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어설픈 연금정치로 국민 현혹 기초연금 늘리는 게 해법"

2015. 5. 11. 09:5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e사람] 연금전문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난 2004년 11월 어느 이른 아침. 그와 스웨덴 스톡홀름의 시내 중심가 호숫가에 앉았다. 일주일여 동안 스웨덴 사회와 복지 시스템을 봤던 터였다. 그에게 대뜸 물었다.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된 복지를 누릴수 있을까요"라고. 그는 특유의 헛웃음을 지으며 "시간이 필요하겠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린 별다른 말없이 호숫가를 걸었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진보진영에서도 몇 안 되는 복지와 연금분야 전문가다. 국회 보좌관 시절엔 사회복지 분야에서 정부를 상대로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진 '복지논쟁'에서도 '보편적 복지국가'의 정책 틀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국가 재정의 혁신과 강한 복지를 통한 경제 선순환 등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오랜만이었다. 갑작스런 국민연금 논쟁을 둘러싼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2007년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 기초노령연금 설계 과정에 직접 참여해온 당사자이기도 하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전화벨이 울렸다. 대부분 언론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의자에 앉으면서 "오늘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처리될 것 같지?"라고 물었다(하지만 이날 연금개혁안 처리는 무산됐다).

- (여야의) 이번 합의를 예상하셨나.
"(고개를 절레 흔들며) 전혀 예상못했다."

- 원래는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는데, 지금 논쟁은 국민연금이 돼 버렸다.
"그렇게 됐다. 공무원 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고, 결국 공무원 스스로 연금을 지키면서, 야당과 함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올려주는 것으로 갔는데...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올지는 생각 못했다."

- 어떻게 갑자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10% 인상이 나왔을까.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론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 과정에서의 압박카드용 정도였다. 공무원 노조 등에선 새누리당과 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였다.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받을 연금액을 양보하는 대신에 국민연금 인상으로 돌리면서 나름의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었다." 

- 새누리당은 뒤늦게 청와대와 정부에서 반발하니까 발을 빼버린 셈이 됐다.
"(웃으면서) 새누리당 지도부는 시간에 쫓긴 것 같았다. 공무원연금개혁이라는 성과물을 청와대에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우스운 꼴이 돼 버렸다. 아니면, 그동안 (국회의) 나쁜 관례처럼 서로 합의해놓고 여론을 살펴가며 시간끌기용으로 쓰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에 쫓긴 새누리, 국민연금 압박용 카드 덮석 받아"

그는 "공무원 연금이라는 특수직 연금과 국민연금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2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노후보장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 그는 대신 공무원노조 등이 이번 합의 과정에서 '공적연금 강화'라는 의제를 공론화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평가는 거기까지였다. 특히 이번 합의안 핵심인 '국민연금 급여율 50%'에 대해선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의 말이다.

"국민연금 문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죠. 그 규모나 국민들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말이죠. 지금처럼 현 세대가 돈을 쌓아두고, 일정 나이에 오른 사람에게 주는 방식(적립식)에선 기금 재정문제는 불거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저출산 고령화시대인데... 그래서 5년마다 재정상황을 점검하고, 보험료를 올릴지, 얼마나 받게 할지 등을 논의하는 험난한 과정도 있었죠."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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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합의 대로라면, 연금가입자 입장에선 노후보장이 강화되는 것은 사실 아닌가.
"물론이다. 그렇게 보면 받는 돈이 많아지니까 노후복지가 좋아지는 것은 맞다. 하지만 돈을 더 주려면 그만큼 돈이 있어야 한다." 

- 정부에서는 보험료가 두 배 이상 오를 것이라고 하고, 야당에선 '국민상대로 공포마케팅 한다'고 비판한다.
"(웃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부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 차가 너무 큰 것 아닌가. 물론 양쪽 다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을 것이다. 지난 2013년에 연금 재정추계작업을 했을 때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2060년에 기금이 소진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동안 학계, 정부 등 전문가들이 많은 연구를 해왔지만, 결론적으론 비슷하다."

"2060년 연금고갈 전망은 경고 메시지"

- 야당에선 현재보다 보험료율 1%포인트만 올려도 된다고 하는데.
"현재 2060년 연금이 소진되는 시점을 두고 계산한 것이다. 지금 합의 대로 10%포인트 급여율을 올리면, 연금 소진이 2056년으로 앞당겨진다. 이것을 다시 2060년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1%포인트만 올리면 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2060년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가."

오 위원장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는 '국민연금 재정 경착륙'이라는 용어도 끄집어냈다. 이는 그가 만든 말이다.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60년이라는 숫자는 한 마디로 경고메시지예요. 그때 돈이 없어지니 지금부터 대책을 준비하자는 것이죠. 문제는 2060년 이후 아닌가, 지금 우리 세대가 넣어둔 돈을 다 써버렸으니, 이때부터는 후세대가 연금 전액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 같은 재정 경착륙을 막아야죠. 그렇지 않으면 후세대는 갑작스런 보험료율 상승을 맞고, 정부도 세금을 집어넣어야 할 겁니다. 어떻게든 결국 후세대들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거죠. 과연 우리 후세대들이 동의할까, 심각하게 봐야죠."

오 위원장은 현재의 논쟁이 너무 국민연금으로 쏠려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특히 야당과 일부 시민사회, 학자 등에 대해선 "너무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가"라며 "균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이번 합의는 현재의 국민연금으론 노후보장이 안 된다는 인식 때문 아닌가.
"그럴 수 있다. 2007년 이전까지는 공적연금이 국민연금 하나였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기초노령연금이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에게만 있는 퇴직금도 점차 연금으로 전환되고 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법정 연금복지는 세 가지다. 국민연금과 기초, 퇴직연금까지, 이 셋을 합하면 노후연금 법정대체율이 70%이다. 우리나라 연금제도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도 곤란하다"

- 그럼에도 실제로 노년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그 부분도 인정한다. 이를 풀기위해선 노동시장과 연결해야 한다. 노인 일자리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도 일할 능력있는 노인들이 많지 않은가. 이들 일자리가 늘면 연금 받는 위치에서 돈을 내는 위치로 바뀔 수도 있다. 고령화 문제는 현실이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다."

"공적연금 강화 위해 기초노령연금 보장 늘리는 게 해법"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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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0년의 연금 재정 연착륙을 위해선 어쨌든 현 세대도 돈을 더 내야할텐데, 이 역시 만만치 않을 것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2060년까지 40년 남았다. 지금 우리부터 조금씩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안으로 가야한다. 그동안 재정추계작업을 해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도 힘들었다. 국민을 상대로 설득해야 하는데, 지금 연금가입부터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도 많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부분이 해소되지 않고, 받을 돈만 올리면 결국 혜택은 누구에게 갈 것인가."

- 이번 급여율 인상 혜택도 연금을 오랫동안 가입해온 사람들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결국 이번 혜택도 주로 중간계층 이상에게 돌아가게 된다. 비정규 노동자나 비경제활동인구 등 연금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임금 자체가 낮거나 연금 납부기간(고용기간)도 짧아서 실제 연금 수령액도 작다. 특히 이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논의 방향은 다른 쪽으로 가야 한다."

그에게 해답을 물었다.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옳은가 말이다. 그는 여전히 국민연금의 급여율을 올리는 것으로 공적연금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선 유보적이다. 오 위원장은 "그동안 이야기를 해왔지만, 국민연금보다는 기초연금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기초연금은 차별없이 일정 나이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의 해법이 이날 인터뷰의 마지막이었다.

"기초연금은 매년 필요한 돈을 해당 세대가 만들어서 그대로 쓰는 방식이에요. 더 필요하면 더 내고... 그래서 특정 시기에 특정 세대에게 갑작스런 재정 부담이 증가하지 않죠. 또 하나는 사각지대가 없어져요.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만 혜택을 주죠. 하지만 기초연금은 모든 노인에게 해당해요. 소득이 얼마냐, 돈을 얼마냈냐를 따지지 않죠. 소득 재분배 효과도 큽니다."

그와의 인터뷰 후, 국회는 공무원연금개혁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오 위원장은 "이제 국민연금을 포함해서 제대로 된 토론과 고민을 해보자"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 등에서 어설픈 연금정치로 국민을 현혹시켜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 스스로 말했듯이 연금 문제는 복잡하다. 또 세대간, 계층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힌다. 돈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서구 복지국가들도 연금을 둘러싸고 수십 년을 토론하고 조정하는 데 보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광장서 시내쪽을 바라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