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오늘] 앞으로 몇 번이나 이사를 더 다녀야 할까?

2013. 12. 15. 21:4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미디어 초대석]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공동대표

 

 

지난 달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이 들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지 않는 반면,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 뉴스가 된다’면서 배제와 불평등의 세계 경제를 개탄했다. 교황이 말하는 사회가 오늘의 대한민국 아닌가 싶다.

서울에서만 한 해 300명 가량의 노숙인이 사망하고 있고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수도권에서만 보증금을 떼이고 집에서 쫓겨난 가구가 6000가구가 넘지만 전혀 뉴스가 되지 않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세가구(현재 370만 가구) 가운데 9.7%가 깡통전세 처지에 있다.

대한민국에 주거권이 있는가. 누구도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기택의 노래 가운데 ‘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산 아래...’ 이런 노래가 있다. 새들도 집이 있다. 그런데 사람은 집이 없다. 새는 집을 사거나 팔지 않는다. 임대를 하지 않는다. 임대료 올리는 일도 없다. 새가 다른 새보고 이사 가라고 통보하지도 않는다. 약한 새의 주거권을 강한 새가 파괴하는 일도 없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주거권도 파괴하고 새들의 주거권도 파괴한다. 이런 말을 하면 새와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하고 화들짝 놀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놀랄 일이긴 하다. 적어도 주거권 문제에 있어서는 새가 사람보다 열배는 훌륭하니까.

세입자가 힘든 여섯 가지를 들면 전월세의 가파른 인상, 짧은 임차기간, 보증금 회수 불안, 많은 규모의 빚, 매우 적은 공공임대주택, 정부의 집값 부양책이다. 정부가 세입자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시장에 모든 걸 맡겨 놓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시장에 힘을 싣는 정책을 고집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반대로 하면 된다. 전월세 인상률은 물가 수준으로 규제하고, 임차기간은 최소한 6년으로 늘리고, 보증금 회수 불안을 낮춰주고, 부채축소 대책을 제시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며, 집값 부양책을 멈추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택을 부동산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보금자리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2001년 이후 10년 간 전세금은 소득의 배 가까이 뛰었다. 많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전월세 상한제 또는 물가연동제가 도입되었다면 지금처럼 심한 주거난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전세금의 30%, 많게는 50%까지 올려달라는 임대인의 욕구도 억누를 수 있었을 것이다.

국토부가 발표한 2012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가가구의 평균거주기간은 12.5년, 세입자가구는 4.2년이다. 대략 3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2년만 살고 나가는 사람도 52%나 된다. 12년 동안 한 곳에서 안정되게 사는 학생과 4년 만에 이사를 가야 하는 학생의 교우관계가 같겠는가. 공동체를 강조하고 마을 만들기가 화두가 되는 세상이다.

이사를 자주 가야만 하는 세입자가 마을 공동체에 마음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어떤 주부는 이사를 간 첫날밤부터 이다음엔 어디로 이사를 가야할까, 앞으로 몇 번이나 이사를 더 다녀야 할까 하고 한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독일 세입자는 평생 거주권을 보장받고 있다. 평균 12년을 산다. 우리도 초중고 학생의 학령에 맞게 적어도 6년 거주권은 확보해야 한다.

지난 3년 반 동안 전세자금 대출은 33조원에서 60조원으로 불어났다. 그럼에도 정부는 각종 모기지를 내놓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확보와 주거보조금 확대가 확실한 대책이다.

   
▲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공동대표
 
몇 달 전 신정동의 한 다가구 주택에 살던 6가구가 쫓겨났다. 모두 27명이고 어린이와 청소년만 10명이다. 토지주와 건물주가 분쟁을 벌인 게 출발점이다. 법원은 지료 체납을 이유로 건물철거와 세입자 퇴거명령을 내렸다. 결국 집행관이 와서 27명의 세간을 모두 끌어냈다. 이들은 건물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보증금과 보금자리 지키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부동산등기부 등본에 분쟁 중이라는 사실도 철거명령을 받았다는 사실도 기록되지 않는다. 건물주와 토지주가 분쟁이 생긴 집에 들어간 세입자는 쫓겨나고 평생 모은 보증금을 다 날려도 좋은 대한민국인가. 건물주와 토지주가 다른 경우 전세임대를 금지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강제퇴거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노벨상수상자 로버트 쉴러 교수는 한국 사람들에게 ‘주택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이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다. 부동산에서 주거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