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기본소득과 음소득세, 논쟁하라

2021. 10. 14. 13:3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이재명 경기지사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재명 후보는 수락 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실제로 공약이 시행되면 지구상에서 국민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처음 선보이게 된다.

 

언론에 외국의 기본소득 사례들이 수없이 소개되지 않았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사례들은 거의가 저소득층 대상의 실험이다. 핀란드 기본소득은 실업부조 수급자가 대상이고,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기본소득 대상도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수급자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보장 혁신안이지만 일을 해서 소득이 생겨도 기존 현금급여를 계속 지급한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브라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사례 역시 하위계층 대상 생활지원금이다. 다만 모든 주민에게 동일액을 제공하는 유일한 사례인 미국 알래스카주의 주민배당은 인근 석유자원기금의 수익 배분이어서 다소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결국 외국 사례들은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소득보장체제 한계가 부각되면서 기본소득 담론에 정치적 에너지가 집중된 상표 과열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국민 모두에게 적용된다. 연 50조원의 재정으로 1인당 연 100만원, 매월 약 8만원을 지급하는 소액기본소득이다. 금액은 적지만 세계가 주목할 일임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점은 기본소득의 효용이었다. 이 후보는 기본소득이 불평등을 개선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증세도 이끌 수 있다고 역설해 왔다. 기본소득 운동진영도 토지, 지식, 빅데이터 등 공유자산의 이익을 모두에게 분배한다는 공유부론으로 이론을 뒷받침했다. 시민들도 삶이 불안한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논의 지형은 완전히 다르다. 이제는 기본소득만의 효용 평가가 아니라 상대편 대안과 비교 우위를 따지는 경기이다. 사각지대에 대응하는 ‘포괄성’, 소득보장으로서 ‘급여적정성’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사각지대에서 자신의 강점을 내세울 것이다. 실제로 소득과 재산을 따지고 신청주의를 거치는 전통적 소득보장체제를 고발하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왔다. 이 후보도 수락연설에서 “기본소득제도로 송파 세모녀에게 월 30만원만 있었으면, 가족들의 극단적 선택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경쟁자도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송파 세모녀 비극을 막겠다고 나섰듯이 자신도 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고 말이다. 기본소득이 새 제도이듯이 역시 신상품이라는 의미이다.

 

필자의 예상으로, 국민의힘은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제시할 듯하다. 음소득세는 정부가 정한 기준소득액 이하의 사람에게 소득 부족액의 일정 비율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소득세를 거두듯이 거꾸로 국가가 개인에게 세금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소득보장이지만 세금으로 명명되었다. 만약 연 50조원의 재정으로 음소득세를 시행한다면, 저소득층 상당수에게 1인 가구 기준 매월 1만~50만원을 제공할 수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따지지 않고 실시간 소득파악도 추진되고 있어서 송파 세모녀도 지원받을 것이다.

 

음소득세는 보수의 정책으로 여겨져 왔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아직 시행하는 나라는 없지만 근래 변화가 감지된다. 기존 소득보장의 사각지대 문제가 불거지고 기본소득까지 등장하면서 현실 정책 의제로 다듬어지고 있다. 작년에 국민의힘은 윤희숙 전 의원 주도로 음소득세 방식의 정책안을 준비했고, 유승민 후보의 공정소득,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도 음소득세 원리로 설계되었으며, 윤석열 캠프의 핵심 정책책임자는 올해 음소득세 도입안을 담은 책을 출간한 사람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음소득세의 이론적 족보보다는 소득보장의 효과이다. 애초 시장자유주의 취지대로 현행 현금급여를 대폭 폐지하는 복지구조조정 방식도 있지만 촘촘한 소득파악망을 토대로 저소득층을 폭넓고 두껍게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최근 친복지 시민단체 일부에서도 음소득세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까닭이다. 이번 대선에서 활발한 대안 논의를 보고 싶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정의당도 소득보장의 혁신안으로 음소득세를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두 야당의 어색한 ‘공조’로 보일 수 있으나 민생을 주도하는 게 진보의 본령이다. 기초연금도 노무현 정부에서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강하게 요구해 도입된 제도이지 않은가. 이번엔 ‘기본소득 대 음소득세’, 뜨거운 논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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