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1. 12:25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박근혜 정부가 직접 증세는 아니지만 사실상 증세를 담은 세법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증세 논쟁의 불을 지폈다.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모두 ‘기업 투자와 부자 소비’를 명분으로 오로지 감세로만 치닫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세금폭탄론 파동을 겪었지만, 보편복지 세력에게는 증세 논의를 본격적으로 벌일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진보 지식인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의 조세 정서를 무시한 채 증세만을 당위적으로 외친다는 지적이다. 경청할 이야기다. 실제로 보편복지를 주창하는 정당,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넘어 세금 당사자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시민들이 손보라는 재정지출, 과세인프라 개혁 등에선 별다른 방안도, 활동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말로만’ 증세 선명성 경쟁을 벌여오지 않았는가? 증세는 복지재정 방안의 하나일 뿐이다. 증세를 외치는 세력일수록 시민들의 조세 정서를 경청하고, 비증세 영역의 재원 확보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증세 정치가 험난하고 기존 증세론이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증세 논의 자체를 홀대하는 건 문제다. 보편복지 세력에게 증세는 이미 선택 사항이 아니다. 지금까지 보편복지 세력이 선언적 증세에만 그쳐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해내는 게 숙제이지 않은가! 비증세 영역만 고집하는 박근혜 대통령도 증세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 이미 복지 확대는 시대적 요구로 자리 잡았다. 지출 합리화, 지하경제 양성화 등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이 재원만으로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게 다수의 전망이었고, 집권 반년이 지나면서 더욱 확인되고 있다. 국민들에게 솔직하고 당당하게 증세를 제안하라.
이제 제대로 증세 정치를 펴자. 세금 불신을 부추기는 과거회귀식 정치가 아니라 아이들이 살 미래를 가꾸는 세금 정치가 필요하다. 아직도 조세 저항의 장벽이 높지만 근래 보편복지 담론이 확산되고 급식, 보육, 기초노령연금에서 복지를 체험하면서 복지를 위해서라면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몇몇 복지시민단체는 우리도 형편껏 낼 테니 대기업, 상위계층도 책임을 다하라는 시민 증세 활동도 시작했다. 이번 주말부터는 사회복지세 도입을 위한 거리 서명전에도 나선다. 세금 불공평에 화가 난 탓에 차라리 세금에 저항하는 게 ‘조세 정의’로 받아들여지던 대한민국에서 이는 소중한 변화의 싹이다. 복지를 누릴 당사자들이 자신의 세금을 생각하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증세 정치의 성패를 좌우할 주인공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참에 기존 ‘부자증세’ 슬로건도 ‘복지증세’로 전환하자. 부자증세는 부자만 내라 한다. 과연 부자들이 솔선수범해 세금을 내고자 할까? 서구 복지국가 경험에서도 보듯이, 이는 시민들의 거대한 압박이 없으면 가능치 않은 일이다. 이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까? 소득세는 강한 누진도를 지니고 있다. 중간계층부터 동일하게 인상해도 사실상 부자증세 효과가 발휘된다. 그렇다면 나도 내니 당신들도 제 몫을 다하라며 나설 때 훨씬 위력적으로 부자 호주머니를 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받는 복지를 떳떳하게 느끼면서 부자, 대기업에 더 많이 요구하는 당당함도 가지게 말이다. 복지증세는 세금만 이야기하는 부자증세 논리의 약점도 넘어설 수 있다. 세금은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복지를 위한 세금임을 분명히 하자. 세금과 복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더 내는 월 1만3000원만 이야기하면 이 돈은 모두에게 부담이지만 복지를 함께 생각하면 공존의 입구일 수 있다.
이번 세법개정안 논란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세금폭탄론과 복지증세론을 모두 깨웠다. 만약 후자에 주목한다면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증세 정치를 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당사자가 말하게 하자. 정작 1만3000원을 내야 하는 시민들이 세금과 복지를 함께 생각하고, 내 세금이 복지재정 확충의 지렛대라고 자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증세는 가능해질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증세 정치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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