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칼럼]외국인 의료관광호텔 설립 허용

2013. 6. 7. 13:2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정부가 ‘메디텔(의료호텔)’ 설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법안은 병원이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외국인 의료관광객 유치를 돕자는 취지다. 메디텔 설립을 추진 중인 병원들은 “메디텔은 환자와 보호자를 배려하는 숙소”라면서 “(입법예고안의)설립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보건의료시민단체는 “메디텔은 사실상 영리병원 허용에 다름 아니며 궁극적으로 전국민건강보험제도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 사실상 ‘영리 병원’ 허용… 의료·건보체계 붕괴 불보듯

 

문화체육관광부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의료기관과 유치업자에게 메디텔(의료호텔) 설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했다. 외국인 관광객 1200만명 시대에 의료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메디텔이 허용되면 일부 의료목적으로 입국하는 관광객들의 편의가 약간 증대될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메디텔은 의료관광객의 편의 증대 외에 우리의 의료체계에 끼치는 부정적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메디텔은 영리병원의 허용과 의료체계의 상업화를 가속화시켜 궁극적으로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첫째, 의료기관이 숙박업에까지 진출하겠다는 것은 한국 의료기관들의 영리추구 현상이 얼마나 극심한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의료기관들은 고유의 역할인 환자진료에 집중하기보다는 수익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장례식장, 주차장, 시설임대업, 종합검진 등의 부대사업이 그렇다. 물론 정상적인 진료만을 통해서는 경영수지를 맞추기가 쉽지는 않기에 높은 이익을 갖다주는 부대사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의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진료에 매진해야 할 대학병원마저 메디텔이라는 숙박업에까지 진출하여 돈벌이에 나서는 꼴이 반갑지 않다.

둘째, 메디텔 설립을 의료기관 외에 유치업자에게도 허용하겠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유치업자는 의료기관이 아닌 영리목적의 사업체이다. 이들이 건물(메디텔)을 짓고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의료인을 고용하여 진료기능만 갖추게 된다면 그대로 영리병원이 되는 셈이다. 지금도 유명 호텔 내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입주해 피부·미용 중심의 고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치업자에게 메디텔을 허용하는 것은 숙박업체가 건물을 임대하던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의료기관 운영에 필요한 숙박·의료시설·의료장비를 모두 갖추고 여기에 의료진만 고용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사실상 진료만 의사가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한 수익은 합법적으로 유치업자가 외부로 가져갈 수 있는 영리병원과 다름없어진다.

셋째, 보험회사에도 메디텔을 설립할 수 있는 유치업자 자격을 주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에 메디텔을 허용하면 국민건강보험제도조차 흔들 수 있는 무기를 보험사에 쥐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 정부는 보험사가 외국인 환자에 대해 유인알선을 할 수 있도록 유치업을 허용해주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가 메디텔을 짓고 병원과 계약을 맺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영리보험사는 환자-건강보험-의료기관으로 이루어진 의료체계에서 비켜나 있다. 영리보험사는 공적 건강보험이 아니라 보험사가 의료공급체계를 주도하는 미국식 영리 의료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메디텔은 보험사의 병원 소유를 우회적 방법으로 허용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우려 때문에 메디텔 허용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우려는 우려일 뿐 메디텔은 외국인 환자로만 제한되므로 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경제자유구역 영리병원의 허용 과정을 보면 이런 우려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민단체는 10여년 전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추진한 외국인 영리병원에 대해 결국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여 의료비를 폭등시킬 뿐 아니라 건강보험제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외국인 전용병원이라더니 몇 년 후에는 외국인만으로는 병원 운영이 안된다며 내국인도 이용하도록 허용한 바 있다. 메디텔 역시 마찬가지다. 메디텔이 외국인 환자만을 수용해서는 수익이 나기 어렵다. 2011년 기준 유치업자에 의한 의료관광목적의 외국인 입원환자수는 겨우 429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결국엔 외국인만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으므로 내국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로 나아갈 것이다. 이리되면 병원들은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보험 적용이 안되는 메디텔에 입원하도록 종용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의료관광업에 대해 언급만 하자. 매년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12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와 자연유산,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보려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다는 것은 관광수입 여부를 떠나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정부의 관심은 오직 이들 외국인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어떻게 좀 더 털어볼까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이 한국을 여행하다보면 불행하게도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메디텔로 돈을 벌어볼까보다는 건강보험의 보장을 튼튼하게 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진료비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여행 중 불의의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외국인들에게 좋은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는 데 진정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김종명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의료팀장·의사>



■ 외국인 환자 숙박시설 태부족… 환자 배려 차원서 허용돼야

의료관광차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탁월한 의료 수준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강동경희대학교병원을 방문하는 해외환자 수는 2010년에 5000명에 육박했고, 2011년에는 1만명 가까이로 2배 늘었다. 2012년에는 1만4000여명에 달하였다. 2013년에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해외에서 더 많은 환자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제진료의 특성상 해외에서 온 환자는 한국에 체류하는 짧은 기간 중에 모든 질환에 대한 검사, 진료 등을 진행해야 하므로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정하여 유숙하면서 통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위치한 강동경희대학교병원의 경우 인근에 마땅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 관광호텔도 가깝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고가의 숙박비로 인해 해외환자 및 그 보호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해외환자 보호자들은 병원 근처에서 저렴한 숙소를 구하지 못해 원거리에서 통원을 하거나 비싼 호텔 등지에서 숙박을 하고 있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이런 애로사항을 병원 측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병원에서 외국인 보호자를 위해 빈 병실을 대여해 줄 수 있는지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한국을 찾는 국제환자는 러시아 및 CIS국가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다. 러시아 환자들은 대부분 취사시설을 갖춘 숙박시설을 원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음식에 익숙지 않으며, 특히 환자들이다 보니 의사의 식이요법에 맞추어 그들의 음식을 직접 요리해서 먹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취사시설을 갖춘 숙박시설은 거의 없으며, 빵과 과일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메디텔은 병원에서 관리·운영되어야 하며, 어떤 수익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배려 차원의 숙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고 한국 의료관광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 관련 부처에서는 외국인 환자와 그 보호자들에게 숙박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메디텔 도입을 의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국제진료에 관여하는 의료기관으로서는 참으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세부 시행 방안을 살펴보면 문제점이 상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 공고 2013-82호 ‘관광진흥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 입법예고’를 보면, 해외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료법인도 의료호텔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기존 법령을 개정할 것이라고 되어 있으나 그 기준 요건이 과도하여 현실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대표적인 문제 요건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욕실이나 샤워시설을 갖춘, 방 한 개의 면적이 19㎡ 이상인 객실 30실 이상일 것’이라고 적시한 조항이다. 이러한 정도의 규모가 되는 숙박시설을 건립하고 유지할 수 있는 의료법인은 국내 굴지의 대형병원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병원의 수준이나 병원별로 내원하는 외국인환자 수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메디텔의 규모를 법령으로 규정하여 일괄 적용한다는 방침은 현장의 실상에 부합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미용 성형이나 치과 진료 등을 전문으로 시행하는 개인 중소 병·의원의 경우, 앞에서 말한 ‘객실 30실 이상’이라는 조건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정부는 우선 메디텔 도입을 희망하는 각 기관의 의견을 적극 수렴한 후 검토·조율을 거쳐서 각 의료기관별로 자율적으로 자체 실정과 특성에 맞게 추진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 제도를 진행하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사료된다.

 

신속한 정책 수립 및 집행을 통해 민원 사항을 빠르게 해소시켜주려는 관계 부처의 관심과 도움에는 먼저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나 해당 법령이 일단 입법화되고 나면 개정 또한 어려운 부분이므로 메디텔과 관련된 각급 기관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서로 공감할 수 있고 현실성 있는 메디텔 관련 정책을 수립·운영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심모원려가 필요할 것 같다.

처음 시행하려는 정책인 만큼 각자의 의견이 다양하고 서로 간의 이해 상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메디텔’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메디텔은 먼 곳에서 병원을 찾는 환자나 환자 가족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의 숙박시설이어야 한다. 일반 호텔 개념의 숙박시설과는 엄연히 차별화되어야 하며 그 관리나 운영도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한 제도라는 의미가 특별히 부각되어야 한다.

<박문서 | 강동경희대학교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