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 내가 꿈꾸는 ‘구체적인’ 나라

2015. 6. 25. 16:4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지난 대선 이후 보편복지 진영은 박근혜 정부에 대응하는 방어전에만 머물렀다. 상대편이 만든 운동장에서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어렵다. 이제는 구체적 대안으로 논쟁해야 한다.

 

_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메르스로 온통 난리지만,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은 다가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김무성-유승민 체제를 출범시켰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을 앞세워 혁신을 꾀하고 있다.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 세력들도 단일 대오를 구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당은 아니지만 복지단체들도 선거 공간에서 복지 확대를 위한 기폭제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우선 나오는 이야기는 복지국가의 전략적 상을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서구 사민주의형인지 자유주의형인지, 만약 한국형이면 실체는 무엇인지 등이 토론거리다. 복지국가의 미래 준거가 분명해야 현재도 힘을 낼 수 있다는 취지다. 보편복지 담론의 논리를 더 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박근혜 정부의 복지 구조조정 등 선별복지 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모두 필요한 과제들이다. 여기에 더해 나는 복지국가상이든, 보편복지 담론이든 지금 벌어지는 쟁점을 파고드는 대안 활동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전략과 담론만으로 시민의 마음을 잡을 수 없고, 정부 정책 비판을 넘어 구체적 대안으로 시민을 만나야 한다.

예를 들어, 의료보장성 강화 혹은 무상의료는 보편복지 진영의 숙원이다. 많은 시민들이 병원비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어느 복지 의제보다 대중적 토양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마침 지금 국민건강보험 흑자 누적액이 무려 13조원에 이른다. 돈이 없어서 보장성을 늘리기 어렵다는 핑계가 통할 수 없는 좋은 때이다. 뜨거운 논쟁을 거치더라도 보장성 우선 항목을 확정하고 실행 운동을 펴야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을 특정화했다. 다른 질환은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4대 중중 질환부터 해결하자는 논리가 문제 해결 비전을 전달하는 데 오히려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건강보험 흑자가 발생하자 시민사회가 ‘암부터 무상의료’를 주창하고 나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흑자액 사용이 공론화된다면 흑자 재원의 한시성을 넘어서기 위해 이번 기회에 건강보험료를 노사가 함께 더 냄으로써 사보험 대신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운동도 재점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적연금 강화도 방안이 분명해야 실질적 논의로 이어진다. 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제안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가 지금 그렇게 절박하고 방향에서 적절한지에 대해 이견이 있지만, 어쨌든 뚜렷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는 전향적이다. 그래야 보험료 수준은 어떠해야 하는지, 현재 노인 빈곤과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는 어떻게 할지 토론이 이어지고, 근본적으로 공적연금 강화의 핵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다루게 될 것이다.

세금 불신에 편승하기보다 조세 저항을 ‘어떻게’ 완화할까 궁리해야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도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명확할수록 바람직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화’라는 포괄적 요구는 시민들이 다가가기에 추상적이다. 지난해 송파 세 모녀가 죽음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를 고발하자, 박근혜 정부는 ‘맞춤형 급여체계’로 대응했다. 이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별개의 내용이었지만, 그런데도 ‘구체적 대안’ 형식을 띠었기에 논의 구도를 왜곡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 문제가 ‘수급 요건’에 있다면 앞으로 ‘부양의무제 폐지’와 같은 요구가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

세금 의제도 시민들 손에 잡혀야 한다. 근래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도 ‘세금 폭탄’ 정치를 편다. 정말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당이라면 세금 불신에 편승하기보다는 어떻게 조세 저항을 완화할까를 고심해야 하고, 조세 정의, 법인세 인상 등을 다루더라도 시민들이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지혜를 짜야 한다. 복지단체들이 증세 대안으로 사회복지세를 제안한 것도 시민들의 복지 체험과 권리 인식을 확산하고 기존 지출 불신을 우회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2012년 대선 이후 보편복지 진영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 축소, 의료 시장화 등에 대응하는 방어전에 머물러왔다. 상대편이 만든 운동장에서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어렵다. 다행히 최근 건강보험 흑자액 활용, 공적연금 강화 논의가 시작되고, 조만간 증세 의제도 등장할 수 있다. 이제는 구체적 대안으로 논쟁하자. 그래야 시민들의 열정을 모으고 이 과정에서 미래의 복지국가상도 골격을 갖추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