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복지재정, 이젠 지역 주민이 나서야

2013. 11. 22. 16:0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빈약한 복지를 한탄한다. 늦은 밤까지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만나거나 생활고에 목숨을 끊은 집안 가장의 소식을 들을 때면 이게 ‘사람 사는 나라가 맞느냐’는 분노가 일어난다. 

 

아직도 곳곳이 복지 사각지대이다. 그래도 근래 복지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나 노인이 없는 집은 그다지 느끼지 못하지만 급식, 보육, 기초노령연금 등에서 의미있는 ‘복지 체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웃에 사는 엄마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무상보육의 혜택을 강조한다. 집에서 돌봐도 20만원까지 양육수당을 받는다. 복지공약 위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기초연금 역시 내년 7월에는 대다수 노인에게 20만원씩 제공될 예정이다. 공약 후퇴 논란으로 동네북이 되었지만 대한민국 복지 수준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보편복지 세력이 일군 소중한 열매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보편복지가 크는 과정에서 생겨난 짙은 그림자도 주목하자. 가장 절박한 사람들이 더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이명박 정부 기간 복지 예산 증가율은 정부총지출 평균증가율 5.3%보다 높은 7.3%이다. 보육·여성분야는 거의 3배로 늘었고 약 400만명의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도 지급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초생활보장예산은 평균 3.5% 증가에 그쳤다. 내년 예산안에서도 복지예산 평균증가율이 8.7%인데 기초생활보장예산은 3.1% 늘어날 뿐이다. 예산은 정치적 힘이 작은 사람들에게 냉정하다. 지역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복지를 연구하는 교수들과 이야기해보면 오히려 보편복지 논의에 소극적인데, 보편복지 바람이 불었지만 정작 빈곤계층, 장애인 등 전통적인 복지에는 찬바람만 맴돌았고 복지현장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도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자체 역시 보편복지가 확대될수록 속이 탄다. 주민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게 뿌듯한 일이지만 이로 인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거의 할 수 없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유치원, 중학교까지 확산되고 있는 무상급식은 지자체와 지방교육청이 사실상 재정을 전담하고 있다. 무상보육의 경우 수혜 대상이 늘어나고 양육수당이 도입되어 지출 총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지자체가 감당할 대응 몫도 덩달아 증가했다. 기초연금도 20만원으로 오를 경우 지자체의 부담도 거의 2배로 커진다.

청와대와 국회가 복지 확대를 결정하고 생색을 내지만 정작 복지를 실행하는 지자체 재정 지원에 소극적이고 예산 부족을 이유로 취약계층 복지를 방치한 탓이다.

지난 몇 년 우리나라 보편복지가 역동적인 성장을 보여주었지만 빠른 도약만큼 ‘아래로부터’ 토대가 충분치 않다는 약점도 지닌다. 지금은 복지공약 후퇴로 박근혜 대통령이 수세에 몰려 있는 듯 보이지만 보편복지 쪽에게 유리한 지형도 결코 아니다. 여전히 부자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제공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상황, 즉 ‘모두가 받고 소득에 따라 누진적으로 세금을 내는’ 보편복지 담론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복지가 시혜에서 시민의 권리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지만 복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와 복지관들은 저만치 서 있고, 복지를 지지하는 주민도 별다른 참여 계기를 얻지 못한 채 관람자로 머물고 있다.

 

지금까지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복지 요구가 논쟁의 주제였다면 앞으로 지방복지 재정도 뜨거운 논점이 될 것이다. 지자체가 보편복지 대응 예산을 순조롭게 마련하고 기초생활보장, 장애인복지를 강화하면서 사회복지사들의 근로조건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에 재정 책임을 압박하는 아래로부터의 힘이 절실하다. 지역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보편복지를 누리는 주민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지금까지 주민참여예산제를 비롯해 지역 주민의 예산활동은 지자체를 대상으로 세출분야에 한정돼 왔다. 이제는 지자체를 넘어 중앙정부를 상대로 예산 확충 활동도 필요한 때이다. 비록 어려운 과제이지만 지방자치를 꽃 피우기 위해선 중앙정부와 승부를 가려야 한다. 중앙정부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뒷걸음만 치지 말고 재벌 대기업에게 세금을 거두고 탈세자들을 잡아내며 복지를 위한 증세도 추진하라고 복지 당사자가 외쳐야 한다. 광역단체장들의 성명서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지역주민, 사회복지사, 지자체 기초의원들이 여의도 국회를 둘러싸는 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