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내 건보료를 더 내게 해달라!

2013. 5. 30. 19:5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정동칼럼]내 건보료를 더 내게 해달라!


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난 대통령선거 복지 공약에서 그나마 논쟁을 벌인 주제가 병원비 해결이었다. 문재인 후보는 ‘4대질환 국가책임으로 모든 병원비가 해결되는지’, 박근혜 후보는 ‘100만원 상한제를 실시할 재정이 있는지’를 상대 후보에게 물었다. 그만큼 병원비가 중요한 관심사였고, 국민건강보험은 재정이 부족한 상태이다.

국민의 병원비 걱정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방안은 없을까? 현재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가입자, 기업, 정부 세 주체가 분담한다. 가입자의 보험료가 정해지면 사용자가 동일한 금액을 내고 이어 정부가 전체 보험료 수입의 20%를 지원한다. 가입자의 보험료에 따라 기업, 정부 몫이 자동으로 정해지므로 국민건강보험 수입 총량을 결정하는 변수는 가입자의 보험료율이다. 작년 연말 국회가 올해 예산안을 확정할 때 국민건강보험 지원금이 정부안에서 3194억원 삭감됐다. 국회를 탓할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애초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4.5%로 전망해 예산을 배정했으나 실제 인상률이 1.6%로 정해짐에 따라 정부지원금이 연동해 축소되는 기술적 감액이었다. 그만큼 올해 국민건강보험 혜택도 줄어들 것이다.

 

강연 때마다 ‘누가 우리 국민건강보험료를 결정하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답하지 못한다. 매년 보험료가 오른다는 뉴스를 듣고 푸념했던 기억뿐이다. 행정부도, 국회도 아니다. 최저임금처럼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모인 사회적 기구, 즉 가입자대표, 의료공급자대표, 공익위원 각 8명씩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범위와 보험료율이 결정된다. ‘우리 가입자 대표는 누구일까요?’, 역시 답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직장가입자를 대표해 민주노총·한국노총·경총·중소기업중앙회, 지역가입자를 대표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전국음식업중앙회·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바른사회시민회의가 참여한다. 내가 누릴 국민건강보험 혜택 범위와 보험료를 누가 결정하는지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면 이는 보건의료 민주주의의 심각한 결함이다. 민간의료보험이 자신에게 가입하면 얼마를 내고 무엇을 보장해주는지 설명하며 상담내역서를 제공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우리 집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이지만 민간의료보험도 가지고 있다. 후자의 보험료가 더 많다. 국민건강보험은 부양자인 나만 가입하면 되지만 민간의료보험은 식구마다 가입해야 한다. 우리 집만이 아니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10가구당 8가구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가구당 평균 보험료가 18만원으로 국민건강보험료 평균 7만원의 2.5배에 달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0% 수준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중병에 대비한 고육지책이다.

나는 국민건강보험료가 지금보다 대폭 오르기를 바란다.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보건의료제도에 대한 오랜 숙고 끝에 얻은 결론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취약하면 어차피 본인부담금, 민간의료보험을 더 내야 한다. 민간의료보험은 보험료 전액을 내가 부담하지만, 국민건강보험료는 내가 납부한 만큼 사용자가 책임지고 정부도 보조한다. 또한 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부과하고 혜택은 아픈 만큼 제공하므로 ‘능력대로 내고 필요만큼 받는 사회연대’를 담고 있다. 모든 병원비에 100만원 상한제를 실시하는 데 14조원이 추가로 필요한데, 우리 가입자가 가구당 평균 3만원씩만 더 기여하면 된다(1인당 1만원). 올해 예상되는 가구당 국민건강보험료 평균 9만원을 12만원으로 약 30% 올리자는 이야기다. 보험료 인상이 크게 부담되는 계층에겐 보험료를 지원하는 보완책을 마련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함께 병원비를 해결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 이는 본인부담금과 민간의료보험에서 벗어나기에 가계 지출을 오히려 절감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 주부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열린다. 6월 말이 결정 시한이다. 지금까지 자연증가분을 따라가는 수준에서 보험료가 정해졌는데, 이젠 달랐으면 한다. 가입자대표에게 전하고 싶다. 내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