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IN> "20만원 주더니 20만원 내놓으라고?"

2014. 5. 30. 10:5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_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보건복지부가 7월로 예정된 기초연금 지급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지난주 국무회의에서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어르신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수요자인 어르신의 입장에서” 임하라고 지시했다.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 그런데 기초연금에 존재하는 심각한 사각지대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기초연금 시행 준비 과정에서 반드시 보완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현재 기초연금에서 배제되는 두 노인 집단이 있다. 하나는 상위 30% 노인이다. 상위계층 배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아예 거론조차 되지 못한 또 하나의 집단이 있다. 바로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 40만명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다. 현재 하위 70%에 해당되어 매월 약 1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받는 게 아니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감액당한다. 생계급여는 최저생계비 기준액과 개인별 소득인정액의 차액만큼 지급되는데, 기초노령연금이 소득인정액에 포함되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7월부터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연금으로 이름이 바뀌고, 금액이 20만원으로 인상되어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분들은 먼저 기초연금 20만원을 받고 곧바로 생계급여에서 20만원을 감액당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정부는 모르고 있을까? 뻔히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의 소득인정액에서 기초연금을 제외하면 된다. 그러면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아도 이것이 생계급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가 무척 완강하다. 생계급여가 최저생계비와 소득인정액 차이를 보전하는 보충급여제도이므로 기초연금이 지급되면 그 금액만큼을 빼야 한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꼭 그럴까? 현재 어린이집 아동에 대한 보육료 지원, 집에서 돌보는 아동을 위한 양육수당(월 10만~20만원)은 생계급여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이 복지급여를 생계급여와 별도로 받는다. 아동에게 지급되는 보육복지를 소득인정액에 포함하지 않듯이, 노인에게 적용되는 기초연금 역시 그리하면 되는 일이다.

 

정부는 또 이유를 댄다. 외국에서도 기초연금이 소득인정액에 포함된다고. 이는 선진국처럼 공공부조 복지가 일정한 수준에 이른다면 용인될 수 있는 이야기다. 한국은 어떤가? 낮은 최저생계비와 재산까지 소득으로 간주해서 부풀려진 소득인정액 때문에 실제 받는 생계급여가 매우 빈약하다. 한국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취약한 곳에서는 기초연금을 별도로 지급하자는 제안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그러자 정부는 또 다른 이유를 댄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이 기초연금을 별도로 받으면 차상위계층 노인보다 소득총액이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풀고자 하면 답은 바로 나온다.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별도 소득으로 인정하면 이 문제 역시 해소될 수 있다.

 

정부가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추가 예산이 부담스러운 거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이 기초연금을 온전히 받고, 차상위계층 일부 노인도 새로 수급자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게 묻겠다. 지난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가 고작 129만명, 인구의 2.7%다. 한국에서 절대 빈곤에 처해 있는 사람이 이만큼뿐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들에게 복지를 조금 확대하는 게 그리 용납할 수 없는 일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한국형 복지국가’가 그런 것인가? 또 묻겠다. 2012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무려 49.3%, 노인 중 절반이 빈곤 상태에 있다. 정부가 기초연금을 도입하면서 강조한 것도 심각한 노인빈곤율 완화였다. 하위 70% 노인이 기초연금 인상으로 혜택을 받는데 이 중 유독 가장 가난한 노인들만 배제되어도 괜찮단 말인가?

 

국무총리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어르신의 입장에서 기초연금 시행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지만 공무원들은 여전히 관료적 타성으로 기초연금을 다루고 있다. 국무총리로는 영이 안 서는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가장 가난한 노인들에게도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하라.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3조 ‘소득의 범위’에 기초연금을 양육수당처럼 소득인정액 산정에서 제외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 행정부의 기초연금 준비 작업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