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내고 싶소 세금 더 내고 싶소”

2013. 8. 26. 00:0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2013.08.26 제975호]
[표지이야기] ‘복지는 세금을 먹고 자란다’ 확인해준 세법개정안… 132만원 복지 혜택 더 받기 위해 10만원 세금 더 낼 중간 계층이 복지 증세의 동력

 

역시, 세금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이 처음 꺾였다. 박근혜 정부가 그간 공들여온 첫 세법개정안을 발표 나흘 만에 제 손으로 뒤집었다. 증세 없이도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면서 정작 중간 계층 직장인의 월급을 기웃거리다 ‘중산층 증세’, ‘봉봉세’(봉급생활자를 봉으로 만드는 세제) 역풍을 맞고 뒷걸음질친 것이다. ‘자칭 원칙주의자’ 박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후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를 위해 ‘보편적 증세’를 주장해온 진보 진영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 됐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되다 이명박 정부에서 화룡점정을 찍은 감세정책의 종말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증세 논의에 새 물꼬를 터줬기 때문이다. 복지는 필연적으로 세금을 먹고 자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는 반드시 늘려나가야 한다는 복지국가의 원리를 몸소 인증해준 것도 박근혜 정부의 ‘공로’다.

 

덕분에 이제 복지를 위한 증세는 사실상 상수가 됐고, 비용 부담을 나누는 방식만이 변수로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이 단숨에 꺾인 데서 알 수 있듯, 증세의 원칙을 정하는 건 정부가 아니다. 납세자의 다수이며, 미래 복지의 수혜자이며, 핵심 유권자인 중간 계층이다. ‘복지 증세′의 캐스팅보트를 쥔 중간 계층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금 덜 내고 계속 불안하게 살 것인가, 좀더 내고 안전한 삶을 누릴 것인가. _편집자

 

 

» 정부가 중간 계층 직장인의 세 부담을 늘리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지난 8월8일 발표했다가 여론의 비판에 밀려 닷새 만에 대폭 완화된 수정안을 내놨다. 그러나 ‘보편 복지’를 위한 ‘보편 증세’를 하려면 중간 계층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진보 진영은 주장하고 있다. 기업이 밀집된 서울 중구 소공동 거리를 직장인들이 지나가고 있다.탁기형

 

 

대기업 입사 14년차인 최아무개(39)씨는 세금 걱정을 해본 일이 없다. 연봉이 7천만원 정도로 꽤 많아도 실제 내야 하는 근로소득세는 거의 없는 까닭이다. 지난해에도 원천징수로 수백만원의 세금을 떼였지만 이듬해 연말정산에서 대부분 환급받아 결국엔 100만원가량만 납부한 셈이 됐다. 세 자녀의 교육비로 750만원, 양가 부모님의 의료비로 600만원 등 각종 소득공제 혜택을 받은 덕에 연봉의 대부분이 소득으로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고 돌려받고… 세금 사실상 ‘제로’

 

그가 내는 세금은 사실상 계속 ‘제로’지만 그가 받는 복지 혜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올해부터 무상보육이 전면 시행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의 보육비로 매달 22만원, 집에서 돌보는 막내의 양육수당으로 매달 1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내년부터는 양가 부모님에게 많게는 20만원까지 기초연금이 나온다고 하니 용돈 부담도 살짝 줄어든다. 게다가 정부의 약속대로라면 앞으로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학비가 공짜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의료비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이런저런 혜택을 생각하면 정부가 지난 8월8일 내놓은 세법개정안에 따라 한 달에 추가로 내야 하는 1만3천원의 세금이 아깝지 않다. 오히려 갑자기 세법개정안 수정안이 튀어나오면서 추가 세 부담이 2500원으로 크게 줄어 “약속한 복지가 줄어드는 건 아닐까” 하고 불안해졌다. “젊어서 이렇게 뼈빠지게 일하는데 늘 노후 불안에 떨고 있다. 노후 걱정을 덜기 위해서라도 복지는 확대돼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세금은 더 걷어도 된다. 다만 내가 낸 돈이 4대강 사업처럼 엉뚱하게 쓰이지 않고, 복지 확대에 쓰인다는 확신을 정부가 줘야 한다.”

 

민심의 잣대로 여겨지는 중간계층이 복지 증세를 원하고 실제로 팍팍한 살림살이를 쪼개 세금을 더 낸다면, 정부와 보수 진영이 지금처럼 대기업·고소득층에 유리한 쪽으로 세제 혜택을 줄 명분이 약해진다.

정부의 어설픈 세법개정안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중간 계층(중산층·중위소득 50~150% 소득자) 직장인의 상당수 속내는 이렇다.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복지 혜택만 늘어난다면, 정부가 세금을 조금 더 걷어도 수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같은 ‘편익(복지)-비용(세금)’ 분석을 해보면, 이번 세법개정안 원안이 총급여(연간 급여에서 비과세 항목을 뺀 금액) 3450만~7천만원인 중간 계층 직장인 324만 명에게 추가로 지우려 했던 세 부담은 이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근로소득세 공제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중간 계층이 추가로 내야 하는 세금은 한 달에 1만3천원꼴(연간 16만원)로,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복지 시리즈가 실현될 경우 얻게 될 혜택에 비해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 계층은 고소득 직장인과 비슷한 복지 혜택을 누리더라도 감당해야 하는 세금 부담이 훨씬 적다. 소득세 실효세율(비과세·감면 혜택을 제외하고 실제 부담하는 세부담률)이 급여 구간에 따라 1.9~4.4%에서 0.3%포인트씩 늘어나는 정도다. 총급여가 7천만원이 넘는 고소득 직장인은 추가 세 부담이 한 달 2만7500~72만원으로 중간 계층보다 2~55배 많다. 누진세 원리에 따라 실효세율이 0.5~2%포인트씩 가파르게 오르는 까닭이다.

 

 

그들이 언제 ‘조세저항’ 한 적 있었나

 

그러나 이렇게 중간 계층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소득세제의 누진성은 강화하는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민주당을 비롯해 일각에서 제기한 ‘세금폭탄’ ‘중산층 증세’ 따위의 여론몰이에 밀려 결국 크게 손질됐다. 수정안에 따르면, 총급여 7천만원 초과 고소득층은 원안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내지만, 총급여 3450만~5500만원인 중간 계층의 추가 세 부담은 사라지고, 5500만~7천만원의 경우엔 한 달 1600~2500원만 내면 된다. 이런 구조조정으로 4천만원 이하 직장인의 세 감면 혜택은 되레 줄어들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의 지적은 이렇다. “상위 28%(원안에서 추가 세 부담을 지운 총급여 3450만원 이상 직장인 비율)는 충분히 한 달 1만3천원 이상의 추가 세 부담을 질 수 있는 계층이다. 고소득층의 세 부담은 늘고 저소득층은 줄면서, 조세 체계의 누진성이 강화되고 과세 형평성도 좋아진다. 그런데도 세금폭탄이라며 과세 구간을 오히려 후퇴시켜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중간 계층도 한 달 1만3천원의 추가 부담을 감당 못할 ‘폭탄’으로 느껴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반대했던 건 아니다. 이들을 가장 분노하게 한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직장인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부담을 강요하는 ‘과세의 공평성’ 훼손 문제다. 정부가 사회적 부를 독식한 대기업·자산가·고소득 자영업자 등에는 공정한 납세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직장인들 간 형평성만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세법개정안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 감세정책으로 특혜를 입은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의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조처도 없었고, 자산가들의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내용도 빠졌다(자세한 내용은 36~37쪽 참조).

직장인 10년차인 이아무개(40)씨의 비판은 이렇다. “중간 계층이 ‘조세저항’을 한다고들 말하는데 매우 기분이 나쁘다. 나는 조세저항을 한 적 없다. 지금껏 꼬박꼬박 세금을 내왔고, 정부가 더 내라고 하면 더 낼 거다. 다만 나보다 더 많이 벌면서 세금은 안 내는 이들보고 제대로 내라고 요구하는 것뿐이다.”

 

소득세만 손질한 정부에도 할 말은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3.6%(2010년 기준)로 법인세나 재산세 등과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8.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각종 비과세와 공제 혜택으로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가 36%가 넘고, 소득세를 내더라도 실효세율이 평균 4.4%에 불과한 탓이다. 특히 상위 1%의 초고소득자는 실효세율이 20.9%에 이르지만, 상위 50% 이내 중간 계층까지 포함하면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은 0.9%에 그친다. 그만큼 중간 계층이 근로소득세를 적게 내고 있다는 뜻이다. 강병구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소득세 비중이 낮은 데는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고소득층에 비과세·감면 혜택이 집중된데다, 근로자의 임금소득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소득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자영업자와 소득이 100% 드러나는 근로자 간의 과세 형평성을 맞춘다며 자꾸 근로소득 공제를 해준 이유도 있다. 그러다보니 세금을 내지 않거나 적게 내는 비율이 복지국가에 비해 높다.”

 

 

징벌적 성격 강한 선별증세·부자증세

 

진보 진영에서 중간 계층 직장인의 손에 보편적 복지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가 쥐어져 있다고 보는 건 이 때문이다.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면서도 세금은 상대적으로 적게 내는 중간 계층이 세금을 조금 더 내야 ‘보편 복지’에 필수적인 ‘보편 증세’의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상위 1%의 대기업과 부자를 대상으로 한 ‘부자 증세’를 내세우는 목소리도 있지만, 징벌적 성격이 강한 선별 증세는 보편 복지의 원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해서 얻어진 세수도 미미하다는 게 문제다.

 

중간 계층 직장인의 증세 참여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심의 잣대로 여겨지는 중간 계층이 복지 증세를 원하고 실제로 팍팍한 살림살이를 쪼개 세금을 더 낸다면, 정부와 보수 진영이 지금처럼 대기업·고소득층에 유리한 쪽으로 세제 혜택을 줄 명분이 약해지는 까닭이다. 여권과 보수 언론에서 “중간 계층의 조세저항이 심하니 복지 공약을 축소해야 한다”는 퇴행적 주장이 쏟아지는 건, 뒤집어 말하면 중간 계층의 정치적 힘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복지 증세가 중간 계층에 단지 사회적 책임만 지우려는 건 아니다. 복지가 확대되면 중간 계층의 생활도 크게 나아진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더 낸 세금이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간 계층으로도 흘러들기 때문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가 개발한 ‘복지 체험앱’을 활용해 보편 복지가 이뤄질 경우 소득수준별로 누리게 될 복지 수준과 추가로 내야 하는 세금을 비교해보면 재분배 효과가 쉽게 확인된다.

 

연 가구소득 2500만원, 6500만원, 1억5천만원인 세 가구가 있다. 이 가구들은 모두 부부, 70살 노모, 대학생 자녀, 고등학생 자녀 등 5명으로 구성됐다. 똑같이 자가 주택에 살고 있고, 연 400만원의 의료비를 지출한다. 만약 무상의료, 대학 반값 등록금, 기초연금 등 보편적 복지가 실현된다고 하면, 연소득 6500만원인 중간 계층이 누릴 수 있는 복지 수준은 현재 월 50만원에서 132만원으로 크게 뛴다. 이를 위해 더 내야 하는 세금은 한 달 10만7천원 정도다. 그러나 1억5천만원의 고소득 계층은 똑같은 복지 수준을 얻는 데 한 달 55만3천원을 더 내야 한다. 중간 계층의 5배에 이르는 돈이다. 반면 2500만원의 저소득 계층은 지금보다 대략 월 3만원만 더 내면 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지난 8월12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보편적 복지를 하지 않으면 복지 수혜를 받는 사람들은 낙인이 찍히게 되고,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중산층(중간 계층) 이상에서는 불만이 생긴다”며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에서 복지제도 자체에 큰 불만이 없는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내면서도 받을 건 다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복지 증세’ 논쟁은 이제 시작

 

정부가 재빨리 수정안을 내면서 ‘중산층 증세’ 논란은 잠시 수그러들었지만, ‘복지 증세’ 논쟁은 이제 시작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중 소득·소비세 비중은 높이고 법인세·재산세는 성장친화적으로 조정한다는 조세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와 재산세 부담을 낮춰주면서 135조원에 이르는 복지 등 공약 재원을 마련하려면, 내년에는 다시 소득세 과세 확대와 부가세 인상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보편적 복지 증세 원칙에서 더 멀어질뿐더러, 대기업·고소득층과 서민·중간 계층 간 과세 형평성도 더 왜곡시키는 방향이다.

 

이에 맞서 진보 진영에서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두 트랙으로 함께 올리는 방안과 아예 복지만을 위한 목적세인 ‘사회복지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놓으며 ‘복지 증세’를 위한 논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강병구 소장의 말이다. “중간 계층은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역진적인 조세 체계를 바꾸지 않고 중간 계층에 더 큰 세 부담을 더 요구하면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불평등한 상황에서도 중간 계층이 ‘나도 낼 테니, 당신도 내시오’라고 한다면 복지를 위한 증세 논의에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증세 논란의 중심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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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세’를 신설하자” vs “지하경제 양성화가 우선” [2013.08.26 제975호]

 

[표지이야기]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과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 지상토론

 

“과세 불평등이 완화되고, 내가 추가 부담한 세금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아마 중간 계층도 세 부담을 받아들일 거다. 그 순간, 복지국가로 가는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오건호

 

정부가 발표한 ‘2013년 세법개정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반대가 한목소리도 아니다. 각론은 각양각색이다. 근로소득세를 부과할 때 적용하던 소득공제의 일부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부터 대기업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끌어올리지 않은 것까지 곳곳에서 다시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반대 이유가 다르니까 해법도 극명하게 나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며 ‘복지 증세’를 내세웠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결국엔 누진적인 보편 증세로 가야 한다. 능력에 따라 다 세금을 내자는 것이다. 원포인트로 목적세인 ‘사회복지세’를 신설하자.” 반대로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은 “증세는 시기상조”라고 못박았다. “가까운 병원을 가도 현금과 신용카드 결제액이 다르다. 세금 탈루하려는 거 아니냐. 증세를 하려면 먼저 세금을 탈루할 수 없는 투명한 사회가 돼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앞순위다.” 같은 질문, 양쪽의 다른 답변을 정리했다.

 


‘어부바’ 퍼포먼스 같은 개정안

 

1. 세법개정안에 대해 평가해달라.

 

오건호(이하 오): 친기업적인 조세정책을 고수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고 말하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기업인을 직접 업는 ‘어부바’ 퍼포먼스를 벌인 것과 맞아떨어지는 세법개정안이다. 일단 대기업 과세 방안이 취약하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고 비판받아온 핵심 제도인 비과세 감면은 그대로 유지됐고, 중소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완화해 ‘편법 증여에 대한 과세 원칙’도 훼손했다.

 

홍기용(이하 홍):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증세를 하려면 먼저 세금을 탈루할 수 없는 투명한 사회가 돼야 한다. 소득자 간 형평성을 훼손하는 조세제도와 지하경제 등도 없애야 한다. 이자·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이나 부동산 임대소득 등에 대한 세금 책임을 강화하는 게 앞순위 정책이다. 그 뒤에야 근로소득자 등 투명한 납세자가 증세를 받아들일 수 있다. 형평성이 어긋나는 조세 환경은 그대로 놔둔 채 세원이 투명한 근로소득자에게 먼저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했으니 문제다.

 

2. 세액공제 개편을 어떻게 평가하나.

: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전향적 조처로 평가할 만한 게 소득세 개편 중 세액공제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조처는 다수 중·하위 계층에게 세금 감면을 늘리고 상위 계층에게 세금 책임을 강화하는 일이다. 즉,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이 증가하는 누진적 증세다. 민주당의 어이없는 ‘세금폭탄론’으로 3450만원에서 5500만원 선으로 완화되고, 5500만~7천만원 구간은 세 부담이 크게 줄기는 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번 논란으로 국민이 증세 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세금과 복지를 함께 인식하고 미래지향적 논의를 계속하면 앞으로 2~3년 안에는 진정한 복지국가로 가는 터닝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홍: 세액공제 개편으로 의료비·교육비·보험료 등 필수 경비를 많이 지출하는 중산층의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급증하게 됐다. 이러한 필요 경비를 지출하지 않는 근로자는 연봉이 10억원이 넘어도 이번 세제개편으로 세 부담이 늘지 않는다. 근로소득자 간 조세형평에 어긋나는 셈이다. 사실 근로자는 종업원일 뿐이다. 지금 1억원의 연봉을 받는 50대 임원이라도 3~4년 지나면 실업자가 된다. 그래서 고소득 근로자는 금융·부동산 재산가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미국·일본·독일·싱가포르·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도 소득공제를 활용하는 이유다. 세액공제 개편은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

 

 

‘뜨거운 감자’ 피하고 불신의 늪에 빠질 것

 

3. 세제개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 민주당의 주장대로 ‘세금폭탄’ 수준이어서 직장인들이 분노한 게 아니다. 조세 형평성이 떨어지는 데 열받은 거다. 사회의 부가 집중돼온 부자와 대기업에는 왜 제대로 세금을 물리지 않느냐는 분노다. 만약 과세 불평등이 완화되고, 내가 추가 부담한 세금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아마 중간 계층도 세 부담을 받아들일 거다. 그 순간, 복지국가로 가는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중산층의 아픔을 정부가 이해하지 못한다. 정부가 복지를 확대한다고 하는데, 내가 복지 대상이라고 부르짖을 만큼 중산층의 삶이 힘겹다. 두 번째는 왜 근로자만 갖고 그러느냐는 불만이다. 근로소득자에겐 지하경제라는 게 없다. 한마디로 투명한 지갑이다. 하지만 근로소득자가 보는 세상에는 지하경제가 넘쳐난다. 가까운 병원을 가도 현금과 신용카드 결제액이 다르다. 세금 탈루하려는 거 아니냐. 이러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게 급선무다.

 

4.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박근혜 정부의 조세정책 방향에 동의하나.

 

: ‘세금’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자신의 복지 공약을 임의로 수정하는 ‘불신의 정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시대적 물결인 보편 복지 확대에 역행하면서 세금을 더 내야 할 상위 계층과 대기업을 엄호해주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세법개정안도 그러하다. 조세부담률 목표를 2012년 20.2%에서 2017년 21%로 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2010년 기준 25%다.) 빈약한 현재 조세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소극적인 조세정책으로는 국민이 염원하는 복지국가를 향한 재정을 마련할 수 없다.

: 불가능하다. 이번 세제개편안으로도 사실상 증세가 됐지만 정부는 이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통령 공약에서 제시한 복지 지출 규모와 범위, 속도를 재검토해야 할 때다. 복지 공약을 완전한 ‘상수’로 보고 더 이상 고칠 수 없다고 고집하면 내내 힘들어진다. 이제는 실행 가능성 차원에서 복지 확대가 적정한지 정부가 치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다음 복지 지출에 대응하는 세입 분석이 필요하다. 세율과 세목을 변경해 증세할지, 지하경제 양성화나 비과세 감면 축소라는 공약을 지킬지 결정해야 한다. 소득세·부가가치세·법인세 등에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어느 세목을 건드릴지도 정해야 한다.

 

세율 줄여도 기업 잘되면 세수 늘어나

 

5.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고 보나.

 

: 법인세는 기업의 경쟁력과도 밀접해서 (정부가 증세 요구를)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현재 대기업에 특혜성으로 주어지는 각종 공제를 들어내야 한다는 데는 찬성한다. 올해 연구·개발(R&D) 세액공제에 2조7천억원,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에 1조7천억원이 각각 들어간다. 이 중 60~80%가 대기업에 돌아간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대기업에 대한 일부 혜택을 줄이기로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 두 가지 혜택만 전부 없애도 4조4천억원의 세수가 생긴다.

“이번 세제개정안으로도 사실상 증세가 됐지만 정부는 이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통령 공약에서 제시한 복지 지출 규모와 범위, 속도를 재검토해야 할 때다. 복지 공약을 완전한 ‘상수’로 보고 더 이상 고칠 수 없다고 고집하면 내내 힘들어진다.”홍기용

» 김명진

: 예를 들어보자. 삼성전자는 2012년에 세금을 1조6900억원 냈다. 그런데 올해는 3조3800억원 냈다. 딱 2배로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내렸다고 비판하지만 세율을 줄여도 기업이 장사를 잘하면 세수는 늘어난다. 법인은 가능한 한 돈을 잘 벌게 놔두는 게 좋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차이가 없다. 대기업에 중과세하는 것, 신중해야 한다. 다만 고소득자·대자산가는 다른 문제다. 정치인들이 한데 묶어서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법인과 대자산가는 다르다.

 

6. 세제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재정지출 개혁, 비과세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 기존 재정·조세 체계를 개혁하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본다.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조세 정의에 대한 불신이 크고, 재정지출도 엉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 개혁 논의를 여기에만 묶어둬서는 안 된다. 이미 보편 복지에 대한 요구가 높다. 이젠 복지국가를 논의하려면 증세 논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증세 논의와 관련해 여러 대안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철회, 다시 말해 ‘부자 증세’를 들고나온다. 그러나 상위 1%에만 징벌적으로 세금을 내라고 해서는 복지국가 원리에도 맞지 않고 세수도 적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결국 누진적인 보편 증세로 가야 한다. 능력에 따라 다 세금을 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인세·소득세 등 세목별로 증세를 하면 전선도 너무 복잡해져서 (보수와 진보 간) 싸움을 하기도 어렵고, 국민에게 (증세를)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원포인트로 목적세인 ‘사회복지세’를 신설하는 게 맞다.

 

: 증세 등 세입 수준은 납세자의 수용성이 먼저 중요하다. 납세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정치인은 선거철이 되면 세출을 선언해버리고 세금 등 세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약속한 세출을 위해 어떻게 세수를 확보할지 ‘세수확보 계획서’를 제출하고, 국민이 이를 검증해야 한다. 증세의 필요성이 생긴다면 소득세·부가가치세·법인세의 순으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소득세라고 해도, 금융소득·사업소득·근로소득으로 구분해 이 중 무엇을 먼저 거론할지 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시점에선 지하경제 등도 제대로 양성화되지 않았고, 소득자 간 불균형도 있으므로 증세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이르다.

 

복지 증대는 능사가 아니다. 납세자의 조세 순응과 세수 상황에 맞춰 복지 지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세수를 확보하지 않은 복지는 오래가지도 않고 실행할 수도 없다. 사회복지세를 만들자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사회복지세라는 목적세가 있으면, 확보된 세수는 반드시 복지에 지출해 좋은 점도 있지만, 비탄력성이라는 제약도 따른다.

 

 

복지·누진·보편·단일 증세

 

7. 증세 원칙은.

 

: 기본적인 증세 원칙은 ‘소득별 복지 증세’다. 구체적인 원칙은 네 가지다. ‘복지 증세’다. 재정지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감안할 때 세입과 복지 지출을 결합하는 복지 증세가 필요하다. 그다음이 ‘누진 증세’다. 상위 계층과 대기업에 더 많은 재정 책임을 적용한다. 그리고 ‘보편 증세’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증세에 참여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단일 증세’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일 세율을 적용한다. 이 모든 원칙을 충족하는 게 사회복지세다. 이런 사회복지세를 걷을 수만 있다면 지금껏 국민에게 행하는 ‘착취’의 상징이었던 세금이 함께 잘사는 국가를 이루기 위한 연대와 협력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세금이 많으면 정부의 통제가 커진다. 복지가 늘어날수록 개인의 자유는 줄어든다. 이렇게 납세자를 옥죄어서는 안 된다.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벌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세수 확보는 증세가 아니라 경제 활성화에 달려 있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소득세와 법인세가 저절로 많아진다. 특히 우리나라 소득세는 금융소득·사업소득·근로소득 등 상호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금융소득의 경우 주식과 파생상품 등의 양도차익에 대해선 비과세가 되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세율이 낮은 편이다. 불로소득이라는 점에서 근로소득에 비해 세수 비중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