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술값 내는 사람과 세금 내는 사람

2013. 9. 1. 19:3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지금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7년 전쯤에 난 몹시 어려웠다. 경영하던 회사가 나의 무모한 사업 확장 때문에 4년 동안 휘청거리다 결국 문을 닫고 쫄딱 망한 뒤였다. 창피하다고 일부러 숨어 지내지는 않았다. 사업에 망했다고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지 않을 버릇하면 그 세계에서 매장당하니 일부러라도 나갔지만, 그보다는 친구가 필요해서 그랬다.

힘들거나 즐거웠던 기억을 함께 끄집어내어 나누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는 일만큼이나 삶의 활력소 노릇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친구가 필요하다. 자잘한 정보가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위안을 받을 때도 있으며, 내가 여전히 그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임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제야 말하지만, 당시 어느 모임이건 갈 때마다 나는 술값을 걱정해야 했다. 모이는 사람이 적을 때에는 대개 벌이가 좀 넉넉한 친구가 돈을 내게 마련인지라 걱정할 까닭이 적었지만, 모이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얼마씩 추렴하는 게 보통이라 그마저도 부담스러웠다. 물론 안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사람 구실하고 살기 어렵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럿이 모여 추렴하는 자리보다는 서너 명 모이는 자리가 더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비교적 남들보다는 체면을 덜 차리는 성격이고 대개 나를 만나자는 요청에 응한 자리였더라도 늘 얻어먹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불편하지 않겠는가.

어떤 모임에서 술값을 도맡아 내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면 만나는 곳이나 음식의 종류와 수준도 대개는 그 사람의 취향과 입 높이에 따라가기 쉽다. 술이 몇 잔 돌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도 잦아진다. 자칫 술값 내는 사람이 그 술자리의 주인공 아닌 주인공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 사람이 건방져서가 아니다. 그런 건방진 사람과 누가 좋다고 자리를 함께하겠는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알아서 그의 체면을 살려주느라 배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굳어지면 그 모임은 오래 가기 힘들다. 누구는 맨날 주인공이고 누구는 맨날 지나가는 행인 1, 2, 3이어서야 모임이 재미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명하게 모임을 운영하려고 은연중에 애쓴다. 어떤 때는 좀 싸구려 선술집에서 만나 벌이가 시원치 않은 친구가 술값 낼 기회를 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부러 추렴을 하기도 한다. 여자에게도 술값 낼 기회를 주고 많이 안 마시는 사람에게도 추렴한다. 그렇게 돌고 도는 술값 문화가 자리를 잡고 나면 친구 팔목을 비틀고 카드 내미는 것을 막으며 서로 술값 내겠다고 옥신각신하는 사람들을 그냥 놔둔 채 술집을 나서도 전혀 미안하지 않다. 정말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는 추렴하지 않아도 서로 어색하지 않다. 다음에 난 또 내 지갑 사정에 맞게 사면 될 일이니까. 집안에 경조사 같은 큰일이 있을 때 형편이 다른 형제들이 부담을 나누는 방법도 이렇게 나름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잡혀야 서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다.

고령화와 일자리 불안, 보육비와 사교육비 부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대학등록금 등등으로 복지 수요가 날로 커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재정이 문제인데, 정부가 돈을 버는 곳은 아니니 결국엔 세금을 올려야 한다. 부자에게만 더 내라고 할 것인가? 부자들이 받아들이든 말든 이런 주장과 논란은 부자만이 이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퍼뜨린다. 세금을 더 낼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세금 낼 형편이 안되는 사람도 부끄럽지 않다. 누진세 구조인 소득세에 복지 재원으로만 사용하는 복지세를 같은 비율로 적용하여 올리자. 세금을 조금씩 더 내서라도 위험 사회에 대응하자. 우리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의지하며 사는 친구고 형제라는 점을, 공동체 대한민국을 함께 꾸려가는 주인공임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