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초연금, 축소가 아니라 사기다

2013. 10. 10. 21:2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공약을 수정한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경기 침체로 세수가 줄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재정 여건이 허락하면 임기중에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국민들도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게 공약이었는데 당선 이후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 축소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애초의 공약 내용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게 아니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만약 처음부터 공약이 차등 지급, 곧 현재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가입과 연동한 기초연금 삭감’이었다면 기초연금 논란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세수 부족에 따른 공약 축소가 아니라 사전에 기획된 ‘사기’ 사건이 된다.

 

놀랍게도 이러한 사실이 새누리당 지도부에 의해 거듭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황우여 대표는 ‘공약 내용이 무조건 모든 분들에게 20만원씩 드린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박근혜 캠프 정책메시지단장으로서 기초연금 공약 작성에 참여한 안종범 의원도 <한겨레> 인터뷰와 방송토론 등에서 “국민연금과 통합·연계해서 기초연금 지급 금액을 정하기로 한 건 공약을 만들 때부터 전제된 것”이라고 확인했다.

 

공약집 재정 소요 자료를 보면 이들의 주장은 더욱 근거가 있다. 박근혜 후보는 공약집에서 임기 첫해에 기초연금법을 제정하고 즉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렇다면 2014~2017년 이 약속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얼마일까.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자료를 분석해 보면 중앙정부가 조달해야 할 돈이 25조원이다. 그런데 공약집을 보면, 공약 이행 비용 총 131조4000억원 중에서 기초연금에 배정된 금액은 14조7000억원뿐이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데 필요한 재정 25조원의 59%에 불과하다. 선거 며칠 전에야 홈페이지에 올린 재정 소요 공약자료를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언론도 이를 주목하지 못했지만, 공약자료는 분명 ‘20만원 동일 지급이 아니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나중에 쏟아질 비판을 어떻게 감당하려 했을까. 박근혜 대통령과 캠프 사람들은 대비책도 마련했다. 공약집에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운영”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문구를 국민연금과 연계해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이해한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새누리당이 거리 펼침막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드린다고 홍보하고, 언론이 또 그렇게 보도하고, 박근혜 후보 역시 텔레비전 토론에서 그랬기에 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당연했다.

 

오직 박근혜 후보와 캠프 사람들만 달랐다. 이들은 기초연금 차등 지급을 ‘통합 운영’이라는 암호로 표현하고, 이에 맞추어 필요재정을 배정하면서도 그 내용은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기초연금 공약의 실제 내용을 유권자에게 허위로 알린 것이다.

 

공약의 실체가 국민에게 알려진 건 선거가 끝난 이후이다. 지난 1월28일 박근혜 당선자는 인수위원회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기초연금 공약의 내용이 ‘국민연금의 균등액(일명 A값)과 기초연금을 합해 20만원을 만들어 주는 것’, 곧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 지급하는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이후 국민행복연금위원회라는 절차를 거쳐 ‘암호’대로 기초연금 정부 방안을 확정하고, 지금 입법예고안까지 진행하고 있다.

 

애초에 차등 지급이었다니. 그렇다면 이는 기획된 사기 아닌가? 국민의 주권을 대통령에게 위임하는 중대한 과정에서 행해진, 경기 침체나 재정 부족이 결코 이유가 될 수 없는 대국민 공약 사기이다. 대통령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국회든 검찰이든 진실 규명에 나서야 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