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칼럼] 무상시리즈는 거지 근성 길러준다?

2013. 10. 15. 20:3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회복지, 당신에겐 무엇입니까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사회복지사가 생각하는 사회복지', 내가 사회복지사 보수 교육(사회복지사들이 참여하는 연례 의무교육)에서 하는 강의의 제목이다.

원래는 사회복지 정책의 변화를 강의해야 함에도 이렇게 제목을 달았다. 무상 급식 등 지난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사회복지가 쟁점으로 등장하면서,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또는 '사회복지사는 어떤 사회복지를 선호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어서다.

왜 사회복지사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까?

이러한 궁금증이 생긴 이유는 사회복지에 대한 쟁점들이 대두되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을 때에도 정착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기초노령연금이나 무상 보육 등과 관련하여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엄밀히 따지면 '내만복'도 사회복지사들의 목소리를 담은 단체는 아닌 것 같다)나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등 신생 복지 시민단체들이 발언하고 있지만, 정작 전통적인 사회복지단체인 사회복지협의회나 사회복지사협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회복지사들이 왜 자신들이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방식에, 그리고 넓게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정책의 변화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지 궁금했다.

내가 직접 접촉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자주 만나는 이들은 사회복지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야기가 잘 통한다. 그래서 마치 그런 생각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생각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일선 사회복지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 무상 급식 실시 이후 교실 풍경. ⓒ프레시안 자료 사진


사회복지사, 보편주의 복지에 친화적일까?

놀라운 점(?)은 사회복지사들이 보편주의 복지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래된 쟁점이기는 하지만 무상 급식에 찬성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기초노령연금에 대해서도 보편적 연금보다 70% 이하의 노인들에게 소득과 비례하여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나온다. 정부와 같은 공공 영역보다는 민간 영역의 서비스 제공을 더 바람직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재화를 배분할 때도 시장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개별 기관 내에서 주어진 업무 처리에 얽매어 있는 사회복지사의 근무 환경을 고려하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실천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회복지를 강의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사회복지사에게만 나타나는 결과는 아닐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복지 정치가 도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는 복지를 시대적 현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지난 대선을 비롯하여 한동안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로 사회복지가 등장한 것처럼 보였던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경제 민주화가 일선에서 '다시 잘살아보세'에 바로 밀려났다. 현재도 무상 보육은 재정난에 힘든 지방 정부들만이 불만을 제기하는 수준이고, 기초연금 문제도 당사자인 노인조차 '나라가 돈이 없다는데'라고 하면서 접는 상태다. 그것도 지금은 다른 의제에 밀려 논의 대상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사회복지사들이 사회복지 논의 과정에 제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사회복지사들도 우리 사회가 사회복지에 대해 가진 지배적인 생각의 한 단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상 급식을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무상 급식이 사회복지와 관련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정부가 이 문제에 개입해야 하는 당위성은 다른 데 있다. 현대 정부가 수행하는 다양한 경제적 역할 중에서 (중략) 공공재를 생산·공급하는 일은 중요하다. (중략) 공공재와 더불어 정부 개입이 필요한 또 다른 상품이 바로 가치재(merit goods)다. (중략) 무료 급식을 사회복지 정책으로 보면, 부유층에게 무료 급식 혜택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료 급식이 가치재이기에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으로 보면 결론은 180도 달라진다. 공공재나 가치재 성격을 갖는 상품은 무상 배분이 원칙이다.'

윗글은 무상 급식 논쟁 당시 무상 급식에 찬성했던 어느 경제학과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분이다.

'재정 능력보다 무상 시리즈로 인하여 발생할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에 미칠 도덕적 해이가 중요하다. (중략) 일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복지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은 늘어난다. (중략) 그래서 무상 시리즈는 거지 근성을 길러주어 거지 문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중략) 복지가 중요하지만 복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윗글은 무상 급식을 반대했던 어느 목사님의 글이다. 무상 급식을 찬성하면 보편적 복지에 찬성하고 반대하면 선별적 복지를 지지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두 분의 글에 담겨있는 사회복지의 모습은 비슷하다.

무상 급식에 대한 찬반을 떠나 두 분의 글 안에 있는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회복지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선별적 복지)이 바람직하며, 보편적 복지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복지는 경제에 부담되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을 대변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사회복지는 생각한 만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우리가 생각해온 사회복지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복지를 우리가 이용하고 있으며 그 안에 규정된 방식대로 사회복지사들이 일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복지는 좋은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은 사회복지 대상자가 아니거나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복지에 대한 '생각'과 '현실'은 일치할까?

그런데 사회복지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사실일까? 또는 실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사회복지는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에게만 혜택을 주어야 하고, 사회복지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고, 사회복지는 경제 성장에 부담되는 것일까?

복지국가에 대한 많은 연구물을 보면 이런 생각 또는 주장이 반드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여러 사람에게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일을 하지 않거나 낭비할 것'이라고 대답하지만, 더 많은 사람은 '그래도 일을 할 것이며, 오히려 뭔가 더 의미가 있는 일을 할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런데도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왜 부정적 인식이 더 지배적일까? 왜 사람들은 현실과는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조지 레이코프는 이러한 차이를 프레임으로 설명하고 있다.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 또는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특정한 틀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일정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회복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정한 프레임 안에서 이해하고 사고하고 있다. 문제는 이 프레임이 논리적이거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그러한 프레임을 통하여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세금 폭탄'과 같은 은유적 언어를 통해 어떤 상황에 대한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그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므로 무의식적으로 '세금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논리적이지도, 전혀 사실과 관계없음에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이코프는 '자유를 잃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자유의 개념을 잃는 것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라고 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복지에 대한 우리 생각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을 뺏겼기 때문에 현실의 사회복지도 선별적 복지의 수준에 머무른 것은 아닐까? 동질적이고 사회적 연대감이 강한 국가일수록 보편적 복지가 발달해도 사회복지로 인한 부작용이 없는 반면, 이질적이고 사회적 연대감이 약한 나라는 선별적 복지를 해도 사회복지가 남용되고 도덕적 해이와 같은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회복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이야기하자

미래의 사회복지의 모습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사회복지는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이 정치에 반영되어 현실로 만들어진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사회복지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이 만든 것이라면, 지금부터 할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은 미래의 사회복지의 모습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내서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게 하고, 그러한 생각을 정치에 투영해야 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과 같이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지닌 단체의 활동에 기대하고,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이야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누군가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라디오 팟캐스트 : 제1회 경로당 어르신들이 화투만 쥐고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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