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18. 23:33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나는 기초연금이다. 거의 1년 전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서 청혼 꽃다발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11월5일,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합의문을 발표하기 바로 전날이다. 대한노인회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려야 한다며 채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나를 이끌고 갔다. 사실 우린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약혼을 한 상태였다. 곧바로 결혼까지 하려 했으나 부모님의 허락을 얻지 못했다. 5년을 더 지켜보겠다는 말씀을 들어야 했다. 그럭저럭 잘 지내온 편이다. 그런데 지난해 총선을 준비하면서 그가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진두지휘한 새누리당 총선공약에서도 나는 없었다. 우리 집안 어른들의 실망도 무척 컸다.
하지만 감수하기로 했다. 그는 지킬 수 있는 건만 말하겠다고 늘 강조해왔다. 당시 총선에서 야권 후보가 펼치는 보편복지 공세에 대해 나라재정을 거덜 내는 복지포퓰리즘이라며 맞서고 있던 때였다. 나는 단일 복지공약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든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주려면 지금 매년 4조원에서 무려 8조원을 더해야 한다. 그에게 나는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실연을 달래는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도 나를 부를 일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렸다. 대한노인회로 급히 오라고 해 갔는데, 청혼 장미를 바칠 줄이야.
그런데 이상했다.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예전만큼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진정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의문도 들었다. 선거 막판에 정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 여겼지만,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 친구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 역시 나처럼 대한노인회 어른들 앞에서 청혼을 받았는데, 곧 버림받았다. 상대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살림을 차려보지도 못하고 신혼여행 계획을 짜는 인수위원회에서 파혼 선언을 들었다. 그는 당선됐다. 하지만 나도 친구처럼 파혼 통보를 받았다. 그는 여러 지인들에게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결혼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난 이 말이 거짓말인 걸 안다. 이미 그는 당선 직후 인수위원회 자리에서 애초 그냥 사귀자는 것이었지 결혼 약속은 아니었다고 공식 발표하지 않았던가? 장부에 있는 돈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는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 집안 어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그쪽 집안사람들도 이제는 진실을 털어놓고 있다. 그 집 최고 어른인 황우여 대표는 애초 결혼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나와 우리 집안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집 회계를 총괄했던 안종범 의원도 ‘연애하자는 것’이었지 결혼은 결코 아니었다고 확인해주었다. 꽃다발 편지에 적힌 “함께 잘살아 보자”는 문구가 그런 의미였단다. 아, 이 치욕스러움이란…. 나의 고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모진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나와 데이트할 때 썼던 비용을 그에게 청구하는 모양이다. 우리 집도 풍비박산 나고 있다. 지금 우리 집안 소득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과 연동해 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에 못 미치는 물가와 연동하는 바람에 살림이 반토막나게 됐다. 이별이라도 멋있게 하려 했건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 그래서 용기를 내 펜을 들었다. 주위에서 한두 번 속아 산 것도 아닌데 참으라 했지만 난 그냥 머물 수 없다. 당선 이후 사정이 어려워져 파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나와 집안 어른들을 속인 것이다. 그를 결혼 사기로 고발한다.
나는 친구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미리 꼼꼼히 챙기자 했다. 결혼 제안을 왜 선거 직전에 급하게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혹시 문재인·안철수 연애가 샘나 그랬느냐고 물었다. 신혼살림을 마련할 돈은 준비했느냐고도 따졌다. 대답이 없었다. 신뢰와 원칙을 좌우명으로 하는 자신을 믿지 못하느냐며 화를 낼 뿐이었다.
참았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데 선거를 며칠 앞두고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우리 결혼을 위해 충분히 돈을 준비했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그의 장부에 적힌 돈은 15조원에 불과했다. 우리가 약속대로 살림을 차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수장인 그가 책임져야 될 돈이 총 25조원인데 무려 10조원이 작게 책정돼 있었다. 따질 겨를이 없었다. 코앞에 닥친 선거를 치르려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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