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 기초연금은 ‘허위 공약’이다

2014. 3. 14. 13:5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공약 후퇴가 아니라 허위 공약 공표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지 못했다. 기초연금 인상 방식 문제도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박근혜 정부 1년이 지났다. 이 시기를 특징짓는 키워드를 뽑으라면 ‘복지공약 후퇴’가 앞 순위에 놓일 것이다.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저임금 노동자 사회보험료 지원, 고교 무상교육, 국민행복주택 등 거의 전체 복지공약이 논란의 대상이다. 그런데 국민 여론을 보면 특이한 대목이 있다.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재정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정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1년 복지공약 후퇴를 둘러싼 공방에서 박근혜 정부가 탈출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야당과 시민사회가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 1년 평가만큼이나 그 반대쪽에 대한 진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 축소에 대해 야당과 시민사회는 제대로 대응했을까? 그나마 의료 분야에서 일부 개선책을 이끌었을 뿐, 저임금 노동자 사회보험료 지원, 고교 무상교육 등에서는 공약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논란의 핵심인 기초연금에서는 특히 안타까움이 크다. 박근혜 후보의 기초연금 공약은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하되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 지급하는, 즉 국민연금 안에 있는 균등급여 몫만큼 기초연금을 감액하는 내용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가 인정하고 공약집 재정 자료에서도 확인되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추진되고 있다.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공약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는데, 차등 지급을 사과한 것이 아니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드린다 했는데, 70%로 지급 대상을 축소한 걸 사과한 것이다. 차등 지급 원리는 공약집, 인수위원회 백서, 국회 제출 법안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기초연금 공약 실체와 후퇴를 둘러싸고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지 못해왔다. “왜 20만원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느냐”와 “왜 동일하게 20만원을 주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 것처럼 허위로 알렸나”, 이 두 가지 질문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전자는 공약 축소이고 후자는 허위 공약 공표에 해당한다. 전자는 경제가 어려워 세수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는 해명이 가능하지만, 후자는 권력을 쥐기 위한 위법행위여서 정권의 정당성까지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당연히 반대쪽은 지급 대상 축소에 대해 ‘공약 후퇴’로 비판하되, 차등 지급을 전액 지급인 양 홍보한 것은 ‘공약 사기’로 정확히 짚었어야 했건만,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포괄적인 비판으로 공약 후퇴와 공약 사기를 혼용해왔다. 설령 지난해 여름까지는 20만원 동일 지급으로 공약을 이해했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이후 애초 공약이 차등 지급 방안이었다는 사실을 새누리당이 인정했음에도 대응 전략은 이전과 동일했다. 우리나라의 빈약한 재정 현실에서 돈이 부족해 공약의 완전 이행이 어렵다는 정부를 계속 몰아세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보다는 허위로 공약을 알려 유권자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훨씬 위력적인 카드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야당과 대다수 시민단체는 이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정부안대로면 2022년부터 지금보다 적은 금액 수령


공이 여·야·정 협의체로 넘어간 2월 국회에서도 반대쪽의 대응은 여전히 날카롭지 못하다. 기초연금 대상은 70~80%로 사실상 여야가 의견 접근을 보았고 나머지 논점은 국민연금 연계 여부에 집중되어 있다. 이 역시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보다 미래 기초연금액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게 기초연금의 인상 방식이다. 현재는 매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과 연동해 오르지만 정부안은 사실상 물가와 연동된다. 현행법 취지에 따라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이 2028년까지 10%로 단계적으로 인상된다고 가정하면, 정부안으로 바뀔 경우 모든 노인이 8년 뒤인 2022년부터 현행 기초노령연금 방식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되고 이후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 문제가 공론화된다면 정부는 난처해지고 그만큼 국민연금 연계 방안을 철회시키는 대응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텐데, 야당과 대다수 시민단체들은 이를 전면화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자신의 기초연금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7월부터 20만원 기초연금 지급이 어려워진다며 오히려 반대쪽을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기초연금 ‘공약 사기’와 ‘물가 연동’ 쟁점이 확산되기 전에 마무리 짓고 싶은 거다. 7월 인상금액 지급을 위해선 2월이 최종 시한이라고 정부가 엄포를 놓지만 행정적으로도 더 시간이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백보 양보해 기초연금법이 더 늦게 통과되더라도 7월로 소급 적용하면 된다. 고령화 시대의 핵심 노후소득 보장정책을 이토록 졸속으로 넘길 수는 없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더욱 분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