. 무상급식 공약이 판을 가르던 지난 지방선거와 달리 이번엔 그만한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기초연금법 통과로 박근혜 정부에서 논란을 거듭했던 여러 복지 쟁점들이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정부에는 예산에 맞춘 복지공약 ‘정비’이고 국민들에겐 약속을 어긴 ‘후퇴 혹은 사기’이다. 복지운동의 입장에선, 무상급식으로 촉발되었던 복지 바람이 한 순환을 마무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즌2를 준비하며 지난 시기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본다.

 

나는 지난 복지운동의 가장 소중한 성과로 시민들의 복지 인식을 꼽는다. 과거에 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시혜’였다. 복지는 인권, 민주주의처럼 시민 모두가 누려야 하는 ‘권리’가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위한 ‘배려’였고, 수급자에겐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지금은 어떤가? 다수 시민들이 아이를 낳으면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고, 대학생들의 공부 비용은 사회가 분담해야 한다고, 대한민국을 일군 어르신에겐 최소생활비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자신을 포함해 사회구성원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복지를 여기게 된 것이다.

한계도 드러났다. 복지 바람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시민들이 무상급식, 무상보육을 누리게 되었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량은 애초 그대로이다. 취약계층에게만 제공되는 공공부조 복지도 그 자리에 묶여 있다. 2008~2013년 중앙정부 총지출 증가율이 5.3%였지만 정작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이보다 낮은 3.5%에 그쳤다. 지방정부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국고보조 복지사업에 대응 예산을 대느라 어려운 지역주민에게 주로 제공되는 자체 복지 지출은 2009년보다도 줄어들었다. 행정부가 복지예산 압박을 세입 확충이나 지출 혁신으로 해소하기보다는 공공부조 복지와 지방정부로 전가한 탓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그러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개별급여로 전환한다, 부양의무자제를 완화한다고 요란을 떨지만 작년(추경) 대비 올해 기초생활보장급여는 8조7700억원에서 8조8200억원으로 500억원, 0.5% 증가에 불과하다. 7월부터 인상되는 기초연금 재정부담도 고스란히 지방정부에 추가된다.

주변 어르신을 만나면 20만원으로 오르는 기초연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여기서도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은 배제된다. 기초연금을 받지만 같은 금액이 생계급여에서 깎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기초연금과가 20만원을 지급하면 곧바로 기초생활보장과가 20만원을 공제하는 어처구니없는 구조이다. 보건복지부는 외국도 그러하다고 변명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공공부조가 빈약한 곳에서는 기초연금은 별도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7월부터 대한민국 노인 대부분의 현금소득이 10만원 느는데 유독 기초생활 노인들만 제외하는 건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기초연금 도입으로 노인빈곤율을 완화하겠다는 정부 주장과도 정면 배치된다.

이제 복지도 균등하게 발전해야 한다. 복지운동 시즌2는 취약계층 복지와 함께 전진해야 하고, 뒤처졌던 지난 시기를 생각하면 더욱 이들에게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 시작이 가장 가난한 40만 노인의 기초연금 권리 보장이다. 기초연금을 공공연하게 ‘줬다 뺏는’ 일을 우리 사회가 용납해선 안된다.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수급자 ‘소득의 범위’ 조항에 기초연금을 별도로 인정한다는 문구 하나만 넣으면 되는 일이다.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노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야당, 시민, 사회복지사들이 가난한 노인도 7월부터 기초연금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그 활력을 바탕으로 기초생활보장제를 개혁하고 지방 복지예산 보전도 요구해 나가자. 지방선거에서 복지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고 현안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여기 중요한 과제가 놓여 있다. 복지증세를 통해 보편복지를 더 키우면서 빈곤 노인, 장애인, 세 모녀도 함께 복지를 누리는 시즌2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