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4. 17:19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난주 30대 여성이 자신의 신생아를 살해하고 시신을 택배로 친정어머니에게 보낸 사건이 알려졌다. 처음엔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당혹스러웠지만 기사를 되새길수록 극한에 내몰린 그녀가 안쓰러웠다. 아무런 의지처가 못되는 우리 사회가 원망스럽고 복지시민단체 일원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그녀는 혼자 살면서 쪽방 월세, 난방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휴대전화도 착신이 정지될 만큼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의사판단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설명이 있는데, 이 역시 7살 딸을 친정에 맡기고도 소식을 끊고 살 정도로 생활이 불안정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배 속에서 아이가 나오는 절박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는 게 이번 일의 핵심이다.
물론 여러 복지제도가 있다. 홀로 아이를 낳거나 양육하는 사람을 위해서 한부모지원제도가 있다. 그런데 그녀는 홀로 살지만 남편과는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상태라 한부모에 해당되지 않는다. 남편이 이유 없이 부인을 버린 ‘유기’라면 한부모로 간주하는 예외 조항이 있지만 상의할 이웃조차 없는 그녀에게는 너무 먼 항목이다.
긴급지원제도도 있다. 갑작스럽게 위기상황에 빠진 가구를 위한 복지다. 주소득자의 행방불명, 휴·폐업, 가정폭력 등에 직면한 경우 제공되는데, 이 제도 역시 오랫동안 어려움이 누적되어 사실상 위기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출산으로 생계가 끊긴 상황이므로 긴급지원을 요청해볼 수 있었건만 당사자 신청주의는 정보와 기력이 부족한 그녀에게 높은 장벽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 제도는 최저생계비 이하 계층을 위한 핵심 안전망인데 ‘자격 요건’이 까다롭다. 소득이 없더라도 노인 연령이 아니면 일정한 소득이 있다고 추정하고, 자식이나 사위 등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얼마씩 이전소득이 있다고 간주한다. 30대인 그녀 역시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전전했을 것이다. 출산 후라면 근로추정소득은 면할 수 있으나 남편, 친정 등 부양의무자 요건을 통과해야 하고 이 역시 신청주의 산을 넘어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 복지제도는 존재하나 가난한 많은 사람들이 그 밖에서 살고 있다. 말로 다하지 못할 만큼 복잡하고 한스러운 게 ‘가난’이건만, 이것을 몇 가지 기준으로 재단해 설계된 탓이다. 한 사람이라도 복지 대상에서 누락되지 않기보단 결코 부정수급자가 생겨선 안 된다는 관리 지침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당사자가 직접 나서야 하는 신청주의까지 그 앞을 가로막고 있다.
시민사회도 겸허히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보편/선별 복지 논쟁을 거치면서 마치 선별복지가 애초 ‘나쁜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사회서비스나 사회수당 복지는 보편/선별 노선으로 갈리지만, 공공부조 복지는 애초 가난한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선별복지’이다. 여기서는 보편/선별이 논란거리가 아니라 복지를 받아야 할 사람이 선별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문제다. 지난 몇 년 복지 바람이 불면서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중상위계층의 복지는 늘었지만 기초생활보장, 장애인복지, ‘줬다 뺏는 기초연금’ 등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는 뒤로 밀리고 있다. 복지의 불균등 발전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복지 전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행정이 주도하는 복지로는 틈새를 메우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웃 관계가 좁고 정보에 취약할 수 있다. 절박할 때 마음 편히 찾아갈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지자체, 복지관, 마을이 함께 그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서울시가 복지행정과 지역 마을 망을 결합해 기존 주민센터를 동마을복지센터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같은 문제의식으로 이해된다.
그녀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아이와 그녀 모두에게 미안하다. 작년 송파 세 모녀도 세상을 떠나며 복지 사각지대를 고발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그대로이다. 절벽에 놓인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복지로 불릴 자격이 없다. 제도 설계에서 운영까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가 송두리째 거듭나야 한다. 1000일이 넘도록 광화문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사는 마을과 이웃이 복지 전달의 싹으로 커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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