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7. 14:56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기초연금 수정안에 따른 ‘차등 지급’의 진실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애초 차등 지급이었는데 유권자에게 ‘모두 20만원 지급’이라고 홍보했다면 이는 ‘공약 사기’에 해당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기초연금 공약 논란을 보면 다단계 사기 사건이 떠오른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후보의 복지 공약 중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항목이다. 대선 한 달을 앞두고 기초연금 공약이 급히 발표되었을 때 과연 이행할 수 있을까 미덥지 않았는데 끝내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기초연금 공약 수정은 3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첫 번째는 ‘차등 지급’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모든 노인이 동일하게 20만원을 받는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차등 지급으로 돌변했다. 인수위원회 자리에서 박근혜 당선자는 기초연금 공약의 실제 내용이 ‘국민연금과 연계해 기초연금액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라 상세히 설명했다. 최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도 “‘무조건 모든 분에게 20만원씩 드린다’ 이런 얘기가 아니었어요”라고 밝혔고, 공약 생산자로 알려진 안종범 위원(현 새누리당 의원) 역시 “기초연금은 공약을 만들 때부터 국민연금과 통합·연계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정부의 기초연금 최종안은) 공약을 어긴 게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한다.
박근혜 캠프는 차등 지급 내용을 제대로 알렸나
실제 공약집을 보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운영’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것이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 지급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오래된 소신이고,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살짝’ 언급했는데 국민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단다. 토론 영상을 다시 보면, 박근혜 후보는 기초연금 20만원 지급을 약속하면서 “그것(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 체제에 포함시켜서 그렇게 되면 비용도 줄일 수 있고…”라고 말한다. 일반 시청자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지만 차등 지급을 알렸다는 게 새누리당 지도부의 해명이다. 공약집 재정 소요 자료를 보더라도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데 필요한 재정의 60%만 공약 이행 비용으로 책정되어 있다. 이 자료 역시 선거 며칠 전에야 새누리당 홈페이지에 올라 사실상 언론과 시민들이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박근혜 후보와 캠프 사람들 역시 자신의 공약을 국민들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분명히 알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현수막을 내걸었고 언론에도 알리지 않았던가. 물건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 ‘사기’ 행위이다.
두 번째는 기초연금 지급 대상이 전체 노인에서 70%로 축소된 것이다. 지난 9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기초연금을)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세수 부족으로 재정 여건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이것이 결국 공약의 포기는 아니며 비록 지금은 어려운 재정여건 때문에 약속한 내용과 일정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부분들도 임기 내에 반드시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공약을 완수하겠다고 한 내용은 동일하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게 아니다. 이번에 배제된 상위 30%도 기초연금 일부 금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말 역시 모호하게 표현해 대다수 국민들은 차등 지급에 대해 사과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현실이다.
세 번째는 기초연금 인상 기준을 현행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일명 A값)’에서 ‘물가’로 바꾼 것이다. 보통 물가보다 가입자 평균소득 증가율이 높기에,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은 처음에는 A값의 10%로 시작하지만 약 20년 후에는 A값의 5%로 떨어진다. 공약집에 분명 ‘A값의 10%’가 명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이 물가 연동 방식은 기초연금 논란 과정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는데 입법예고안에 슬그머니 들어왔다. 재정 지출 규모를 줄이려는 시도이겠지만 이렇게 과감한 꼼수를 동원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지금까지 지급 대상 축소, 물가 연동 문제는 상당히 공론화되었다. 그런데 첫 단추 격인 ‘차등 지급’의 진실은 아직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애초 차등 지급이었는데 유권자에게 이를 ‘모두에게 20만원 지급’으로 홍보했다면 이는 공약 수정을 넘어서 ‘공약 사기’에 해당하는 중대한 일이다.
국민들이 경제가 어려워져 세수가 부족하다면 공약 후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물건 내용을 다르게 알려 유권자를 속였다면 이는 국민주권 농단이 된다. 대통령 당선의 정당성까지 의문을 품어야 하는 우리 국민은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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