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올여름, 복지전쟁이 시작된다

2013. 4. 19. 22:5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올여름, 복지전쟁이 시작된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까. 증세가 없다면 공약 시행 시기를 늦출 가능성이 높다.

증세할 경우 어떤 세금을 올리느냐가 논란이다. 두 시나리오가 다 진행될지도 모른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박근혜 정부가 복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다.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용어까지 유명해졌다.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 같은 ‘직접 증세’ 없이 복지 재정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 작업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될까? 아무도 그 규모를 예단할 수 없지만 한계는 예상된다. 지출 구조조정의 경우 애초 우리나라 국가재정의 절대 크기가 작아 축소 여지가 좁다. 올해 유럽 국가들의 재정 규모는 평균 GDP 49.5%인데 한국은 31.5%에 불과하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불리는 탈루소득 색출도 과세 인프라 개혁을 수반해야 하는 일이기에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한 해 30조원에 이르는 비과세 감면이 구체적으로 조달 규모를 계산할 수 있는 영역인데 이 중 60%가 서민·중산층, 중소기업 몫이어서 제약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와 원칙이라는 자신의 대표 상표까지 훼손하며 복지 공약을 축소하는 것도 공약에 필요한 돈을 모두 충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증세 없이도 복지 재정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했건만 정작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재정 개혁의 밑그림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래서 다수 전문가들은 기존 세율을 상향하는 증세가 불가피하리라 전망한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새누리당 국회의원들도 담배세 대폭 인상을 주장하거나 입법 발의한 상태이고, 기획재정부 내부에선 부가가치세·개별소비세·주세 등에 부과하는 ‘건강세’ 논의도 진행된 모양이다. 본격적인 논란은 정부가 구성한 조세개혁추진위원회가 중장기 세입 확충 방안을 발표하는 올해 여름부터 시작될 것이다. 8월은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담을 구체적 세입 수치를 계산하고 세법 개정안을 확정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호언장담한 대로 필요한 재정을 증세 없이 모두 확보하는 경우이다. 박근혜 정부가 재정정책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이때는 재정 조달 방안과 필요재정 규모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꼭 필요하다.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연금 20만원’ 공약을 차등지급 방식으로 수정하고, 지급 시기도 ‘2013년 추진’에서 ‘2014년 7월’로 미루었듯이 복지 공약 조정이 또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공약 내용을 공공연하게 또 바꾸기보다는 시행 시기를 늦추는 방식이 선호될 듯하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복지 재정이 부족하니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밝히는 경우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선 공약에서 국민 합의로 조세 부담 수준을 정하는 일과 같이 사회적 갈등이 큰 국가 현안을 논의하는 기구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증세에서 핵심 논점은 과세 대상이다. 정부·여당이나 국책 연구기관은 간접세를 통한 증세를 선호한다. 담배세와 건강세 모두 소비자가 동일한 금액을 납부하는 간접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과 OECD가 권고한 증세 방안도 현행 부가가치세율을 올리는 내용이다. 반면 보편복지 세력이 주창하는 증세는 당연히 직접세가 대상이다. 보통 소득세, 법인세, 부동산·금융 자산세에서 상위 계층, 대기업의 과세 책임을 강화하자는 부자 증세가 주요 내용이다.

부자 증세에 보편 증세를 결합한 사회복지세도 있어


간접세 증세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낮은 부가가치세율을 근거로 제시한다. 실제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율 10%는 OECD 평균 18.7%에 비해 크게 낮다. 직접세에 비해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도 감안했을 것이다. 반면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사회양극화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상위 계층과 대기업의 조세 부담이 절대적 수준에서 낮다는 걸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필자처럼 부자 증세에 보편 증세를 결합해 ‘누진적 보편 증세’ 원리를 지닌 사회복지세를 도입하자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중간 계층 이상 사회 구성원이 조금씩이라도 세금을 더 내야 부자 증세를 향한 실질적 압박이 생겨날 수 있다는 ‘증세 정치’를 주목한다.

혹시 두 가지 시나리오가 동시에 진행되면 어찌하나? 조달해야 할 재정 규모를 줄이기 위해 복지공약을 수정하면서 세금 인상까지 등장하는 경우이다. 지난번 복지공약 변질 사태를 겪은 탓인지 자꾸만 이 종합 시나리오가 머리에 맴돈다. 올여름 그렇지 않아도 무더운 계절이 복지와 세금 논란으로 더 뜨거워질지 모르겠다. 어떤 경우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