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문화와 삶, 세종의 마음을 헤아리는 스승의 날로

2013. 5. 12. 22:0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문화와 삶]세종의 마음을 헤아리는 스승의 날로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5월15일은 세종대왕께서 태어나신 날이다. 이날이 ‘스승의 날’이라는 사실이야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지만 우리 겨레의 큰 스승인 세종대왕께서 나신 날임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두 날이 같은 날짜인 건 우연이 아니다. 5월26일로 기념하던 스승의 날을 대한적십자사와 대한교련이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로 옮겼던 것이다. 세종께서 1397년에 태어나셨으니 올해로 616돌이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글 창제, 물시계와 같은 무수한 과학 장치의 발명, 농사 지식의 보급, 국경 정비, 의학 지식의 정리와 보급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결과물도 소중하게 기려야 하겠지만, 세종 탄신을 맞아 이런 일을 추진하느라 밤을 지새우던 세종의 마음을 한번쯤은 헤아려 봄이 어떨까 싶다. 나는 특히 관청의 노비에게 출산 휴가를 준 일에서 세종의 마음 씀씀이를 엿보게 된다.

 

당시에는 여성 관노비가 아기를 낳으면 7일의 휴가를 주었다 한다. 즉위 5년인 1426년에 세종은 기존의 7일 휴가에 100일을 더 주게 하였다. 7년 뒤에는 법규를 마련하는 기구인 상정소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노비가 아이를 낳을 산달에도 휴가를 주었다. 모두 130일의 출산 휴가를 준 셈이다. 노비도 사람으로 대우하게 한 출산 휴가 조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4년 뒤인 세종 16년에는 아기를 낳는 여종의 남편에게도 30일 휴가를 주어 산모를 돌보게 하였다. 그 마음 씀씀이가 600년이 지난 지금의 복지 수준을 넘어선다.

한자를 숭상하는 사람들은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목적이 한자음의 정확한 표기에 있다고 하면서 세종의 민본 정신을 깎아내린다. 훈민정음 창제 동기는 그 서문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고 나와 있듯 백성이 뜻을 펴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사람이 펴고자 하는 뜻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답답하기로는 억울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가 최고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13년 전에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소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로 대신들과 논쟁을 벌인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소하는 것을 금할 것 같으면 사람들이 억울하고 원통한 정을 펼 곳이 없을 것이니, 개중에 그 자신의 박절한 사정 같은 것은 이를 받아들여 처리해 주고, 만일 관리를 고소하는 따위의 것은 듣지 않는 것이 어떤가”라고 세종은 의견을 냈다. 이에 반대하는 대신에게 세종은 “억울하고 원통한 정을 펴 주지 않는 것이 어찌 정치하는 도리가 되겠는가”라며 수령의 오판에 희생될 백성의 어려움을 받아주고자 하였다. 이런 사정이 바로 세종께서 염두에 두었던 백성의 뜻을 펴는 일이다.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거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대학 간 아들 녀석이 밤늦도록 안 들어오면 살짝 걱정될 때가 있다. 30년 전 그랬을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때의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그렇듯 중·고등학교에 몇 번 강연을 다녀보니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목청을 높여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 과거에는 촌지 문제로, 또 한 시대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대량 해고로, 지금은 학교 폭력과 학생 자살 문제로 선생님들은 마음 편할 날이 별로 없었다. 물론 다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마음 편한 세월은 아니었으니 특별히 선생님들만 위로할 까닭은 없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들에게 격려와 고마움의 손뼉을 친다. 지치지 않고 세종대왕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끌어안고 마음 써주기를 기대하면서.

5월15일에 광화문을 지나게 된다면 세종대왕 동상 앞에 꽃 한 송이 바침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