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5. 12:01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공공 병원 위기, 어디서 왔나?
김종명 경기도립의료원 포천병원 가정의학과 의사,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의료팀장
공공 병원이 위기다. 홍준표 도지사의 독단적인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리고 있다. 홍준표 도지사에게 공공 병원이란 지방 정부의 예산을 갉아먹기만 하는 존재일 뿐인 듯하다. 진주의료원이 지역 주민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 자부심을 찾을 수 없다.
다른 시·도 지방 정부의 인식도 별반 다르진 않아 보인다. 공공 병원이 민간 병원보다 저렴한 의료비로 병원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의료 취약 계층 진료에 더 매진하며, 수익 논리가 아닌 공익의 논리로 지역 주민의 건강을 담당하고 있다는 긍정성에는 무관심하다. 오히려 적자를 줄이고 수익을 쫓는 데 관심이 쏠려 있다. 진료 실적을 높이라는 압력이 점차 커지고 있고, 매출이 적은 의사는 계약 해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공공 의료를 책임져야 할 공공 병원이 점차 공공 의료와 멀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 공공 병원의 현실이다. 공공 의료가 왜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는지 참담할 뿐이다.
위기의 공공 의료
① "'200명 사형 선고' 홍준표, 당신이 말기 암 걸린다면…"
② 홍준표의 '공공 병원 죽이기', 진짜 목적은 1000억 원?
▲ 보건의료노조는 3월 27일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를 청원하는 시민 3만5000명의 서명을 도청에 전달했다. 이날 진주의료원 노사는 집단 삭발식과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진주의료원의 한 직원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공공 의료란 무엇인가
이제 다시금 공공 병원이 왜 필요한가, 공공 의료란 무엇인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흔히 공공 의료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제시되는 근거들이 있다. 취약 계층에 대한 의료 지원, 응급실·분만실·신종 전염병 대응·방문 간호·공동 간병실과 같이 '필수 의료'이지만 수익을 내기 어려운 서비스 제공, 농어촌과 같은 의료 취약 지역 의료 공급의 필요성 등이 그렇다. 대체로 수익이 나지 않아 민간 의료 기관이 공급하기 어려운 의료 서비스 영역을 제공해주는 것을 공공 의료라 칭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 의료를 민간 부문이 담당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제한하는 잔여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다. 하지만 공공 의료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다른 한편 공공 의료를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이 제공해주는 의료 서비스로 바라보기도 한다. 흔히 공공 의료의 비중을 논할 때가 그러하다. 우리나라의 공공 의료 비중이 10%도 안 된다고 할 때 공공 의료란 정부 소유의 의료 기관 비중을 지칭한다. 그러나 이 역시 공공 의료의 개념을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민간 의료 기관이 제공해주는 의료는 공공 의료가 아닌 민간 의료란 말인가?
양자의 공공 의료의 개념은 모두 올바르지 않다. 모두 의료의 특성을 공공과 민간으로 구분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공공 의료의 개념을 잔여적 개념으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이런 잔여적 개념으로 공공 의료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시 근본적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공공 의료는 국민의 건강권을 기본적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모든 사회 구성원은 우리 사회가 제공해줄 수 있는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어야 한다. 보건 의료는 우리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건강권을 보장해주는 핵심 수단이다. 의료를 자본주의적 사적 시장 관계에 맡긴 채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줄 수 없다. 모든 국민은 지불 능력에 관계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즉 국민에게 건강권 보장을 위해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 자체가 곧 공공 의료라는 것이다. 의료 기관의 소유 주체가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말이다. 미국, 한국, 멕시코 등 몇 개의 의료 후진국을 제외한 대다수의 OECD 국가들은 이처럼 의료 서비스를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공공 의료 위기, 왜 왔나?
공공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물론 공적 방식으로 조달한다. 조세로 재원을 마련하는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나 사회보험료로 조달하는 우리의 국민건강보험 방식이 그것이다. 의료 서비스 제공은 국가가 설립한 공공 병원이나 민간 병원이 담당할 수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국가들은 국가가 직접 공공 병원을 설립하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복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등은 90% 이상이 공공 병원일 뿐 아니라 국민 의료비 중 공적 지출 비중이 80%를 넘는다.
반면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는 국민의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국민건강보험과 같이 의료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재원이 공적으로 조달되고 있긴 하지만, 매우 취약하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60% 정도밖에 되지 않아 40%는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제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높은 환자 부담으로 의료의 공공성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취약한 건강보험의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험 수가의 저수가 정책을 유지해왔다. 의료 기관은 저수가를 보상하기 위해 과잉 진료와 비급여 남발로 대응하였다. 특진료(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고가의 MRI, 초음파 검사 등을 했다. 또한 의료 서비스 수익 외의 장례식장, 고가 건강검진 등 비의료 부문에 투자를 늘려 보전받기도 한다. 공공 병원이든, 민간 병원이든 마찬가지였다. 공공 병원인 국립 서울대병원이 재벌 민간 병원인 서울아산병원과 다를 바 없게 인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의 저수가 구조 하에서 병원이 흑자 재정이라면, 그 이유는 다음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상당한 과잉 진료를 하고 있거나, 값비싼 비급여 비중이 크거나, 의료 사업 외에 이익이 많이 남는 부대사업에 열중하고 있거나.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 하에서는 의료 공공성에 충실한 진료를 하는 의료 기관이라면, 흑자 구조는 거의 불가능하다. 공공 의료와 멀어져야만 병원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 지방의료원은 더욱 심각한 재정적 문제에 노출되었다. 중소형 종합병원이 주축인 지방의료원은 국립대병원처럼 낮은 의료 수가를 보상받을 수 있는 비급여를 남발하기 어려웠다. 지방의료원은 상대적으로 병원비가 저렴하다고 인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지방의료원이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더욱이 지방의료원의 경우, 공공 의료를 수행하기 위해 민간 의료 기관이 제공해주기 어려운 공공 사업까지 떠맡아야 했기에 추가적인 적자가 불가피하였다. 지방 정부가 공공 병원의 이런 '건강한' 적자를 보전해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지방 정부는 그럴 의사가 없다. 오히려 지방 정부의 예산 지원을 줄이기 위해 공공 병원의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만 관심을 보인다. 수익 중심의 운영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공공 병원은 점차 공공 의료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공공 병원 투자에도 매우 인색했다. 1960~1970년대만 하더라도 공공 병원이 전체 의료 기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후 공공 병원에 대한 투자는 없는 반면, 민간 의료 기관은 크게 증가하였다. 그 결과 현재 공공 병원은 전체의 겨우 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위축되었다.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영리화된 의료 시스템을 갖춘 미국조차 공공 병원의 비중이 3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4조3000억 원을 투자하여 공공 병원의 비중을 30%까지 확대하겠다는 '공공 보건 의료 확충 종합 대책'을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김종명
민간 의료 기관의 급격한 팽창과 과잉 공급은 의료의 영리화를 요구하는 흐름을 강화했다. 노골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영리 병원을 허용해달라는 요구와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폐지'와 같이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위협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부응하여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의료 산업화 정책을 주요 국정 과제로 설정하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공공 의료로부터 멀어져가는 공공 병원, 의료의 공공성이 탈색된 민간 병원의 성격을 강화한다.
지금 지방의료원의 존폐 위기의 근저에는 위와 같이 한국 의료 체계가 공공 의료로부터 멀어지고 영리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는 흐름이 있다. 다시금 기본권으로서 건강권, 그것의 핵심 수단으로서 공공 의료를 복원해야 한다. 의료의 공공성이 퇴색하고 영리화가 진행될 때 그것이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은 끔찍하다. 미국의 영리화된 의료가 천문학적인 의료비 지출로 인해 가계 파탄이 일상화되고 국민 건강 수준은 형편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진주의료원 폐업? 공공 병원 대폭 확충해야
공공 병원의 위기는 우리 의료 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선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비급여를 급여화하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대폭 줄임으로써 의료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켜야 한다. 또한 보장성 확대는 지금의 불필요한 과잉 진료를 줄이고 비급여를 없애 의료 기관의 영리 추구적 진료 행태를 차단할 수 있다. 특히 보장성 확대로 의료 수가의 적정 수가를 보장함으로써 공공 병원의 재정 적자의 상당이 해소될 수 있다. 그만큼 지방 정부의 지원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공공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간 병원이 제공해주는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공 병원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의료 서비스는 그 자체로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기에 민간 병원이 공급하든, 공공 병원이 공급하든 수익 논리보다는 국민의 건강권이 우선이라는 공익 논리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민간 병원이 공공성을 담보하여 공공 의료를 수행한다면 굳이 공공 병원이 불필요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홍준표 도지사도 진주의료원 폐원에 이런 논리를 들이댔다. 그러나 그것이 공공 병원을 줄여야 할 이유가 될 순 없다. 민간 병원이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공공 병원이 지닌 공공성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민간 병원은 운영을 위해 어느 정도 수익 중심의 운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반면 공공 병원은 수익 중심의 부담을 덜 수 있어 과잉 진료를 줄일 수 있고, 수익이 나지 않는 공익 사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
▲ 진주의료원의 호스피스 완화 센터의 한 일반 병실. 진주의료원은 6인실 가격으로 환자들에게 4인실을 제공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들은 이곳에서 전문 의료진의 돌봄을 받으며 임종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공공 병원과 같은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을 확충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공공 병원은 공공 의료의 모델이자 보건 의료 체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 국가가 보건 의료 정책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다. 의료 취약 지역 의료 안전망 확충, 적정 진료의 모델 구축, 치료 중심의 의료 체계 한계 극복, 신종 전염병과 같은 위기 대응이나 포괄수가제와 같은 지불 제도의 도입처럼 중요한 국가의 보건 의료 정책을 실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 병원의 비중이 최소 30% 이상은 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방만하고 관료적인 운영으로 인해 공공 병원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공공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로서 이를 완전히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공공 병원 확충을 반대하는 근거가 될 순 없다. 관료적 운영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공공 병원의 주인은 도지사가 아니며 직원이나 노조도 아니다. 바로 지역 주민과 환자다. 공공 병원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경영에 지역 주민과 환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면 방만하고 관료적인 운영의 문제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또한 그래야만이 공공 병원을 공공에게, 지역 주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진주의료원으로부터 비롯된 공공 병원의 존폐 위기는 우리 공공 의료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것이 해당 병원이나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이며, 바로 우리의 문제, 우리 건강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의 심각성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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