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죽음으로 항변해야 하는 복지 현장, 이대로는 안 된다

2013. 9. 23. 19:0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시골 복지관장의 회고와 각오

 
배인재 전북 진안군 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나는 지금 '무진장'이라고 불리는 전북 진안에서 많은 장애인과 알콩달콩 어울리며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진안군에서는 전체 인구의 10%인 약 2500명의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 장애인이 농촌·산간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도시 지역의 장애인 복지관과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온전히 하나 되는 진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게 나의, 우리 복지관의 소망이다.



떠밀린 사람들의 종착역, 영구 임대 아파트

내가 사회복지계에서 일한 지 이제 16년째다. 시작은 외환위기 상황으로 전국 거리에 노숙인들이 넘쳐나고, 경제적으로 파탄 난 가정마다 심한 몸살을 앓던 1998년이었다.

나의 첫 직장은 영구 임대 아파트 단지 안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사회복지관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허울 좋은 공약으로 추진되어 주택 복지의 일종으로 설계된 영구 임대 아파트는 당시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서 최후까지 떠밀린 사람들의 종착역, 빈곤이 확대 재생산되는 곳이었다.

4년제 지방 국립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군에서 갓 제대한 내가 처음 일한 공간은 재가복지 봉사센터였다. 여기서 선배 사회복지사 1명과 함께 임대 아파트 단지를 포함하여, 관할 시의 절반 지역에서 가정 형편이 열약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당시 내가 맡은 가정은 약 250곳에 달했다. 삶이 고단한 어르신들과 장애인 가정 그리고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도배와 장판을 바꿔드리고, 정서적 지지와 상담, 경제적 결연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첫 직장부터 비리와 횡령을 접하다

 

 

▲ 장애인 가정을 찾아 집 수리와 청소를 하는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나의 복지 현장 인생은 항상 밝지만은 못했다. 내가 입사한 첫 직장은 그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과장급 공무원이 퇴직하고 전관예우 격으로 복지관장을 맡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보조금 횡령 및 운영 전횡이 가히 복마전 수준이었다. 개관 이래 입사한 직원마다 평균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고, 시청의 현직 후배 공무원들은 수년간 선배의 불법과 비리에 나 몰라라 했으며, 지역 사회와 동료 사회복지계 또한 뒤에서 욕은 할지언정 특별히 나서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용감한 시설 직원들의 제보와 진보적인 지역 신문의 끈질긴 취재로 이 문제가 서서히 지역 사회 문제로 드러났다. 지역의 건강한 시민단체의 노력을 통해 결국 전관예우 관장은 물러나고 복지관은 정상화의 길을 밟는 듯했다.

하지만 복지관이 정상화되는 길은 산 넘어 산이었다. 이번에는 지자체장과 어느 종교기관 수장의 결탁으로 복지관의 위탁권이 정치적으로 거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를 포함한 순진한 직원들은 자신의 의사와 아무 상관없이 어느 순간 복지관 운영 법인이 바뀌고 비전문가인 새로운 관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 주민들과, 분란의 와중에도 이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자기 절제력을 최대한 발휘하던 우리 직원들에게는 황당한 일이었다.



복지관 민주화에 나서다!

마침내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전 법인의 기관장이 임명한 인턴 사회복지사가 해고 통보를 받고 첫 직장에서 짐을 정리하여 비참한 심정으로 고향으로 낙향하는 사건이 생겼다. 이에 우리는 이 병아리 사회복지사에게 싸워서 꼭 제자리에 복직하는 것이 정의라고 격려하고, 월급을 나눠가면서 함께 대응했다.

마침내 사회복지사 동료, 지역 시민 사회, 민주 노조 진영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시설 안에 단위 노조가 결성되었고, 1년 후에는 해고되었던 사회복지사도 복직하고 단체협상도 진행했다. 당시가 2001년이었는데, 아마 전국적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단위 사회복지 시설에 사회복지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려고 발버둥 쳤던 사례로 알고 있다. 그나마 그 종교단체 내부에 자성이, 지역 사회 안에 건강한 시민 사회 문화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복지관이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어가면서 지역 사회와 깊은 신뢰를 쌓게 되었고 복지관의 위상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민 사회 단체와 민주노총 산하 단체들과 연대하는 일도 많아졌고,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공장과 복지 실천 현장들을 찾아다니며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곤 했다.

마침내 2005년에는 복지관 직원들이 지역사회 핵심 활동가들로 성장하였고 복지관 초대 핵심 운영위원을 시의원으로 당선시켜 시 운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전국적으로 지역 복지 운동 단체 네트워크와 교류하면서 지역의 고민과 활동을 다른 지방 사회복지사들과 공유해 나가며 시야를 확대해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다들 열정적인 시간이었다. 보통 예전에 복지 현장이 관료적이고 열기가 없었다고 평가하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몸부림도 있었다는 사실을 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30대 나이에 복지관 관장으로 영전하다

억세게 운이 좋았는지 나는 30대 중반에 새로 개관하는 노인복지관 관장으로 영전(?)했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복지관이었으므로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황송한 기회요, 황망한 자리였다. 개인적으로 일생일대의 성장을 위한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종교 법인에서 종교인도 아닌 실무자 출신의 사회복지사가 복지관의 관장으로 임명된 것은 지역 사회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실무 사회복지인들에게는 희망의 기회요, 종교계 복지인들에게는 내부 질서를 교란한 큰 도전과 위협의 요소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전라북도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용 시설이었던 노인복지관 관장 경험은 나에게도 큰 자산이 되었다. 어르신 당사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활기찬 노후 생활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 대화하고 경청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3년간의 노인복지관 관장 생활을 뒤로하고 지난해 새롭게 개관하는 현재의 진안 장애인 복지관 관장으로서 실천의 터전을 옮겼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하기 위한 기본적 실천 인식은 나에게 이곳 무진장 산촌으로 옮겨오도록 했다.



복지관장, 그들은 누구인가?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사람의 의식, 곧 관념이라는 것이 외부의 물질 세계에 의해 규정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시설, 특히 복지관이라는 환경에서 사회복지사들에게 규정되는 의식은 어떠한가? 특히 나와 같은 관장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국에 산재한 종합복지관,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을 다 합쳐 복지관이 약 1000개에 이른다. 복지관 관장들은 몇 가지 경로를 통해서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에 오르게 된다.

첫째, 종교인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민간 사회복지 서비스 절대량을 담당하고 있는 종교계 사회복지와 직무 관련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 경우 법인의 지향에 맞게 폐쇄적인 구인 시스템을 통해서 종교계 인사들이 관장 자리에 오른다.

둘째,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 아래로부터 성장한 관장이다. 이들이 일하는 복지관은 대부분 실무 능력과 전문성을 준비한 인재들을 공정한 방법으로 뽑는 전향적인 인사 시스템을 지닌 법인에 속해 있다. 이러한 법인들은 탄탄한 인력 채용 시스템을 구축해서 실무자부터 됨됨이를 검증하여 국제 활동을 포함해 전국의 산하 시설에 적임자를 배치하곤 한다.

셋째, 사회복지학과를 운영하는 대학들이 부설로 설치한 복지관에 관장으로 오는 담당 교수나 동문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지역 복지 현장에 다양하게 관계를 맺어오는 분들이다.

넷째, 오래전부터 전쟁 구호 사업과 전통적인 사회사업의 역사를 보유한 시설 법인들의 관장이다. 이들은 법인 관련 인사이거나(공채도 있음), 전관예우 차원에서 내려온 지방자치 단체 퇴임 공무원들이다.

다섯째, 특정한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의 관장이다.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서 구성된 비영리 사단법인, 장애인이나 노인 당사자 단체 또는 지자체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지역 관변단체 출신의 관장이 운영하는 복지관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복지관들은 지금도 농산어촌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민간 위탁 방식 복지관의 문제점들

한국 사회에서 등장하는 복지관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위탁 운영된다. 하나는 사회복지법인이 토지를 정부에 기부채납 형식으로 제공하고, 그 땅에 정부 예산으로 복지관을 지어서 복지관 건물과 토지는 법인의 소유로 하되, 정부가 집행해야 할 사무를 민간 위탁하는 형태이다.

또 하나는 정부 소유의 부지에 정부의 재원으로 건축을 진행한 후에 마찬가지로 사무를 민간 위탁하는 형태이다. 물론 민간 위탁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들도 종종 있으나, 경제성이나 운영의 전문성 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것은 3년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평가들의 결과에서 드러나고 있다.

진보적 입장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운용하는 복지관을 공공 인프라로 간주하여 선호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다양한 형태의 사회복지 시설별로 평가가 진행되지만, 지자체 운영 복지관들은 경직된 의사 결정 구조를 갖고,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직영 복지관 나름의 운영 혁신이 요청된다.

이러한 민간 위탁 방식은 복지관 운영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지자체의 경직된 권위주의적 행정 문화를 통해 전달되는 지도 점검과 감사 등이 유연성과 전문성을 주요한 특성으로 하는 민간 사회복지계의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 지자체 담당자들이 바뀔 때마다 점검 기준이 들쭉날쭉하다. 복지 행정이 민관 거버넌스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통제, 견제, 감사의 대상으로 민간 사회복지계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복지 서비스 절대량을 담당하고 있는 민간 사회복지계에 대한 인정과 지원도 너무나 인색하다. 대부분 현장 사회복지인들의 처우는 우리 사회 평균 임금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며, 사업 예산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적은 예산마저도 바우처 지급 방식 등의 시장화를 통해서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사람은 없고 자본의 이해관계만 횡행한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

올해 지자체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몇 분은 폭주하는 업무와 관련한 스트레스들로 자신들의 소중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항변했다. 생명까지 위협하는 안전 무방비 상태와 낮은 처우 속에서 어떻게 질 높은 휴먼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복지관, 내부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

복지관 내부에서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첫째, 사회복지계 내부의 세대별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충분한 민주주의 교육과 신속한 정보통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신세대 사회복지인들이 봤을 때, 행정기관에 질질 끌려다니는 관장의 모습은 분명 비굴하기까지 하고 안쓰러울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수의 관장들이 민주적 리더십으로 훈련받지 못한 상황에서 복지관 내부에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혹은 맹목적 권위로서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둘째, 복지관장이나 상위기관 임원들의 정치적 편향성도 문제다. 전국의 사회복지사들에게 복지국가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안겨줘야 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같은 단체가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나 서면 질의, 정책공약 제안 등에 아예 손을 놓았다. 오히려 협회장이라는 사람은 회원들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특정 후보에게 줄을 대거나 지지 성명을 자행하는 형편에 이르러서는 말이 막힐 수밖에 없다.

셋째,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노동조합이 너무 빈약하다. 시설 혹은 사회복지계를 대표하는 산별노조로 조직되지 않는 한 복지관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복지계를 옹호하고 대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회복지사 선후배들이여 힘을 모으자

대통령 선거는 끝났고, 그나마 미약한 수준의 복지 공약을 선거 막판에 가서야 어렵게 내놓았던 후보가 당선되었다. 많은 부분에서 그 공약마저도 대폭 후퇴하고 있다. 복지국가에 대한 기대와 비전을 통째로 강탈당한 느낌이다.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선후배 사회복지인들이여, 단결하여 사회복지 지평을 넓히고 복지국가 실현의 주체로 우뚝 서자. 단테가 말했듯이 어설픈 중립을 외치는 자들에게 주어질 지옥의 어느 자리가 우리들의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서울에선 사회복지사들이 권리 옹호를 위해 100일 가까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비록 지역에 있어서 함께할 수는 없지만, 보건복지부나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이뤄지는 1인 시위에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복지국가를 이루고 성취하는 데 미약하고 작은 힘이지만, 전체 사회복지계 내부가 각성하고 혁신의 작은 시내를 만드는 일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 복지 현장의 일선에 있는 복지관 관장으로서 그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 힘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단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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