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IN] 국민연금이 네 거니?

2013. 8. 18. 19:2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국민연금이 네 거니?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이 대주주가 되는 수서역발 KTX 운영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KTX 민영화에 국민연금을 정부 쌈짓돈처럼 이용하는 꼴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400조원을 넘어 중앙정부 예산보다 크다. 국제 자산운용 시장에서는 4대 연기금으로 위력을 떨친다. 그런데 정작 주인인 가입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민의 노후예탁금을 정부가 자신의 쌈짓돈인 양 다뤄왔던 기억 때문이다.

1994~2000년 정부는 ‘공공자금 강제예탁’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연금기금을 갖다 썼다. 공공자금관리기본법이 개정되어 2001년부터 강제예탁이 금지되었지만, 이때까지 덜 지급한 이자 2조원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이자 미지급분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시늉을 해왔으나 이제는 이마저도 포기한 모양이다. 이후에도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때마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국민연금기금 처지에서는 정부가 논란을 만들고 자신은 가입자로부터 신뢰를 잃으니 억울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정부 개입이 설상가상이다. 아예 정부 사업에 국민연금기금을 사용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주창한다. 예고편은 기초연금 부족 재원을 국민연금기금으로 충당하겠다는 방안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 활용을 검토하다 국민의 반발이 거세지자 단념했다. 국민연금기금의 미래 재정이 불안하다며 보험료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자신의 복지 공약 이행을 위해 당장 국민연금기금을 사용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지난 6월 국민연금기금 사용 2탄이 등장했다. 국토교통부는 2015년에 개통할 수서역발 KTX를 위해 국민연금기금 등 공적자금이 대주주가 되는 KTX 운영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았던 민간자본 위탁 방안에 대해 민영화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꺼낸 수정안이다. 이 방안은 “국민의 뜻에 반하는 철도 민영화는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라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KTX 민영화 실체를 숨기기 위해 꼼수 찾기에 나섰던 정부 철도 부서가 내놓은 작품이다. 정부 내 철도 민영화 세력의 끈질김이 감탄스러울 정도지만 이들의 무지와 오만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를 운영한다는 공무원들이 국민연금기금의 ABC도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 국민연금기금 관리 위임을 맡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아무런 항변을 못하고 있다.

정말 수서역발 KTX 회사 설립을 위해 정부가 국민연금기금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가? 없다. 이렇게 함부로 발표해도 되는가? 안 된다. 현재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가입자 대표가 과반수로 참여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이고, 여기서 정한 기금운용 전략과 지침에 따라 국민연금공단이 투자를 집행한다. 정부가 수서역발 KTX 운영회사 설립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기금 동의 없이 지분 70%를 배정하는 건 심각한 월권이다. 남의 집 재산을 이렇게 저렇게 사용하겠다는 사람 꼴이다.

국민연금기금도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

가령 정부 뜻대로 국민연금기금이 지분의 70%를 차지하는 대주주가 되었다고 치자. 수서역발 KTX는 어떻게 되는 걸까? 민영화되는 거다. 국민연금기금이 공적 성격을 지니는 이유는 법률에 따라 조성된 국민들의 노후예탁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쌓인 기금을 관리하는 자산운용 쪽에서는 민간 기관투자자와 동일한 지위에 있다. 국내 투자신탁회사가 내놓은 해외펀드, 서울 지하철 9호선에 참여한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 수서역발 KTX에 투자한 국민연금기금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국민연금법도 제102조에서 국민연금기금은 시장수익률을 넘는 수익을 내도록 명하고 있다. 이에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실질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합친 수익률을 달성하라는 기금운용 지침을 수립하고(2013년 목표수익률 6.4%), 이에 맞추어 국민연금공단은 자산운용 시장에서 기금을 운용해 지난해 평균 7%의 수익을 올렸다. 수서역발 KTX 운영회사는 자신의 대주주가 국내 투자신탁회사든, 맥쿼리든, 국민연금기금이든 동일하게 시장수익을 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민영화 철도’로 귀결되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기금 투자분에 한해서는 나중에 지분 매각에도 제한을 두겠다고? 누구 마음대로? 자산운용 기관에서 매입과 매각은 가장 중요한 권한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집착이 심상치 않다. 기초연금 재원 검토에서 KTX 투자까지 좌충우돌이다. 철도의 공공성을 망치고 국민연금기금 신뢰를 훼손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다 국민들이 정말 성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