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칼럼] 응급실 찾는 경증 환자들, 도대체 왜?

2013. 10. 7. 22:4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응급실 의사가 본 응급실

 
김대희 인천광역시의료원 응급의학과장 

 

 

 

나는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나의 직업은 아직까지도 상당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듯하다. 직업이 그러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 '응급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다. 매번 느끼지만 사람들마다 각자 생각하는 응급실의 모습이 참 다르다.

응급실, 긴박한 현장인가, 도떼기시장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응급실을 이야기하면,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와 그를 치료하기 위해서 분주한 의료진을 떠올린다. 응급실을 으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현장으로 상상한다. 아마도 각종 미디어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극적인 요소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속성상 응급실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런 위급한 상황만을 다루고, 다큐멘터리나 여타 교양 프로그램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비해서 개인적으로 응급실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배가 아프거나, 열이 나거나, 어딘가를 가볍게 다쳐서 응급실에 갔었는데, 환자들이 너무 많아서 도떼기시장 같았다고, 그 속에서 몇 시간을 참고 기다려도 의사 얼굴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의 경험 속에서는 미디어에 나왔던 응급실의 긴박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상반된 응급실 모습 중 무엇이 실체에 가까울까?

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모두 '응급'할까?

사실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 중에서 흔히 상상하는 그런 초응급 환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병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 중에서 119 구급차로 오는 환자의 비율은 통상 30% 내외이다. 남은 70%의 환자들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자가 차량을 이용하여 직접 응급실을 찾는다. 스스로가 판단하기에도 구급차를 부를 상황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응급실은 분주하다. 큰 사고가 터지면 더욱 그렇다. 사진은 지난 4월 충북 청원군 렌즈 공장에서 유황가스가 누출돼 70여 명이 병원 응급실에 이송된 모습. 그러나 사람으로 붐비는 응급실에 항상 응급 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합뉴스


구급차를 이용하여 내원한 환자들 경우에도 모두 위중해 응급실에 내원한 것은 아니다. 구급차로 내원한 환자 중 입원이 필요한 경우는 절반을 넘지 못한다. 의학적 기준만으로 판단한다면,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들 중 대다수는 응급하지 않은 이유로 응급실을 찾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응급실마다 넘쳐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떠한 일로 응급실을 찾은 것일까? 예상하기가 어렵다면 본인의 일이라고 가정하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길을 걷다 발목을 접질렸는데 그 후로도 계속 아팠을 때, 갑작스레 코피가 나서 지혈을 시도하였지만 잘 멈추지 않았을 때, 평상시와 달리 생리통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할 때, 몇 시간이 지나도록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을 때 등 흔히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사람들은 보통 어디를 가장 먼저 떠올릴까? 응급실이다. 정확히는 응급실 이외의 대안을 떠올리기가 힘든 게 우리 현실이다.

설마 그런 일 때문에도 응급실을 찾을까 하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응급실을 찾는다. 왜냐하면 통증이나 두려움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그 상황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나마 익숙한 곳이 응급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응급실이 앞서 언급하였듯이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만 찾는 곳은 또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합리적(?) 판단의 결과로서 응급실을 찾기도 한다. 만일 누군가가 단순한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은데 직장 때문에 다음날 일과 시간 중에는 도저히 시간을 뺄 수가 없을 것 같다면, 한밤중에 피임약이 필요한데 그 시간에 열려있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주변에 없다면, 월요일부터 해외로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주말이라서 상비약을 구할 곳이 없다면, 그러한 경우에는 어디부터 떠올릴까?

그 뿐인가? 건강검진에서 암을 진단받았는데 가고 싶은 병원의 대기 환자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허리 수술 전에 MRI를 찍어야 하는데 한 달을 기다려야 된다면, 그 때는 어디부터 떠올릴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응급실을 떠올릴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이러한 경우는 응급실을 찾을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응급실 고유의 목적에 해당하지 않지만 응급실을 이용하는 것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안이기 때문이다.

과부하에 놓인 응급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 본연의 목적과 달리 응급실을 이용하고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응급실에서 그 모든 수요를 충족시켜주면 좋겠지만 이 또한 녹녹하지 않다. 대형 병원 응급실은 하루에도 200~300명의 환자가 몰리지만, 대부분 응급실의 병상은 많아도 40~50개에 불과하고 하루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역시 10명을 넘지 못한다.

그 결과 응급실에 내원한 많은 환자는 응급실 내부도 아닌 복도나 보호자 대기실에서 의료진을 몇 시간씩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응급 진료의 특성상 의료진은 단순히 순서대로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판단에 따라 진료 순서를 바꾸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기다림이 더욱 길어질 수도 있다.

결국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대부분이 "응급실인데도 빨리 치료받지 못하고, 진료의 질 역시 형편없다." 혹은 "진료 받는 순서가 지켜지지 않는다." 등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중 극히 일부의 참을성 없는 환자나 보호자 혹은 술에 취한 환자가 응급실 내 난동을 부리거나 의료진을 폭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응급실의 과부하와 그에 따른 진료 만족도의 저하는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필연적으로 진료의 질적 하락과 진료 공백의 증가를 낳고, 이는 다른 환자에 대한 2차적 피해로 이어진다.

응급실 이용료를 올리면 될까?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의 하나로 자주 제기되는 것이 응급실의 문턱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상당 부분 수용되어 있다. 우선 응급실에서의 진료비는 여타 외래에서 진료를 받을 때에 비해서 꽤나 비싸다. '응급관리료'라고 부르는 추가적 비용도 부과된다. 게다가 '보건복지부령'으로 응급증상 및 이에 준하는 증상을 명확하게 규정하여 놓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증상으로 응급실에 내원할 경우에는 더욱 비싼 응급관리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응급실의 과부하는 해소되지 않고 있고, 그래서 그 문턱을 더욱 높여야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언뜻 들으면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응급실 문턱을 마냥 높일 수 없는 현실이다. 정말 위중한 사람들이 찾는 곳 역시 응급실이다. 더욱이 개인마다 지불 능력이 크게 다른 상황에서 지금처럼 금전적인 부담을 주는 형태로 응급실 문턱을 높인다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앞에서 예시했듯이, 응급하지 않은 이유로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내원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응급실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응급실의 문턱만을 높인다면,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고 내원자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환자의 민낯을 접할 수 있는 응급실

응급실에서의 진료는 일반적인 외래 진료와 여러 가지로 다르다. 그 중 가장 다른 점은 환자의 민낯을 마주할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외래 진료는 환자가 의료 기관을 직접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질환의 종류나 위중한 정도와 상관없이 환자 역할을 수행 가능한 최소한의 의지와 여유를 갖춘 사람들이 진료실을 찾는다.

응급실은 다르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환자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급히 온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응급실은 사회의 있는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 즉 보건의료 체계는 물론이고 복지 체계, 경제 상황, 사회 분위기 등 우리 사회를 둘러싼 모든 요소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응급실의 문제들은 응급실 자체를 개선하려는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수차례의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에도 응급실에 산적한 많은 문제들이 전혀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응급실, 단지 의료기관일까?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빨리 서두르면 도리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의미이다. 즉, 어려운 상황일수록 차근차근 문제의 근본부터 해결해야 된다. 현재 응급실이 처한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응급 의료 체계에 대한 사회의 인식부터 바꿔야 된다. 지금의 응급 의료 체계는 흔히 응급실로 대표되는 일종의 의료기관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응급 의료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응급 의료 체계를 단순히 의료기관으로만 인식하는 건 곤란하다.

응급실은 국민의 건강 및 안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종의 사회 안전망 혹은 복지 체계의 일환이다. 당연히 응급 의료 체계는 예측 가능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고유한 특성 때문에 이윤을 발생시키기가 무척 어려운 영역이다. 시장 논리에 의지해서는 응급실이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응급실, 119 구급대처럼 공공적 투자가 절실하다

응급실의 발전을 위해서는 상업적 논리를 넘어선 공공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119 서비스를 보자. 1980년대에 첫 선을 보인 119 구급대가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로 자리 잡았다. 과감한 공공적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처럼 지금까지는 응급 의료 체계에 대한 공공적 투자가 주로 환자 발생부터 의료기관으로의 이송 사이 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환자가 의료기관에 도착한 이후의 응급 처치에 대해서도 공공적 투자 확대가 절실하다.

물론 의료기관의 90%가 민간 소유인 현실에서 이 일이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숙제이다. 보다 과감한 투자와 제도적 보완을 통해서 민간과 공공 모두 '공공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공공 서비스라는 국민 인식 변화도 필요

또한 응급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도 요청된다. 응급실은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는 공공서비스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을 때만이 응급실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행태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공공재라는 인식이 정착된 119 구급 서비스의 경우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만일 누군가가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119를 호출하였다면, 그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마땅히 지탄받을 것이다. 공공재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응급실로 대표되는 응급 의료 체계를 공공 서비스라고 인식하게 되었을 때 가져올 변화도 당연히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응급실 문제, 응급실 안의 문제가 아니다!

보건의료 체계도 올바르게 정비해야 한다. 응급실에 생각하지도 못한 이유의 환자들이 넘쳐나는 것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응급실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학적 수요를 해결할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이고, 의료 전달 체계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 시민들이 의료인을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고사 위기에 놓은 동네 의원들을 되살려 일차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이와 함께 동네 의원에서 상급 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 전달 체계를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응급실을 그리며

수많은 환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응급실을 찾는다. 그런데 정작 응급실 문제는 응급실 안에 있지 않다. 우리 사회 의료 체계, 복지 체계의 문제가 그대로 응급실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의료는 태생부터 시장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될 수 있지만, 의료는 시장 논리와 무관하게 필요한 곳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서비스다. 우리 사회가 시장 논리보다는 공공성 가치를 중시하고, 각자도생보다는 보편 복지를 함께 누리는 발전을 하길 바란다.

오늘 또 나는 응급실로 출근한다. 내가 일하는 응급실이 드라마 속의 긴박한 공간 혹은 도떼기시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돕는 따뜻한 공간으로 더 기억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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