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문화와 세상] 언어도 인권이다

2013. 3. 10. 17:0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문화와 세상]언어도 인권이다

 
이건범 | 작가 thistiger@naver.com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1979년 어느 날,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40대 초반의 여성이 탁자에 수북이 쌓아 올린 종이를 갈가리 찢어대는 특이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관은 그들에게 해산하라고 경고하면서 100개의 단어로 구성된 수도경찰법을 읽어 내려갔다. 1839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난해한 법률 용어와 지나치게 복잡한 문장으로 악명이 높았다. 모여든 기자들에게 이 중년 여성은 그 문장들을 쉬운 영어로 번역해주다가 조롱하듯 경찰에게 물었다. “그 복잡하고 어려운 표현은 우리가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뜻인가요?” 경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이 찢고 있던 종이는 몹시 어렵게 쓰인 공문서들이었다. 이 시위를 주도한 40대 초반의 여성 크리시 메이어는 정부의 서식과 공문 등에 쉬운 영어를 사용하라고 촉구하려 거리에 나선 터였다.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온갖 서식에는 서민들이 그 뜻을 알기 어려운 라틴어나 전문 용어가 수두룩했다.

 

메이어는 가난하게 살던 어느 나이든 모녀가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부로부터 난방수당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추위에 떨다 얼어죽은 사건을 직접 겪으면서 쉬운 말 운동에 나섰다. 공식적으로 이 해부터 영국에서는 ‘쉬운 영어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이 펼쳐진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쉬운 말’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문화 측면에서 ‘고운 말’을, 규범 측면에서 ‘바른 말’만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고운 말이나 바른 말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대개 문화와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몫이었고, 특히 국가의 영향력이 강했다.

민주화와 다원화가 진행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 또한 강력하게 나타났다. 세계화와 함께 영어와 미국 문화가 고급 문화 자리를 차지했고, 정보화 와중에 언어 파괴와 표준어 무시가 성행한다. 현재 우리의 언어생활은 이처럼 기존의 전통을 지키려는 힘과 이에 반발하며 기득권을 조롱하려는 두 흐름의 범벅이다.

그러나 이 혼란은 정작 언어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권리’의 측면을 놓치게 한다. 영어 남용은 민족주의냐 세계시민주의냐 하는 대립구도 속에 갇혀 있고, 언어 파괴와 표준말 무시는 권위주의네 자유주의네 하는 비난으로 흐른다. 이런 대립 속에서 우리는 말을 하고 말을 듣는 바로 그 ‘사람’의 문제, 인권이라는 문제를 빼먹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과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권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루이다. 그런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법과 제도, 행정, 사회 관계가 자신을 어떻게 옭아매는지, 또는 해결의 실마리를 주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보 접근권은 단지 정보에 다가갈 경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조건뿐만 아니라 그 정보가 누구든 알아먹을 수 있는 쉬운 말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언어는 ‘알 권리’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특히 오늘날처럼 국가를 비롯한 공공 영역이 개인의 삶을 매우 강하게 규정하는 시대에는 공공언어 영역에서 시민의 알 권리를 지키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복지 정책에도 언어의 장벽이 높다. 포괄 수가제, 바우처, 시니어 클럽, 텔레케어 등 알아먹기 어려운 용어 앞에서 국민은 주눅 들고 인간답게 살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메이어의 말마따나 어려운 말 때문에 죽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 쉬운 말은 고운 말이나 바른 말 이전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언어의 가치다. 화려하고 매끈한 계단보다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고른 비탈길을 먼저 설계해야 하듯이. 언어도 인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