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초연금 70% 지급, 어떻게 봐야 하나

2013. 10. 5. 20:4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내년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기준 하위 70%에게 매월 10만~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연금 차등은 국민연금 수령액과 연계된다. 이에 대해 “재정 여건을 감안할 때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공약을 실천해야 한다”는 반론이 엇갈리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재정 여건 감안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금융보험학

 

기초연금제도는 단기적으로도 8조원 내외 예산이 소요되는 공적 소득보장 체계다. 따라서 평가가 필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제도의 취지라고 할 수 있는 노인빈곤율 해소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 둘째, 국민연금 등 관련제도와의 형평성에 문제는 없는가. 셋째, 단기적인 재원조달은 물론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이 있는가. 넷째, 행정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먼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가장 심각한 45%에 이르는 노인빈곤율 측면에서 보면 이 제도가 실시되더라도 충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가구 최저생계비는 56만원 정도다. 노인 중 30% 정도가 소득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해도 통계적인 노인빈곤율의 획기적인 하락은 기대할 수 없다. 다만, 우리나라 어르신 대부분이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월 20만원의 현금은 실제 생활엔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예산이 제약돼 있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상자를 70%로 결정한 것은 적정하다.

 이번 기초연금안이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역차별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국민연금에는 기초연금 성격이 급여에 포함돼 있다. 예를 들면 50만원의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연금액 중 본인이 불입한 연금보험료의 원리합계액에 해당하는 것은 절반도 되지 않고, 25만원 이상의 세대 간, 세대 내 소득재분배 개념의 기초연금 상당액을 이미 받고 있다.

 기초연금은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어 공적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아도 소액인 노인에게 지급되므로 가난한 어르신을 역차별해 왔던 우리 노후 소득보장 체계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안은 이 점을 상당히 고려하여 설계돼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부안은 재원조달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박근혜정부 임기 중에도 매년 평균 8조원 내외의 예산이 소요되고, 2040년께에는 매년 약 100조원이 소요된다. 이 제도는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단기적으로는 2014년 예산안 편성에서 보듯이 정부가 다른 정부예산과의 우선순위 조정을 통해 복지예산을 적극 편성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어렵지만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초고령사회에 따른 노인부양 부담 증가로 당시의 청장년 세대의 세금부담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재원을 함께 분담해야 하는 지방정부 재정의 취약성이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초연금 지급대상에서 상위 30%를 가려내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현재의 기초노령연금과 지급대상자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소득이 거의 없는 일부 어르신에 대해 연금액을 차등하는 것이 난제가 될 수 있었는데 그나마 객관적으로 명확한 국민연금액을 기준으로 식별한다는 점에서 행정상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어려운 재정여건하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르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던 노후 소득보장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라 평가받을 수 있다.


 

고령화 대응 위해 모든 노인에게 지급해야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기초연금은 당초 약속대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돼야 한다. 첫째,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우리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모두에게 20만원이 지급되는 줄 알고 투표했다. 일부에선 지키기 어려운 공약은 손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라 권력을 위임하는 대통령선거 공약이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이후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인수위원회부터 공약 수정을 공공연하게 발표하는 일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둘째, 국민연금의 뿌리를 흔들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만큼이나 미래 재정의 지속가능성 과제를 안고 있는 게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에 성실히 가입했다고 기초연금에 불이익을 준다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무슨 명분으로 보험료 인상 등 국민연금 개혁을 가입자들에게 요청할 것인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단기적인 시야로 연금정책을 펴는 건 곤란하다.

 셋째, 기초연금을 둘러싸고 발생할 형평성 논란과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긴 사람일수록 소득이 올라갈 개연성은 크다. 하지만 반대의 사례도 존재한다. 자기 이름으로 된 자산이 없다는 이유로 서울 강남구의 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에 살아도 20만원을 받고, 나보다 국민연금을 많이 받는데 가입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을 더 받는다면 용납이 되겠는가. 소득이 많지 않지만 성실히 보험료를 납부해온 사람일수록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기초연금 금액이 20만원으로 오르기에 지급대상 70% 안에 포함되기 위해 자산을 임의로 변동하는 일도 잦아질 것이다. 사회구성원 내부에서 형평성 논란이 존재하는 한 복지정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넷째, 보편적 기초연금이 복지재정을 마련하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 19.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4.6%(2010년)에 비해 4.7%포인트나 낮다. 부족액이 60조원을 넘는다. 앞으로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세입 확충이 불가피한데, 이는 상위계층의 조세 협력을 필요로 한다.

 부자 노인에게 왜 굳이 20만원을 줘야 하느냐는 물음의 취지를 모르지는 않지만 이러한 방식으론 지금의 낮은 세입구조를 벗어나기 힘들다. 상위계층에게도 핵심 복지는 보편적으로 제공하고 소득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게 재정 조달에 훨씬 효과적이다. 정부는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면 미래 지출 증가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우려한다. 나 역시 기초연금의 소요재정이 막대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문제는 정부가 복지 수요는 외면한 채 지출 증가 부분만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세입과 세출의 균형을 따지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조세부담률로는 고령화시대를 맞을 수 없기에, 증세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국민들의 조세저항도 중요한 현실이므로 세금이 헛된 곳에 쓰인다는 국민들의 걱정을 우회하기 위해서는 ‘복지에만 쓰는 목적 세금’ 도입도 검토하자. 이제 대한민국에서 복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됐다. 기초연금은 애초대로 약속을 지키고 사회복지세 신설 등의 논의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