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4. 14:14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세계적으로 증세 논의가 활발하다. 시장만능주의가 야기한 양극화와 코로나19 재난에 대응하는 노력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재 국회에서 심의하는 추경안을 보더라도 올해 관리재정수지가 126조원, GDP 6.2%로 공공재정의 역할이 계속 커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증세 제안을 찾기 어렵다. 올해 초과세입을 감안해도 조세부담률은 GDP 20% 수준에 그친다. OECD 회원국 평균에서 약 5%포인트, 금액으로 약 100조원이 부족하다. 당장은 국채에 의존한다 해도 지속 가능한 재원으로 세입 확충은 꼭 준비해야 할 일이다.
왜 증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우리나라 조세 지형의 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의 증세 초점은 최고세율이었다.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율 인상이 강조되었고 실제 꾸준히 올랐다. 이제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은 OECD 평균을 넘어 G7 평균에 이른다. 종합부동산세도 주택분은 노무현 정부 시기 세율을 대체로 회복했다. 앞으로 추가로 올린다 해도 여지가 크지 않다. 최고세율 인상에 익숙한 정치권이 증세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가 한 해 100조원이나 세입이 적다면 도대체 어느 세목이 빈약한 걸까? 확연하게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이다. 올해 GDP를 적용하면 소득세는 68조원(GDP 3.3%), 부가가치세는 57조원(GDP 2.8%)이 적다. 소득세는 광범위한 공제가, 부가가치세는 낮은 세율이 원인이다. 여기서 어려움에 직면한다. 각각 일반 시민과 밀접한 이해를 지닌 항목이니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그래도 소득세에서는 공제 정비 이야기가 등장하는 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부 소득공제가 개편되었고, 근래 기본소득 쪽은 소득공제의 전면 폐지도 주장한다. 반면 부가가치세는 여전히 성역이다. 증세를 강조하는 학자들도 부가가치세를 로드맵의 마지막에 ‘당위적으로’ 넣을 뿐이다. 부가가치세는 간접세라서 서민에게 부담이 크고 역진적이라는 막강한 비판 때문이다. 그 결과 부가가치세율은 1977년 도입 당시 10% 그대로이다. OECD 평균 19.3%, 북유럽 나라 25%와 비교된다.
부가가치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청된다. 보통 우리나라는 간접세 비중이 높다고 알려져 왔으나 지금은 사실이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간접세 비중은 1997년 61.9%로 높았으나 점차 줄어들어 2020년에는 41.6%이다. 한국은 더 이상 간접세 비중이 높은 나라가 아니다. 역진성도 시야를 넓히면 평가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부가가치세는 납부액만 보면 역진적이지만 재정지출과 결합하면 재분배에 기여하는 세금이다. 고소득자일수록 많이 소비하므로 납부하는 부가가치세 절대액이 많고 이 재원이 사회정책에 사용되면 재분배가 구현될 수 있다.
물론 단일세율의 소비세라는 한계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아예 부가가치세를 ‘누진적 복지목적세’로 전환해 버리자. 여기서 ‘누진적’은 부가가치세 환급을 통해 달성한다. 연말에 일정 소비액까지 부가가치세 일부를 환급하면 부가가치세가 누진구조를 가지게 된다. 소비가 적은 하위계층일수록 자신이 납부한 부가가치세에서 환급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므로 실효세율이 낮아진다. 현재는 대부분의 소비가 전산화되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 전환의 기대효과는 무척 크다. 부가가치세의 역진성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일부 잔존하는 현금거래를 전산화해 실시간 소득파악에 기여하며, 상위계층일수록 감세혜택이 큰 신용카드 공제까지 대체할 수 있다.
또 다른 전환인 ‘복지목적세’는 부가가치세 증세분을 복지에 사용하도록 법에 명시하면 된다. 한국처럼 재정 불신이 큰 나라에서는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명확히 정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일본도 소비세를 올리면서 인상분을 복지에 사용하도록 했고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사회보장세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도 전 국민 고용보험, 일자리보장제, 노인소득보장 등 시민들의 관심이 큰 구체적 사업과 결합하는 ‘복지/세금’ 통합개혁을 추진하자.
코로나19로 서민 가계가 어려운데 웬 부가가치세냐고 반문할 수 있다. 증세는 논의, 입법, 세입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대선을 맞아 ‘새로운 계약’을 제안한다면 세금에서도 담대함이 담겨야 한다는 취지이다. 근래 디지털세, 탄소세 등이 부상하나 현행 법인세의 확대개편이거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세금의 성격을 지닌다. 앞으로 민생복지에서 의미 있는 재원을 마련하려면 부가가치세 증세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세금에서 성역을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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