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복지 있는 노동이 강하다

2013. 4. 5. 12:0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정동칼럼]복지 있는 노동이 강하다

 
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박근혜표 복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 복지공약을 수정하고 축소한 결과다. 4대 중증질환을 앓는 가족들이 절망하고, 기초연금 20만원을 기대하던 어르신들이 탄식한다. 저임금 노동자가 내야 하는 사회보험료를 정부가 전액 지원하겠다던 약속도 사라져 버렸다. 정말 재정 여건이 어렵다면 국민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건만 애초 약속한 적이 없다니, ‘국민행복’ 시대라면서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본다.

그래도 나는 박근혜 정부에서 복지가 늘어나리라 기대한다. 지난 100일 국정운영에 실망하고,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이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도 그렇다. 박 대통령이 거듭 선언하는 신뢰와 원칙을 믿어서가 아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은 지난 몇 년 우리 사회에서 살아 숨쉬기 시작한 복지민심이다. 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받는 ‘부끄러운 시혜’로만 여겨졌던 복지가 모두가 함께 누리는 ‘뿌듯한 권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을, 대한민국이 반세기 만에 갖게 된 복지에 대한 소중한 재인식이다.

 

놀라운 일이다. 가장 복지에 소극적이었던 이명박 정부에서 복지가 대폭 확대됐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이 거의 시행되고, 반값등록금도 한 단계 진전됐다. 아직 꽃피우진 못했지만 병원비 국가책임, 기초연금 인상도 시대적 요구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예산 준비도 없이 0~2세 무상보육을 전격 실시해 지자체와 엄마들을 당황하게 한 게 이명박 정부였다.

무상복지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라며 통탄해야 할 이명박 정부조차 무상행진에 동참하게 한 이 힘은 무엇일까? 정권의 성격이 아니다. 민생과 복지를 강조했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실제 복지정책 점수는 그리 좋지 못했다. 보편복지가 선보인 것은 오히려 가장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에서이다. 이전 정부와 비교해 이명박 정부에서 달라진 건 무엇일까? 바로 아래로부터의 복지민심이다. 서구 복지국가에서도 복지를 주도한 정권이 사민당인 나라도 있고 보수당인 나라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복지를 확대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복지민심을 강조할 때마다 되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그 복지민심의 실체가 무엇인가? 지난 촛불처럼 에너지는 강렬하되 모양을 그리기 어려운 것 아닌가? 서구에선 복지민심이 노동조합을 통해 조직화됐는데 우리나라에선 가능하겠는가?

여기서 말문이 다소 막힌다. 우리에겐 역동적인 시민사회가 있고, 복지 의제별 네트워크 활동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조직화된 대중 세력인 노동조합이 이 행진에 가세해야 하건만 지난 복지 확대과정에서는 그 역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앞으로도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선 첨예한 이해관계를 돌파해야 하고,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복지서비스 공급체계를 공공화하고 노동시장을 안정화하는 제도개혁이 필수적이다. 보편복지를 직접 누리고, 세금도 일부 내며, 상위계층에게 그에 맞는 책임을 압박해 가는 노동자들의 대중적 힘이 절실한 이유이다.

기지개를 켜는 복지민심에 이제 노동조합이 화답할 차례다. ‘노동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문구로 복지를 문전박대하는 건 곤란하다. 복지 의제가 노동과 상충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복지가 있어야 노동권도 날개를 달 수 있다. 서구 복지국가에서처럼 시장임금(좋은 일자리)과 사회임금(복지)을 두 바퀴로 삼은 노동조합의 전략과 사업을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저임금 노동자 사회보험료 지원 문제가 당장 눈앞에 다가와 있다. 사회보험료를 전액 부담하겠다던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 현행 제도와 엇비슷하게 절반만 지급하는 것으로 후퇴해 있지 않은가! 노동조합이 전략적으로 주목해야 할 영세사업장, 저임금 노동자의 절박한 복지 현안이다. 이제 ‘복지 있는 노동이 강하다’를 주창하며 노동조합이 복지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사회적 목소리를 잃어가는 노동계의 자기 혁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