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그렇게 살지 않겠다

2014. 4. 27. 16:1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12년 경영하던 회사가 송두리째 무너질 때 나는 내가 끝까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줄로 알았다. 힘들었지만 재수가 좋았던 덕에 나는 직원과 거래처 모두를 구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이제 와 고백하건대 내 목숨은 예외였으니, 내가 바친 모든 것은 내 목숨의 대가였다. 자기 목숨 걸고 어떤 책임을 진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우랴. 굳이 목숨까지 원치 않는 일이라 해도 난 그 뒤로 되도록 책임지는 일은 맡으려 하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일이 하나씩 늘어나면 남몰래 실속의 잣대로 재서 그 가운데 어떤 책임은 체면 구기지 않으며 벗어던지고자 별별 수를 다 썼다. 그렇게 살았다.

권력을 누리면서 책임을 팽개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책임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으려면 권력을 탐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인면수심으로 부와 권력과 명예를 탐하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자들에 비한다면 이런 안빈낙도의 도피가 어찌 욕먹을 짓이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살았다. 또다시 고난의 길에 들어서지 않고자 그저 내 앞가림 말고 더 넓게 세상을 보려 애쓰지 않았다. 명백한 불의와 싸우는 일에도 나 혼자 바보처럼 매달리면 손해니 명분 잃지 않으면서 발길을 끊는 재주를 익혔다.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마음속 모든 규칙이 느슨해지고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몰가치의 관용만이 늘어났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사정이 있게 마련이고, 악역 맡은 사람들도 오죽하면 저러겠느냐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대충대충 결과만 좋게 뽑아내면 된다고 허용해줄 때가 늘어났다. 나이 쉰에 이제 와서 그렇게 산 게 부끄러워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는 말이다.

비가 올 확률이 70%가 넘는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지금 당장은 비가 오지 않으니 우산 들고 나가는 게 귀찮아서, 또는 사무실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우산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맨손으로 집을 나서는 일이 자꾸 늘어난다. 결국은 누군가 써야 할 우산을 내가 대신 쓰지는 않았을까? 사무실의 누군가는 준비하기 귀찮아하는 나 대신 머리에 비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도로 한복판에서 신호등이 멎을 줄 알면서도 조금 빨리 가고자 건널목에 몸을 내던지고 달려간다. 서 있던 차들이 빵빵대지만 내 앞사람만이 아니라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믿고 손잡고 달린다. 설마 차가 나를 치기야 하랴. 그 뻔뻔한 배포로 무사히 길을 건너간다. 누군가는 1분 1초 아까워하는 나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었을 수도 있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뒷자리에 앉으면 가끔 안전띠 매기가 귀찮아서 그냥 가곤 한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도 그럴 때가 있다. 경찰 단속 때문에 매는 게 아니라 내 안전 때문에 매는 건데 왠지 그게 권력을 조롱하는 행동같이 느껴져 그런 바보짓을 한다. 지하철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다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밀고 들어가는 무리에 내가 섞여 있지는 않지만 그들보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싫다. 싸우기 귀찮아서 그들의 이기심을 눈감아준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인정 넘치는 관심을 베푸는 건 그저 오지랖이라고 조롱한 적도 있다. 모임 끝나고 다들 청소할 때 난 눈 나쁘다는 핑계로 슬쩍 빠진 적이 많다. 지나친 경쟁과 학벌 중시 풍조가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내가 학벌 때문에 우대받는 걸 가끔 당연시했고 우리 아이는 그래도 대학 잘 갔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재활용 쓰레기를 나누어 버려야 하는데도 깡통 모으는 곳에 플라스틱 병을 버리고는 꺼내지 않은 적이 있다.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그러니 제발 살아 돌아오라고, 그 어둡고 추운 곳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라고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손 맞잡고 빌어도 오지 않는구나. 아, 잘못했다. 내가, 우리가 잘못했다. 원칙을 지킬 줄 모르고 대강대강 편하게 돈 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해도 된다고, 그렇게 살아도 될 거라고, 그럴 거라고 말한 우리가 잘못했다. 그러니,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