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기초연금 협상, 야당은 당당하라

2014. 4. 11. 16:2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기초연금 국회 협상을 볼 때마다 의아하다. 공약을 어기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의 협상 태도가 무척이나 꼿꼿하다. 국민연금 연계 차등지급에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야당은 연달아 수정안을 내놓는다. 이미 지급대상을 70%로 양보했고 소득연계라면 차등지급도 받아들이겠단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다행히 새정치연합 안철수 대표가 여야 합의처리를 위해 정부안 수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휘둘리는 모양새이다.

야당이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 혹시 다음 두 가지 때문이라면 생각을 달리하기 바란다. 하나는 7월 미지급 사태에 대한 우려이다. 정부는 이대로 가면 7월 20만원 인상이 불가능하다며 큰소리친다. 정부안의 발목을 잡은 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을 거란 협박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는 그러했다. 정부안을 가지고 협상을 벌여 왔고, 야당의 반대로 정부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주만 지나면 정부안은 최종 수명을 다한다. 7월 지급 여부는 지방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지만 사전 정비사항이 많은 정부안은 논의 테이블에 남기 어렵다. 결국 7월 지급을 위한 현실적 수단으로 야당이 제안한 현행 기초노령연금법 개정만 남는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70% 노인에게 우선 20만원을 드리고 이후 국회에 특위를 설치해 연금개혁을 논의하자는 법안도 제출돼 있다. 기초노령연금법의 수치 하나만 바꾸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조정안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이 방안을 계속 거부할 수 있을까? 7월 20만원 지급을 무산시키면서까지 말이다. 이제 기초연금 정세 구도가 바뀌고 있다. 야당은 자신감을 가지고 논의를 주도해 가기 바란다.

또 한가지. 정부는 국민연금 연계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후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게 된다고 위협한다. 내 판단엔 오히려 거꾸로다. 정부안이 훨씬 미래 세대의 어깨를 억누른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상이한 재정구조를 지닌다. 기초연금은 그해 필요 재정을 그해 세금으로 충당하는 부과방식 연금이다. 받을 연금액과 내야 할 세금을 그해 당사자들이 결정하고 책임진다. 반면 국민연금은 우리 세대가 미래에 받을 연금액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부족 재정은 지금 의사결정과정에 없는 후세대가 책임지는 구조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이 5년 주기로 재정추계 작업을 벌이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명하고 있는 이유이다. 국민연금 제도 안에서 현세대와 후세대의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급여를 내릴 수 없다면 앞으로 보험료 인상 논의도 벌여야 한다.

정부의 기초연금안이 관철되면 국민연금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민연금 가입자는 기초연금에서 감액당했으므로, 즉 국민연금으로 인해 기초연금액이 줄었으므로 향후 국민연금 개혁에 동참할 이유가 약해진다. 국민연금 논의가 사실상 봉쇄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적연금은 국민연금 중심체제이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후세대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 문제는 국민연금 내부 개혁을 통해 풀어야지 기초연금을 깎을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 공약 파기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애꿎게 국민연금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도대체 더 어려운 국민연금 재정 과제는 어찌하려 하는가? 국정운영자에게서 미래 국민연금에 대한 책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연금정책에서 근시안만큼 위험한 건 없다.

연금개혁은 현세대와 후세대의 책임 관계를 다루는 중대한 일이다. 선진국들이 십년 이상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개혁안을 만드는 이유이다. 우린 어떤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국민연금 연계방안이 강행되고, 기초연금 설계도의 핵심인 산정기준이 가입자 평균소득에서 슬그머니 물가로 바뀐다. 세계 연금개혁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우롱을 이대로 놔둘 것인가? 야당의 야성이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7월 미지급, 후세대 부담 등 정부와 여당이 퍼붓는 위협에 주눅 들 이유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당당하게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