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문화와 삶] 교과서에 한자 쓰자는 사람들

2013. 4. 13. 21:0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문화와 삶]교과서에 한자 쓰자는 사람들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우리말의 낱말 사용 비율은 토박이말이 54%, 한자어가 35%, 외래어가 2%라고 한다. 그러니 초·중등 교과서에도 한자어가 나오게 마련이다. 한자가 오랫동안 지배층의 글자였고, 근대 학문과 법률, 행정의 주요 개념이 거의 모두 일본의 번역을 거쳐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자어를 다 토박이말로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토박이말이 갑자기 몰려나온다면 이 또한 뜻이 닿지 않는다. 외계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말은 사회와 함께 변하며 그 어울림 속에서 새로 나고 죽는다.

그런데 한자어가 많다는 사정을 들어 초·중등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자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고, 얼마 전 여당의 몇몇 의원이 이런 목적으로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자어는 꼭 한자로 적어야 그 뜻을 알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면서 말이다. 일부 학부모는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이 새로 만나는 낯선 낱말이 한자어일 때, 그 한자를 알고 있다면 뜻을 익히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이 논리는 바로 조기 한자 교육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먼저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부터 짚어보자. ‘한자어는 한자로 적어야만 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흘려들으면 그럴듯하다. 소리가 같고 뜻이 다른 한자어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글자가 아니라 입말로 서로 주고받을 때는 어떨까? 누군가 신기한 재주가 있어 한자로 말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우리는 모든 한자어를 입과 귀로 주고받을 때 어떠한 불편이나 혼동도 겪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라는 글자를 알기 전에, ‘自動車’라는 한자를 알기 전에 이미 그 단어를 무수히 듣고 말하면서 머릿속에 어떤 사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바로 동음이의어 문제를 거론하는 게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분들이 가는 순서다.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을 생각해보자. ‘병’이라는 글자는 질병을 뜻하는 병과 병사를 뜻하는 병, 떡을 뜻하는 병, 맥주병의 병 등이 흔히 알고 있는 말이다. 나는 지금 이 글자들을 하나도 한자로 쓰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의 병을 맥주병으로 혼동하지는 않는다. 이런 건 수준 떨어지는 농담을 할 때나 벌어지는 일이다.

즉 우리가 대화에서 자주 만나는 단어는 말의 어원이나 글자의 형태와 무관하게 머릿속에 뜻이 살아 있고, 앞뒤 문맥을 통해서 충분히 혼동을 피할 수 있다. 이는 입말에서만이 아니라 신문이나 인터넷, 전화 문자메시지 등 우리가 수없이 만나는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한자어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런 한자가 있어서 이런 뜻으로 쓰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일은 선생님들이 하고 있다. ‘애국’이 ‘나라사랑’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 낱말도 많다. 초등 4학년 사회책에 나오는 ‘인문 환경’이라는 말에서 인문(人文)이라는 말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다. 정 필요하다면 괄호 속에 한자를 적어 사전 찾기를 도와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지금의 초·중등 교과서에서도 금지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에 모든 신문이 한글 전용으로 바뀌었듯이 어떤 강제 조항 때문에 교과서에서 한자가 줄어든 건 아니다.

새삼스레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자는 사람들은 1960년대 교과서처럼 한자 혼용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숨기고 있다. 한자어는 한자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므로, 이렇게 병을 주고서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약을 주려고 한다. 약을 팔려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타제 석기’를 ‘뗀석기’로 바꾸었듯이 교과서에 나오는 어려운 개념을 쉬운 말로 바꾸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