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0. 16:49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당신들은 기초연금 공약에 속았다
4대 중증질환과 노인 임플란트 공약도 그렇다. 무상보육, 학생 복지도 기대에 못 미친다. 복지단체도 울고 갈 복지 정책이었지만, 결국 속고 말았다.
_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나는 박근혜 복지 공약이다. 요즘 나 때문에 말이 많다. 나도 힘들다. 우리 집 가훈이 ‘공약을 지키자’이다.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죗값을 치르는 뜻으로 이제 나를 있는 그대로 알리겠다.
기초연금 공약에 속았다고? 그래 속았다. 내 공약 중 가장 큰돈이 드는 게 기초연금이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는 공약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재정 여력을 강조한 탓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이 단일화를 약속하자 상황이 급박해졌다. 며칠 후 박근혜 후보가 대한노인회를 찾아가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해버렸다. 600만 노인 표의 위력이다.
생각해보라. 우리 집안이 얼마나 놀랐겠는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똑같은 거짓말 때문에 망신당한 터였다. 우리에게 안전장치를 마련하라는 특명이 내려왔다. 꼼수를 부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통합 운영’ 문구를 집어넣었다. 이게 무슨 의미냐고? 재정을 통합해 국민연금 기금을 갖다 쓰던지, 국민연금 급여와 통합해 기초연금을 차등 지원하는 거다. 우리 식구 몇을 빼고는 이를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4대 중증질환 공약 폐기? 정말 죄송하다. 며칠 전 방송에서 희귀난치성 아이를 가진 부모의 절박한 사연을 보았다. 나도 눈물이 나더라. 이것만은 지켜야 하는데 당선자가 너무한다. 애초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질환이 전체 고액진료 환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불과해 85%의 환자를 배제하는 공약인데도 이것마저 뒤집다니. 이제 와서 비급여의 핵심인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는 보장 대상이 아니라니 말문이 막힌다.
노인 임플란트 공약도 날아가버리는 모양이다. 공약집에 “65세 이상 어르신 중 임플란트가 필요한 대상자”로 적어놓고서는 ‘75세 이상 노인의 어금니 2개’로 시작한단다. 그리고 놀라지 마라. 우리가 복지 소요액으로 밝힌 총 131조원에는 4대 중증질환, 노인 임플란트를 위한 돈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선거 직전 최종 공약집을 발표하고 시차를 두어 이튿날 공약별 소요 재정 내역을 첨부자료로 살짝 홈페이지에 올린 까닭에 이 내용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소요 재정 내역이 제대로 알려졌으면 기초연금의 진실이 투표일 전에 탄로날 수도 있었다. 2013년 법을 개정해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하려면 총 40조원이 필요한데 우리가 밝힌 소요 재정은 15조원뿐이었다. 나머지는? 이해해 달라. 요즘 이리저리 공약 축소 방안을 찾느라 우리도 정신이 없다.
내 공약의 이름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이다. 참 잘 지었다. 이 이름을 받고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이제 실체를 공개한다. 아이들 복지부터 보자. 무상보육은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표준보육비용(특별활동비 포함)이 아니라 현행 정부 지원 단가이다. 아동수당도 없고 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도 미미하다. 보육 분야가 그나마 진전된 공약인데 이조차도 복지국가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친다. 무상급식? 아예 없다. 당선자의 자존심이 이건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진보 정당보다 더 진보적이라 오인된 박근혜 복지 공약
학생 복지를 보자. 고교 무상교육이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교육 여건 개선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OECD 상위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약속이다. 결국 교사 수를 늘리는 일인데, 이에 필요한 돈도 131조원에서 빠져 있다. 실업자 복지도 거의 없다. 현행 고용보험을 늘리지 않고 청년,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실업부조도 없다. 일하는 것을 조건으로 복지를 주는 근로연계 복지철학을 적용한 결과다. 주거의 경우 철도부지 상공에 인공대지를 조성해 임대주택을 짓는다는 다소 황당한 ‘행복주택 프로젝트’를 제안했지만 공공임대비율 조성 목표를 밝히지는 않았다. 짓는 시늉만 보이면 된다. 의료·노후 분야는 고백한 대로다.
놀라운 것은 이런 내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선거 직전 선거관리위원회와 <한국일보>가 벌인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가장 비슷한 공약’으로 복지가 꼽혔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대표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신의 무상보육 공약보다 2012년 박근혜 후보의 무상보육 공약이 더 진보적이라며 진보 정당이 복지정책에서 차별화하기 어려운 국면에 직면해 있다’고 토로했다. 정말 대박이다. 국민도, 복지단체도, 진보 정당도 내 피리소리에 넋을 잃을 정도니.
은퇴 전에 이제라도 가훈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 ‘박근혜 空約 백서’를 써야겠다. 내 아이들과 당신들이 다시는 속지 않게 말이다.
'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 > 언론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향, 문화와 세상] 언어도 인권이다 (0) | 2013.03.10 |
---|---|
[주간경향] 지금 문제 있다고 폐지하자는 건 잘못 (0) | 2013.03.10 |
[경향논단] 고령화시대 진보의 연금정치 (0) | 2013.03.10 |
[프레시안] "박근혜, 복지국가 기둥 세우는 척하다 뽑아버려" (0) | 2013.03.05 |
[경향] “건강보험 하나로·사회복지세 도입 운동 더 주력할 것” (0) | 2013.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