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무주택자의날’이 온다

2021. 5. 27. 11:0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정치권이 부동산 세금 인하 경쟁에 나섰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세금 부담이 커졌다는 민원에 대한 호응이다. 올해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이 평균 19% 올랐으니 당연히 보유세도 늘어난다. 왜 공시가격이 많이 올랐을까? 시가 대비 공시가격 수준을 가리키는 현실화율은 올해 70.2%로 작년 69%에 비해 1.2%포인트 인상되었을 뿐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정책적 인상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결국 집값이 폭등해 발생한 일이다. 자산 가격이 올랐는데도 세금은 회피하겠다는 부당한 민원과 정치권의 부정의한 호응이 짝을 이룬 부동산 기득권 합작이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이 의견을 모았다고 알려진, 공시가격 6억~9억원 구간 재산세를 보자.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시가 10억원(공시가격 7억원)이던 아파트가 13억원(공시가격 9억원)으로 오르면 재산세가 54만원 증가한다. 이 아파트 소유자들의 아우성은 무엇인가? 집값이 3억원 올라서 더 내게 된 재산세 54만원에 대한 불만이다. 혹 세금을 작년만큼만 내도록 집값을 이전 가격으로 되돌리면 만족하실까?

 

종합부동산세도 가관이다. 며칠 전 국민의힘은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발표했고, 더불어민주당마저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검토하는 모양이다. 현재 공시가격 9억원(시가 13억원)부터 적용되는 종합부동산세 기준액을 12억원(시가 17억원)으로 높이는 방안이다. 올해 공동주택에서 공시가격 9억원이 넘는 주택은 3.7%에 한정된다.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라도 다주택자가 아니고 집값이 오르지 않았다면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세율이 올랐다지만 2주택 이하 소유자라면 인상폭은 0.1~0.2%포인트에 그친다. 현금 조달에 어려움을 가진 분에게는 과세이연 조치를 마련하면 된다. 집값 폭등으로 서민들의 한숨이 깊다. 지금 정치권이 앞다퉈 부동산 부자들의 민원 해결에 힘을 쏟을 때가 아니다. 불평등 개선을 위해 부자증세에 나서는 외국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가?

 

보유세 완화는 전체 부동산시장에 의미심장한 신호로 읽힐 것이다. 버티면 이긴다는 부동산 불패 의지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그랬다. 100년을 이어갈 재정개혁안을 수립하겠다던 재정개혁특위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이 기획재정부에 의해 약화되자 부동산시장은 촛불정부도 별다르지 않다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어긋나기 시작한 첫 단추였다. 모르는지, 잊었는지 지금 또 그 수렁으로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을 맞아 “부동산에서는 할 말이 없다,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한 게 불과 보름 전이다.

 

게다가 두 정당은 부동산 대출 완화까지 주창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무주택자 담보대출을 90%까지 풀겠단다. 국민의힘도 서민층 실수요자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대출 확대를 주장했다. 이는 빚내서 집 사라는 제안이고 결코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증이다. 사실상 부동산시장을 향한 항복 선언인 셈이다. 자신들이 대출받아 집 사라고 했으므로 집값이 떨어졌을 때 원성을 듣지 않으려면 결코 부동산 하향 안정화는 용납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부동산 부자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두 정당은 알아야 한다. 부동산 기득권 성곽 밖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성 안에서 부동산잔치가 열리고 당신들이 편승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성 밖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달 이삼백만원 월급 봉투를 모아도 전월세금을 마련하기 힘들어 다시 주변으로 이삿짐을 싸야 하는 집 없는 서민들의 좌절과 분노를 무겁게 여겨야 한다.

 

다음주 6월3일은 ‘무주택자의날’이다. 30년 전인 1992년에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과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사회”를 염원하며 시민단체와 세입자들이 모여 선언한 날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과 제정구 국회의원도 선포식에 참여했고, 1997년부터 ‘주거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매년 무주택자의날 집회에 참석해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올해 무주택자의날을 맞는 성 밖 사람들의 움직임이 남다르다. 하늘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집부자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치권을 이기기 위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대로 ‘스스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주에 복지현장, 노인, 종교, 주거 부문의 단체들이 참여하는 ‘집걱정없는세상연대’라는 이름의 활동기구도 발족한다. 부동산 폭등에 성이 난 세입자 당사자들과 집 한 채 가지고 성실히 세금을 내는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손을 잡는단다. 힘내라, 응원한다.



출처 : [경향] ‘무주택자의날’이 온다

 

[정동칼럼]‘무주택자의날’이 온다

정치권이 부동산 세금 인하 경쟁에 나섰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세금 부담이 커졌다는 민원에 대한 호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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