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어르신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고발한 까닭은?

2013. 3. 17. 16:3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어르신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고발한 까닭은?

 

[주장] 출범한 지 2주만에 국민에게 고발당하는 정부

 

"두 번 다시 우리 노인네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기자회견을 하러 오셨냐는 기자들 질문에 이아무개 어르신이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외친다. 지난 8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회원들과 노년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시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 모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이아무개 어르신의 목소리로 그 이유를 알아보자.

어르신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고발한 이유는?

 

 노년유니온 등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성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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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준비? 그냥, 아이들 공부시키는게 가장 큰 노후 대책이지."

"아이들 대학공부 끝나서 취업하면 부양 받을 줄 알았지. 근데 취업이 안돼. 되더라도 비정규직이야 월급이 자신 결혼자금 준비하기 빠듯해... 그러니, 내가 계속 벌어야 해"

나는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지하철택배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함께 할 어르신을 모집하고 있는데, 이아무개 어르신(68세)이 찾아와 상담중에 노후준비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거푸 한숨을 내쉬며 말씀을 하셨다.

"언젠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가입을 권유하는 우편이 왔어. 1만 원씩 5년을 부었더니 국민연금에서 61세부터 15만 원을 받고 있어. 국민연금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 총 60만 원을 부었는데 벌써 본전을 뽑고도 한 참 남았어."

국민연금이 자신의 노후소득에 큰 비중을 차지할 줄 몰랐다며 연신 국민연금제도 자랑에 말을 잇는다.

"이렇게 좋은 제도인데 사람들이 잘 몰라. 민간보험이 좋은 줄만 알지. 그래서 아들, 딸, 며느리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국민연금 빨리 들라고 했지. 나를 보라고, 이렇게 좋은 제도라면서."

어르신 얼굴에 어느덧 흐뭇한 미소가 담긴다.

국민연금 적립금 40조에 달하지만... 어르신들에게 생사의 문제가 되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4대 중증질환·기초노령연금 등 박근혜 대통령 대선공약의 말 바꾸기 논란에 대한 질의를 듣고 있다. 진 후보자는 이 자리에서 "대선은 캠페인으로 캠페인과 정책은 약간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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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국민연금 적립금이 400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 더 큰 금액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노후불안에 시달리던 어르신 같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주변에 가입을 권유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런데 요즘 불안해 죽겠어. 납세자연맹이라는 곳에서 국민연금을 없애자고 국민서명을 받고 있데. 나 같은 노인에게 국민연금을 없애면 굶어죽어. 아는 사람통해 알아보니까 납세자연맹은 국민연금 없애자고 하면서 S화재 광고를 홈페이지에 싣고 스폰을 받았다고 하대?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냐?"

이아무개 어르신은 국민연금이 자신의 노후소득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국민연금 폐지는 생사의 문제이다. 거기에 최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발언은 이아무개 어르신의 불안을 심화시켰다.

복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기초노령연금 전체노인에게 20만 원 지급과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책임은 선거용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아무개 어르신에게는 국민연금 폐지하자는 주장보다도 몇 백배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기에도 흥분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와 하소연 하신다.

사실 이아무개 어르신은 줄 곧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인 박근혜를 찍었다. 기초노령연금을 소득에 관계없이 전체노인에게 20만 원씩 준다고 해서다. 거기에 4대 중증 질환에 대해서 국가가 100% 책임지겠다는 공약은 이아무개 어르신에게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어르신 아들이 뇌출혈 환자였기 때문이다. 3년 전 아들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이다. 한쪽이 마비됐다.

최근에는 증세가 더 심해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아들을 대신해 며느리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동네 마트에서 일하지만 아들 치료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급기야는 대학에 입학한 손녀는 바로 휴학계를 내고 아버지 치료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손녀 녀석 밥은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어?" "애비와 할배를 잘 못 만나서 애만 고생이야" 말하면서 얼굴 본 지도 한참 됐다고 한다. 주말까지 이어지는 손녀의 아르바이트가 자신의 못남 때문이라는 자책감에 죽고 싶은 적이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아무개 어르신은 일부에서 제기하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딸과 같은 존재였다. 경험적으로 딸이 아들보다 아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기에 박근혜 후보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거기에 한 말은 반드시 책임지는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출범한 지 2주만에 국민에게 고발당하는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에 서울 창신동 쪽방촌을 방문해 직접 만든 도시락을 독거노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 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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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공약 때문에 난 꿈을 가졌어. 손녀를 알바 그만두게 하고 복학시키는 꿈 말이야. 국민연금에서 15만 원 받고, 기초연금 20만 원에 아들 간병비가 안 들어가니까 며늘애가 보태고 내가 좀 보태면 가능하겠더라고."

잠시 말을 멈춘 다음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꿈을 접어야겠어. 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공약을 지키지 않을 것 같아. 인수위에서 국민연금소득과 연계해서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다 주지 않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대통령이 공약대로 추진한다는 말을 재차 강조하기에 믿었지."

어르신의 격정적인 이야기가 쉼 없이 쏟아진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해서 복지부 장관이 이런 말을 하니 이젠 물 건너 간 거지. 내가 속은 거야 박근혜 대통령에게. 나만 속은 게 아니야 며느리, 손녀도 속은 거지 뇌출혈을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 모두 박근혜 후보를 찍었으니까."

이아무개 어르신이 말 끝에 나에게 묻는다.

"우리 가족들 아니 국민을 속였으니 박근혜 대통령은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아? 고발해야 되는 거 아냐? 도와 줄 수 없어!"

다음 날 언론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 국민을 상대로, 야당을 상대로 한 말이 전해졌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 모두가 본연의 소임이 무엇인지 스스로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국민만을 생각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할 때 국민에게 희망의 새 길이 열립니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한 번 대통령을 믿고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조찬 항의 기도를 했다.

"지도자들 본연의 임무가 복지공약을 무시하는 겁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표만 얻으면 되는 겁니까? 이아무개 어르신의 소박한 꿈을 짓 밟는 것이 국민에게 드리는 희망의 새 길 입니까? 대통령을 믿고 봉사 기회를 달라하셨습니까. 절대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당신을 믿고 있다가는 이아무개 어르신 가족을 죽음으로 내 몰 것 같아서요."

기도가 끝나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에서 전화가 왔다. 박근혜 대통령을 '복지공약 사기', '허위사실 공표'죄로 검찰에 고발하려고 하는데 같이 하자고. 이아무개 어르신에게 전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고발하는데 같이 가실래요"라고.

"아! 당연히 가야지 공약은 꼭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걸 보여줘야지.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선거도 다시 해야 하는 거야!"

어르신의 활기찬 음성이 전해진다.

얼마나 화가 나셨던 것일까? 사실 어르신은 상담 내내 내 말을 잘 못 알아 들으셨다. 보청기를 해야 함에도 200만 원가량 하는 보청기를 살 여유가 없었다. 지하철택배 일을 하시려면 거래처 말을 잘 알아들으셔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당신의 소망은 손녀를 어서 복학시키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주만에 국민들로부터 고발당하는 정부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복지공약 실천하여 이아무개 어르신의 손녀의 복학 꿈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를 쓴 고현종 기자는 복지시대 시니어 주니어 노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