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소리] 대통령을 먹고 튀어라? ‘박근혜 공약사기 사건’

2013. 7. 28. 19:5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대통령 당선되니 ‘공약이 그게 아니었다’...

복지시민단체 사기로 고발->검찰 무혐의->항고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지난 12일 복지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박근혜 대통령과 진영 보건복지부장관을 '공약사기죄'와 '허위사실 유포죄'로 기소할 것을 요구하는 항고장을 제출했다. 지난 3월 최창우·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진영 장관을 공약사기죄와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발한 것에 대해 검찰이 6월 '혐의없음' 처분을 하자 항고한 것이다.

정치인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말이 있다. 공약(公約)은 정당이나 선거 입후보자가 당선되면 어떤 일을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는 것인데,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결국 '빈 약속'(空約)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은 지키려는 시늉이라도 하기 마련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에서 당선하자마자 말을 바꿔 국민들로부터 사기죄로 고발당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되자 '출구전략' 모색...공약 말바꾸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걸고 당선됐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공약의 차별성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복지 전문가들은 "문재인 후보의 공약을 100으로 본다면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80 수준까지 따라붙었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좌클릭을 하면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유사한 복지 공약을 내놨다. 좌클릭 전략은 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공약 수정 얘기가 나왔고, 대통령직인수위 단계부터 복지 관련 주요 공약이 줄줄이 후퇴했다. 박 대통령과 진영 보건복지부장관(박 대통령 오른쪽)은 복지시민단체로부터 공약 사기로 고발당했다.ⓒ인수위사진기자단

 

그런데 박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말을 바꿨다. 새누리당에서 먼저 연기를 피웠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이를 받았다.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3일 당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선거 기간에 너무 세게 나갔던 부분은 다시 한번 차분하게 여야가 같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며 공약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1월 14일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형 예산 공약들에 대해서는 출구전략도 같이 생각하셨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돈이 많이 드는 공약들은 지키기 어려우니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출구전략은 '공약폐기'와 '말바꾸기'였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주요 복지 공약을 수정했다.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월 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에 "(3대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여러차례 비급여 항목도 국가 부담에 포함된다고 밝혔었다. 2012년 12월 16일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재정대책에 의문을 제기하자 "그렇게 많은 재정이 소요되는 게 아니"라며 "비급여 되는 부분을 그렇게 커버(포함)를 해서 (4대 중증질환을 국가가) 100% 책임지겠다"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12월 25일 쪽방촌 노인정을 찾아가서도 "4대 중증에 대해서는 국가가 전부 비급여까지 해서 100% 부담을 해서 병원비 때문에 걱정 안하시도록 그렇게 바꿔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선 공약집에서도 "중증질환은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건강보험 비급여가 많아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심각"하다면서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 총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를 건강보험으로 급여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인수위에서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진영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의 입에서는 좀더 노골적인 말이 나왔다. 3월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진 내정자는 "대선은 캠페인이다"라며 "이 캠페인(선거운동)과 정책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는 얘기다.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국민을 속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공약에 대한 재정대책까지 들여다보면 아예 공약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에 필요한 재원조차 엉터리 추계를 했다"라며 "새누리당은 공약을 실행하는데 1조5천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 암질환의 보장률을 100%로 하는데도 1조7천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지적한 바 있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하는 게 민주주의 선거 과정이라는 궤변
인수위 단계부터 너무 쉽게 공약 폐기..."지킬 생각 없으면서 사기친 것"

박 대통령의 공약 후퇴 또는 폐기에 대해 보수언론 등에서는 오히려 '더 후퇴해도 모자란다'고 부채질을 하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세수가 부족해 공약을 다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심을 쓰고 미래 재정을 파탄낼 건지, 욕을 먹더라도 공약을 수정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훈수를 두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장밋빛 공약은 민주주의 선거의 속성"이라는 주장까지 한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하는 게 바로 민주주의 선거과정이라는 황당한 주장이다.

지난 1년여 사이에 경기변동에 돌출 변수가 있었던 게 아닌만큼 경기불황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공약을 이행할 수 없다는 말로 공약 폐기의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다. 더구나 문제는 박근혜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을 어떻게든 이행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인수위 단계부터 너무 쉽게 공약을 사실상 폐기시켰다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열심히 노력하다가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애초에 공약은 그게 아니라고 하는 것 아니냐. 공약을 믿고 투표를 한 사람들한테는 결국 사기를 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세수 부족을 이유로 공약을 사실상 폐기하거나 축소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도 웃기는 얘기다. 세수가 부족하면 세금을 더 걷으면 될 일이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과하게 높다면 (세수 부족 때문에 공약을 지킬 수 없다는 게) 일리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낮지 않냐"라고 지적했다. 즉, 세금을 올려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복지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010년 기준으로 19.3%로 영국(28.3%), 프랑스(26.3%), 독일(22.1%) 등 유럽 선진국은 물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24.6%) 보다도 낮은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기'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모래성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공약사기로 국민들에게 고발당한 불명예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사에 영원히 '공약 사기 사건'으로 기록될 지는 남은 임기동안 박 대통령의 행보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