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7. 16:13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며 핵심 이유로 과도한 부채를 든다. 그런데 중앙정부에 의해 발생한 부채 증가분이 69%나 된다. 정부 먼저 기존 정책과 역할을 점검해야 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박근혜 정부 들어 공공기관 정상화가 고강도로 진행되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공기관 정상화는 일회성 소나기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 5년간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정부 쪽 사정에 밝은 지인도 말을 거든다. “역대 정부마다 정권 초기에 공공기관 개혁을 내세웠지만 거의 용두사미에 가까웠다. 이번엔 다른 것 같다. 정말 칼바람이 분다”라고.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건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을 담당하는 기구도 만들었고 매년 10월10일을 ‘공공기관 정상화 데이’로 지정해놓은 상태다.
이번에는 정말 공공기관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목표가 공공기관 노동조합이 가진 후생복지 항목들을 손보는 것이라면 성과를 거둘 듯하다. 노동조합 역시 시민의 눈높이에 어긋나는 단체협약 조항들을 고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전에는 혜택을 보는 대상자가 소수이더라도 노동조합의 존재를 과시하는 자랑거리로 여겼는데 이제 특혜로 비판받는다면 홀가분히 정리하는 게 낫다. 그런데 후생복지 항목들이 정비되면 공공기관 개혁이 이루어진 것일까? 시민들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실한 벗으로 공공기관을 받아들일까? 아니다. 박근혜 정부 개혁에는 진짜 중요한 알맹이가 빠져 있다. 공공기관 정책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정부 자신의 개혁 조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추진된 핵심 이유가 과도한 부채이다. 2012년 기준으로 공공기관 전체 부채가 거의 500조원에 육박했다. 2007년 249조원이던 공공기관 부채가 5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 어떻게 해법을 마련할까? 첫 번째 순서는 부채 증가의 원인을 진단하는 일이다.
지난해 6월 감사원은 2007~2011년 부채가 많이 늘어난 9개 공기업을 진단했다. 이 공기업들에서 4년간 늘어난 금융부채 106조원을 원인별로 분석했는데, 이 중 69%가 사실상 중앙정부 책임이었다. 먼저 중앙정부가 결정한 정책사업에 따른 부채가 41%였다. 정부가 수요와 공급 가능 여부를 검토하지 않고 LH공사에 무리하게 보금자리 주택의 조기 건설을 지시했고, 4대강 사업을 수자원공사에 떠맡겼다. 사업타당성을 부풀려 도로공사에 고속국도를 건설하게 하고, 부실해진 인천공항철도를 철도공사에 떠넘겼다. 중앙정부의 요금정책에 따른 부채도 16%를 차지했다. 원가에 연료비 비중이 큰 가스와 전기의 경우 연료비 변동분이 요금에 반영되지 못했고, 철도의 경우 물가상승률 이하로 요금 정책이 통제되어왔다. 공공요금 관리는 나름 바람직한 정책이지만 이로 인해 부채가 늘었다면 책임은 분명 중앙정부에 있다. 해외 사업도 전체 증가 부채의 12%를 차지했다. 해외 사업은 형식적으로는 공공기관 이사회가 결정한 사업이지만, 중앙정부가 해외 자원 자주개발률을 설정하고 해당 공공기관에 특정 시점까지 반드시 달성하도록 관리해왔다. 심지어 그 결과를 경영평가에 반영해 감독해왔다는 점에서 이 역시 중앙정부가 초래한 부채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정책 사업, 요금 통제, 해외 사업 등 사실상 중앙정부 정책에 의해 발생한 부채가 전체 부채 증가분의 69%를 차지하고 공공기관 자체 사업에 의한 몫은 31%에 불과하다(이것 역시 투자자산 형식으로 존재한다).
공공기관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도대체 뭐 했나
정부의 낙하산 인사도 공공기관 불신을 가중시키는 행위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하지만 근래 국회에서 ‘공공기관 친박 인명사전’이 나올 정도로 낙하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정권 측근들의 전리품으로 여겨지고, 이들을 통해 정부의 무리한 사업들이 공공기관에 전가되는 일이 반복될 조짐이다.
공공기관을 정상화하겠다고? 지금까지 공공기관을 총괄해온 게 기획재정부다. 기획재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감사원 보고서에서 확인되듯이 공공기관 부채를 진단하고 해법을 마련하려면 가장 큰 책임을 지닌 중앙정부가 자신의 기존 정책과 역할을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낙하산 인사를 중단해야 하지 않겠나?
공공기관이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라 시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복지와 공공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이다. 그만큼 공공기관의 임무가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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