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기초연금안에 숨겨진 독약

2014. 2. 19. 14:1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2월 국회에서 기초연금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2월까지 기초연금법안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7월부터 20만원을 지급하는 게 어려워진다며 오히려 공세를 편다. 국회에 기초연금 여·야·정협의체가 구성되었는데, 지급대상 논의는 노인의 70~80%로 모아지고 있어, 쟁점은 국민연금 연계 차등지급이냐 별도 균등지급이냐로 집중되고 있다. 나는 보편주의 기초연금을 지지한다. 재정이 더 들더라도 부자 노인에게도 동일하게 제공하고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을 세금으로 기여하도록 하는 게 복지와 재정의 선순환이다.

 

그런데 차등지급 쟁점과 함께 정부안에는 기초연금 설계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독소조항이 담겨 있다. 새누리당의 일정 압박에 쫓긴 탓인지 민주당조차 이 독약을 눈여겨보지 않아 이러다간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국회를 통과할 듯하다. 바로 기초연금액의 물가연동 조항이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금액이 정해지면 매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과 연동해 오른다. 작년 가입자 평균소득이 약 200만원이고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이 5%여서 연금액은 대략 10만원이었다.

 

올해 소득증가율이 6%면 기초노령연금은 급여율이 동일하더라도 10만6000원으로 자동 인상된다. 이에 반해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현행과 달리 사실상 물가와 연동된다. 지난해 9월 정부가 기초연금 입법예고안으로 내놓기 전까지 누구도 이 방식이 등장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보통 물가상승률은 가입자 소득증가율의 절반에 그치기에 물가연동 기초연금은 해가 갈수록 소득연동 방식보다 금액이 적어지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입법예고안에 담긴 물가연동 방식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의견을 수렴했다며 문구를 수정해 최종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과연 얼마나 비판 의견을 반영했을까? 기초연금 최고액은 20만원으로 출발한다. 이후 매년 물가만큼 오른다.

 

이어 5년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물가, 노인 생활수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초연금 최고액을 조정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독약이 숨겨 있다. 노인복지의 핵심인 기초연금액이 갑자기 행정부 시행령 사안으로 전락해 버린다. 국회 심의 없이 정부가 기초연금액을 정하게 된다. 기초연금도 매년 물가와 연동되어 왔기에 5년째 해라고 갑자기 크게 오르거나 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매년 물가만큼 오르다 5년마다 미세 조정을 거쳐 다시 물가가 반영되는 ‘사실상’ 물가연동 방식과 다를 바 없다.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에는 2028년까지 급여율이 소득과 연동해 10%까지 오르도록 명시되어 있다. 만약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이 물가만큼만 오른다면 장차 노인들은 현행 방식에 비해 얼마나 손해일까?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의하면, 미래 물가인상률은 평균 3%로 소득증가율 6%의 절반에 머문다. 이러면 물가연동 급여율은 올해 가입자 평균소득의 10%로 시작하지만 2024년에는 7%로 줄어들고 2036년에는 5%로 반토막난다.

 

나아가 현행법 취지대로 국회가 올해 ‘단계적으로’ 급여율 인상방안을 정했다고 치자. 그러면 기초노령연금은 5% 급여율에서 꾸준히 오르고 반면 물가연동 기초연금은 10%에서 계속 하향해 2022년에 서로 교차하게 된다. 앞으로 8년 후부터는 기초연금을 받는 모든 노인들이 현행 제도보다 덜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복지는 비록 속도는 더뎌도 조금씩 확대되는 역사를 밟아왔다. 무상급식을 전환점으로 복지국가 꿈도 꾸게 되었다. 그런데 기초연금에서 물길이 거꾸로 가려 한다. 처음에는 오르지만 결국은 지금보다 적은 기초연금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금액으로 치면 국민연금 연계 차등지급보다 물가연동이 훨씬 큰 감액을 야기하는 독약인데도 국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공약 파기와 꼼수로 기초연금을 대해 왔던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편연금을 주창하는 민주당조차 이를 간과하는 건 곤란하다. 심지어 고령화시대 기초연금에 대한 자신의 입법권마저 훼손돼 버리는데 말이다. 기초연금 여·야·정협의체가 진정 노인복지를 위한 기구인가? 그렇다면 정부안의 물가연동을 현행처럼 소득연동으로 당장 되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