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안철수가 버린 기초연금에 관한 진실

2014. 5. 14. 10:4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2014.05.19 제1011호]
[경제] ‘모든 노인 20만원 지급’에서 ‘70% 노인 차등지급’으로 후퇴한 기초연금법…
실체와 의미 따지지 않고 시작된 거대한 부실공사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여당이 제안한 기초연금법 개정안 수용 여부를 논의하려고 비공개로 열린 의원총회장으로 향하는 동안 회의장 들머리에서 국민연금바로세우기국민행동 등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기초연금법안에 반대하는 팻말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 5월2일 기초연금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본회의 하루 전에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안철수 대표는 기초연금 정부안 통과에 협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히며 말했다. “제가 책임지겠다. 정치적 결단으로 받아달라.” 안철수 대표의 기존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 기사를 읽으며 계속 ‘책임’이라는 단어가 내 귀를 맴돌았다. 정치적 거취라면 당연히 그의 몫이지만, 만약 노후복지 체계를 훼손하는 심각한 결정이었다면 그가 국민의 노후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의 재정 책임을 정하는 일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의가 필요한 게 연금 개혁인데,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10년씩이나 인내를 감수하는 게 연금 논의인데, 이것이 정치인 개인의 책임 선언으로 좌지우지될 수 있는 일인가?

 

안 대표의 입장은 ‘정부안에 반대하나 지방선거를 감안해 통과에 협력하겠다’로 요약된다. 안 대표는 본회의 직전 일사천리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강한 어조로 반대 토론문을 읽어 내려갔다. 본회의 상정을 위한 여야 약속대련이었고 일부 언론으로부터 관제야당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까지 들었지만, 공식적으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안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노인에게 동일하게 기초연금 20만원을 드린다”고 약속해놓고 이를 파기했다며 3가지를 근거로 들었다. ‘전체 노인에서 70% 노인으로’ ‘균등지급에서 차등지급으로’ ‘국민연금과 별개에서 국민연금과 연계로’. 모두 맞는 비판이다.

그런데 반대 토론을 들으며 과연 안 대표가 지금 상정된 법안의 진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초연금법안에는 안 대표가 지적한 내용을 넘는 꼼수와 독소 조항이 포함돼 있었는데도, 정작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서둘러 기초연금법을 통과시키자는 제안을 따른 새정치연합 국회의원 대부분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안 대표가 외면했던, 박근혜 정부 기초연금의 진실을 하나씩 짚어보자.

 

 

다른 나라에서는 10년씩 논의

 

첫째, 이번 기초연금법 통과로 우리나라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봉쇄될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족보가 다른 제도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재원으로 가입자들에게만 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이고, 기초연금은 조세를 기반으로 65살 이상 노인에게 기여 여부와 무관하게 지급하는 사회수당이다. 이제 두 제도가 얽혀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기초연금을 덜 받게 된다. 기초연금에는 감액의 손실, 국민연금에는 신뢰의 타격이 가해졌다. 전자에 대해 정부는 그만큼 재정을 절감한 것이라 평가한다. 보편적 또는 선별적 기초연금에 대해선 상호 나름의 근거가 있으니 여기선 이 주제를 논점으로 삼지 않겠다. 대신 후자인 국민연금 신뢰 훼손은 정부가 변명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2007년에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기본 축은 국민연금이다. 미래 재정 불안을 더 크게 안고 있는 제도 역시 국민연금이다. 이는 앞으로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국민연금을 손봐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결국 점진적으로 보험료 인상 논의를 벌일 수밖에 없고, 이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국민연금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미 기초연금에서 불이익을 받은 국민에게 이후 어떻게 국민연금 개혁을 제안할 수 있겠는가? 연금 개혁에서 근시안적 태도만큼 위험한 건 없다. 당장 기초연금 재정 조달 책임을 줄여보고자 미래 연금제도 불안을 심화시키는 이번 기초연금이 그렇다. 고령화 시대 국정운영 세력으로 여야 모두 자격 미달이다.


둘째, 정부가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절충안’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정부안은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기초연금이 더 삭감되므로 저소득 장기가입자가 고소득 단기가입자에 비해 기초연금을 덜 받는 형평성 문제를 지닌다. 이러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연금 수령액이 30만원 이하인 노인에게는 가입 기간과 무관하게 20만원을 지급해 저소득 장기가입자들이 감액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정부가 절충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다.

 

 

고소득 단기가입자가 더 이익

 

과연 향후 대다수 노인에게 해당될 국민연금 연계와 전체 노인의 2%(12만 명)에 적용되는 보완책을 섞은 게 절충일 수 있을까? 주고받은 몫의 크기가 너무 다르다. 게다가 이 보완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효과가 사라지는 미봉책일 뿐이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성숙할수록 가입자들의 연금액은 높아질 예정이다. 대부분이 30만원(현재 가치)을 넘기에 기초연금에서 감액당하게 된다. 저소득 장기가입자와 고소득 단기가입자 노인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되돌아 생길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정부가 제시한 절충안의 수용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임에도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나 안 대표의 반대 토론에서나 이에 대한 지적이 없다. 검토 없이 정부 절충안에 협력했다는 이야기다.

 

셋째, 기초연금은 당장은 20만원으로 오르지만 이후에는 현행 기초노령연금보다 금액이 작아지므로 엄격히 평가하면 이번 연금 개혁은 ‘개악’이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이 법 취지대로 단계적으로 오른다고 가정하면, 약 8년 뒤부터는 오히려 기초노령연금이 유지되었을 때의 예상액보다 기초연금이 작아진다. 이는 조만간 노인이 될 50대 베이비부머뿐만 아니라, 남은 노후 기간을 감안하면 현재 노인들에게도 연금 손실을 의미한다. 기초연금의 인상 기준이 현행 가입자 평균소득(A값)에서 물가로 바뀐 탓이다. 정부의 공식 전망 수치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은 소득증가율의 절반에 불과하기에 물가와 연동되는 기초연금 인상 속도도 그만큼 더뎌진다.

 

이는 또 하나의 중대한 공약 위반이다. 박근혜 후보의 대선공약집에 기초연금액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의 10%’로 명시돼 있다. 어디에도 20만원이라는 수치는 없다. 단지 현재 평균소득이 200만원이므로 기초연금이 20만원으로 논의되는 것이다. 공약에 따르면, 10년 뒤인 2024년에는 평균소득이 약 400만원으로 오르니 기초연금도 40만원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인상 기준을 소득에서 물가로 바꾼 까닭에 10년 뒤 기초연금은 약 30만원에 머물고, 금액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진다. 2030년대 말에는 소득 연동이면 80만원이어야 할 기초연금이 40만원으로 반토막 난다.

 

 

»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앞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참여단체 회원들이 ‘국민행복연금위원회 탈퇴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5년 주기로 노인 생활수준, 소득, 물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정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4년간 물가에 맞춰온 기초연금을 갑자기 크게 올리거나 내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물가 연동과 다름없다. 정부 스스로도 여러 설명 자료에서 기초연금이 물가와 동행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심지어 정부의 기초연금 설명 수치도 뒤죽박죽이다. 정부는 향후 기초연금 감액폭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재정추계는 소득 연동으로 발표했다. 복지 전문가들도 정부안의 수치를 이해하고 검증하기 어렵게 된 이유다).

 

 

거짓말 밝힐 기회 내버린 야당

 

넷째,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의 진실이 장막 뒤로 숨게 되었다. 아직까지 국민 대다수는 기초연금 공약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이었는데 당선 이후 재정의 어려움으로 축소 수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애초 공약이 ‘국민연금 연계 차등지급’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주목한 몇몇 언론의 취재에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 기초연금 공약을 설계한 안종범 의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모두 애초부터 공약이 ‘차등지급’이었다고 인정했다. 선거 직전에 발표돼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약집 재정소요 자료에도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데 필요한 재정의 59%만 책정돼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초연금 공약 문구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 운영’으로 명기된 심오한 속뜻도 비로소 드러났다. 당시는 주목하지 못했지만 선거 3일 전에 열린 TV토론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그것(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 체제에 포함시켜서 그렇게 되면 비용도 줄일 수 있고”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정작 모든 거리 현수막에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어르신에게 20만원”만 적었다. 모두에게 20만원을 준다고 공약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에도 정정 요청을 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모두에게 20만원을 주는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국민연금 연계 차등지급’이라는 진실을 고의로 숨긴 것이다. 이러면 기초연금 공약은 당선 이후 ‘공약 수정’이 아니라 당선을 위해 공약 실체를 속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안 대표는 이 문제를 규명하는 데 나서지 않았다. 끝내 정부안 통과에 협력함으로써 기초연금 공약의 진실을 규명할 기회까지 내버린 셈이다.

 

결국 안 대표는 문제투성이인 기초연금안 통과에 사실상 최대 조력자 역할을 했다. 안건의 실체와 의미를 제대로 따지지도 않았다. 이런 게 대형 사고를 낳는 부실 공사다. 기초연금이 지방선거에 미칠 유불리는 주목했지만 미래 국민연금에 줄 악영향은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정부가 제시한 절충안의 수용을 의원들에게 강요할 뿐 그 효과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점검하지 못했다. 물가 연동이라는 중대한 설계도 변경이 가해졌음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허위 사실 공표가 있었다는데 진실 규명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세계 연금 개혁 역사에 ‘졸속 심의’의 대표 사례로 기억될 만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정치적 결단이라고? 고령화 시대 연금제도를 이리 서둘러 처리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집권당이 공약을 허위로 홍보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훼손해도, 물가 연동으로 미래 연금액을 대폭 삭감해도 이를 그대로 용인하는 정당이 보편복지 야당인가? 책임지겠다고? 연금제도 불신은 커지고 나의 노후는 더 불안해지는데,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새정치’ 단어가 가엾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