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연금 공방에서 사라진 두 가지

2015. 5. 14. 14:2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국민연금 공방을 두고 탄식하는 지인들을 자주 본다. 연금제도가 복잡하다 해도 이전에는 귀동냥이라도 나름 따라갔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어지럽단다. ‘국민연금 50% 급여율’을 위해 정부는 보험료를 두 배로 올려야 한다 말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1%포인트만 더 내면 된다고 하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보다 4분의 1을 더 받으면서 보험료를 두 배 내야 한다는 걸 용납하기 어렵고, 또 미래 연금재정이 어렵다는데 1% 인상으로 가능하다는 주장도 수긍하기 힘들다. 이래서 국민연금에 대해 지녔던 대략의 ‘감’조차 흔들린다는 하소연이다. 논란을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떤 개혁안을 따라간단 말인가.

사실 정부와 야당이 제시하는 수치가 전혀 다른 분석작업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수치는 5년 주기로 실시하는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에 근거한다. 재정추계는 연금제도의 상태를 진단하고 향후 재정개혁 수단을 모색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작업이다. 그 결과 현행 보험료에 변화가 없으면 2060년에 기금이 소진된다고 진단되었고, 재정안정 목표에 따라 약 13~19%까지 필요보험료율이 도출되었다. 연금 정치는 무엇인가? 이 결과를 토대로 적정한 방안을 선택하는 일이고, 이를 찾기 위해 인내를 가진 사회적 논의를 벌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연금 공방은 경로를 이탈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두 가지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국민들의 상식이다. 사람들은 1%와 두 배 사이 어디일 거라 생각하는데, 양자는 극단의 수치를 동원한다. 우선 정부는 보험료율을 두 배 인상해야 한다며 국민을 위협한다. 재정추계에서 도출된 수지균형 필요보험료는 이론상 그러하다는 것이지 지금 우리가 선택 가능한 정책적 보험료는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 재정추계 작업을 거치면서 이 수치가 실제 제도개선 방안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이유이다. 이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보험료 두 배 인상, 세금폭탄론을 꺼내 들었다. 공적연금 강화 논의를 아예 봉쇄하려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에서 공적연금 강화 의제를 끌어낸 건 큰 성과다. 그런데 ‘보험료율 1% 인상론’으로 문제를 불거지게 했다. 1%만 올리면 기금 소진연도 2060년에 변화가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다. 이런 셈법이면 급여율을 20% 올리는 데 보험료율 2%면 된다. 세 차례 재정추계 작업에서 이 수치 역시 선택 가능한 보험료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아예 재정목표 분석 대상도 아니었다. 1%는 기금 소진연도 정보를 제시할 뿐 미래 연금재정 과제를 해소하지는 않는다. 

위기의 메시지를 안전 인증으로 해석하는 건 안이하다. 지금 두 배 인상론이 가당치 않지만 1% 충분론도 곤란하다. 국민의 상식에 맞게 논의를 해야 한다.

이번 공방에서 사실상 사라진 또 하나는 ‘기초연금’이다. 2007년까지 일반 국민에게 적용되는 공적연금은 국민연금뿐이었지만 이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면서 이제는 국민연금/기초연금 이원체계로 전환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액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두 연금을 더욱 밀접한 짝으로 만들어 놓았다. 합의문 제목이 ‘공적연금 강화’라면 기초연금을 포함해 두 연금을 균형 있게 논의해야 한다. 


국민연금 급여를 올리면 당연히 노후보장이 개선된다. 하지만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어려운 장벽을 넘어야 한다. 후세대 부담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올려야 하는데 이러면 기금이 더 거대화되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사각지대를 구조적으로 동반한다. 현재 성인 3300만명 중 무려 절반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이들 비정규노동자, 영세자영업자, 전업주부 등은 노후에 국민연금에서 배제되어 있기에 급여율이 오른들 소용이 없다. 이에 비해 기초연금은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보험료 납부라는 문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당해 세대가 당해 필요 재정을 조달하는 구조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후복지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조건에서 노인 증가에 맞추어 재정을 마련하는 재정연착륙 연금이다. 


연금 공방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 50% 수치 싸움을 벌이느라 정치권은 ‘국민의 상식’과 ‘기초연금’을 놓치고 있다. 상식에 어긋난 논란은 제도 불신을 부추기고, 공적연금의 한 짝이 소홀한 설계는 집을 부실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