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갈팡질팡 기초연금안

2014. 3. 13. 11:4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나는 기초연금이다. 문을 닫는 3월 홀수 달임에도 나 때문에 국회가 열리고 있다. 어르신에게 하루가 급하다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요구 덕분이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도 어젯밤에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지금 국회에서 쟁점은 국민연금 연계에 따른 감액 지급이다.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하라고 독려해놓고 이제 와서 가입기간만큼 감액하겠다니 황당한 일이다.

어젯밤 집안사람들이 급히 모인 것은 다른 이유에서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물가 연동’의 위험성을 성토하는 자리였다. 차라리 우리 성을 갈자는 탄식까지 나왔다. 2007년에 태어난 나는 소득 연동이라는 유전자를 부여받았다.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에 맞추어 매년 자란다. 내가 나기 전에는 물가와 소득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물가 연동을 제안했는데 새누리당과 진보정당의 강력한 요구로 소득 연동으로 정해졌다.

지금 내가 7살이 될 때까지 소득 연동 방식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 대통령선거 이전에도, 심지어 당선 이후 공약 사기 논란이 벌어질 때도 소득 연동은 논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박근혜 후보 공약집에도 기초연금 목표는 가입자 평균소득의 10%로 명시되어 있다. 그 몫을 계산하면 올해 20만원이고 나중에 소득 증가에 따라 함께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소득 연동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나의 유전자이다. 그러니 작년 10월 정부가 입법예고안을 공개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소득 연동이 물가로 교체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국민연금 연계에 쏠려 있을 때, 슬그머니 유전자가 바뀐 것이다. 이후 5년마다 복지부 장관이 조정하는 조항을 추가했으나 여전히 기본 설계는 물가 연동에 토대를 두고 있다.

어젯밤 집안 어른들은 물가 연동의 심각성이 국회와 언론에서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우리 설계도가 복잡해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토록 노후복지를 강조한다면 당신들도 탐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가 연동 방식으로 정부안이 시행되면, 기초연금 최대 금액이 현재 가치 20만원으로 묶인다. 물가보다 소득이 빨리 늘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30만원, 40만원으로 오르는 현행 기초노령연금과 비교하면 미래 어르신들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변인인 나에게 꼭 세상에 알리라고 특명의 과제가 떨어졌다. 어제 회의에서 처음 보고된 내용이다. 정부는 장차 국민연금 15년 가입자까지는 20만원을 받는다고 설명해 왔다. 그런데 우리 집안 연구팀에 의하면 미래 국민연금 가입자는 모두 20만원에서 감액당한다. 2028년 국민연금 가입자부터는 20만원을 온전히 받는 사람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 기초연금안은 일정한 기준연금(처음 20만원)에서 개인별 국민연금 균등급여(A급여)를 공제해 산정되는데, 정부안에서 기준연금은 물가 연동이고 균등급여는 소득 연동으로 다르게 움직여 공제액이 커진 탓이다.

 

만약 정부 말이 맞으려면 기준금액과 균등급여가 동일한 원리로 가야 한다. 아마도 정부가 작년 9월 발표할 때는 설명을 단순화하기 위해 기준연금을 20만원으로 상정하고 지금처럼 소득 연동으로 계산한 듯하다. 그런데 1주일 후 느닷없이 물가 연동 방식으로 정부안이 입법예고되었다. 그렇다면 수정된 기초연금액을 제시해야 하건만, 어영부영 기존 발표자료로 넘어가려 한다. 미래 가입자를 속이는 일이다.

어찌하다 내가 이 지경에 놓였을까? 지난 대선에선 어디 가도 뽐내며 자부심이 넘쳤었는데. 고령화사회라면서 한 나라의 연금정책이 이리 갈팡질팡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가문이 가엾다. 사촌인 국민연금은 성인이 되었건만 여전히 동네북이고, 미래 꿈나무인 나는 허위공약 공표로 고발당한 데 이어 법안마저 꼼수로 뒤범벅이다. 점점 나도 지쳐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의지할 곳은 당신밖에 없다. 내 유전자 교체를 막아 달라. 현행 소득 연동을 지키고 약속한 대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해 달라. 그리도 또 부탁한다. 재정이 필요하다면 버는 만큼 누진적으로 세금을 더 거두자고, 내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