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건보료를 올려라, 가입자 단체여!

2013. 6. 27. 14:5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정동칼럼]건보료를 올려라, 가입자 단체여!

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우리를 억누르는 민생고 중 빠지지 않는 게 병원비다. 이것만 없어도 노후 걱정의 절반은 사라질 듯하다. 병원비로 인한 아픈 사연을 수없이 듣고, 민간의료보험 광고를 곳곳에서 보며 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중병에 대비하기에 허약한 탓이다.

병원비 문제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해법도 어려워 보인다. 우선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해 비급여 진료가 방치되고 있다. 희귀난치성질환, MRI 등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료임에도 돈이 모자라 급여 적용을 못해준다. 행위별 수가제라는 진료비 산정방식도 문제다. 진찰, 검사, 주사 등 세부 의료 행위마다 가격을 지불하는 까닭에 과잉진료를 유도한다. 공공병원도 10%에 불과하다. 의료기관 절대 다수가 민간병원이어서 수익 진료에 연연하게 된다.

 

빈약한 재정으로 인한 비급여 진료 방치, 통제가 어려운 의료비 지불제도, 민간 중심 의료기관, 이것이 우리 의료체제가 지닌 3대 중증질환이다. 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처방은 무엇일까? 나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대폭 확충하는 게 이 난마를 푸는 실마리라고 본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나면 우선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어져 병원비 걱정이 해소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진료비 통제 효과가 생긴다는 점을 주목하자. 보통 무상의료가 되면 의료 남용이 커질 거라 우려하는데, 실제로는 반대다. 보장성 확대를 위한 핵심 조치는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를 급여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러면 과잉진료의 온상인 비급여 진료가 국민건강보험의 심사 대상으로 들어오게 된다. 의사들은 이제부터 기존 비급여 진료도 국민건강보험에 청구해 심사를 받아야 하기에 지금처럼 표준에 어긋나는 과잉진료를 하기 어려워진다. 동시에 비급여의 급여화는 현재 백내장, 제왕절개 등 7개 질환군에만 시행되는 포괄수가제를 확대하는 핵심 윤활유가 된다. 포괄수가제는 해당 질환에 필요한 진료들이 모두 급여로 바뀌어야 종합 정찰가격으로서 실효를 거둘 수 있기에, 지금까지 여러 비급여가 존재했던 질환군으로 포괄수가제가 확산될 수 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 재정 확충은 공공병원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현재와 같이 비급여 진료가 병원 운영의 주요 수단인 한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이 자리를 잡기 어렵다. 공공병원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에 근무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 압박에서 벗어나 교과서에 따른 소신 진료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현재 진료비 가격인 의료수가가 급여진료는 원가의 75%, 비급여 진료는 190% 수준이다. 민간 병원들은 비급여에서 돈을 벌어 급여진료 적자를 메우지만, 공공병원은 이 꼼수에 의존하지 않아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면 양 진료의 수가 수준을 공평하게 맞추어 급여진료 수가는 인상을, 비급여 수가는 인하를 가져온다. 급여항목 중심으로 진료를 펴는 공공병원의 경영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이러한 의료개혁의 첫 관문이 바로 국민건강보험 재정 확충이다. 그런데 지난 18일 가입자대표, 의료공급자대표, 공익대표가 참가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내년 국민건강보험료 인상률을 1.7%로 결정했다. 인상폭이 작아 다행인 듯 보이지만, 내년 국민건강보험 수입이 사실상 제자리이므로 무거운 본인부담금이 지속된다는 이야기다. 국민건강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정률로 조성되고 고용주와 국가의 분담을 동반하는 재원이지만, 본인부담금은 소득과 무관하게 전액 환자가 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이 작을수록 서민 부담이 가중되는 게 우리 병원비 구조이다.

언제까지 ‘낮은 보험료’의 악순환을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번 칼럼에 썼던 “내 건보료를 더 내게 해 달라”는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모든 병원비에 100만원 상한제를 구현하기 위해 가구당 평균 3만원, 지금보다 30%를 더 내면 된다. 그러면 본인부담금과 민간의료보험에서 벗어나면서 가계비를 절감하고, 남용을 부추기는 진료비 제도도 개혁하며, 지방에 공공병원을 늘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제발 응답하라, 가입자단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