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사회복지사가 '마을 만들기' 사업에 적합한 5가지 이유

2013. 2. 24. 17:2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회복지사, 마을 만들기로 도약해야"

 

김대근 사회복지사 도봉 마을예술창작소 대표 

요즘 어디를 가나 '마을' 이야기로 난리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하나, 비단 서울시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전국 여기저기서 마을 관련 행사들이 우후죽순 열리는 것으로 봐선 요즘 대세가 마을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새로운 '대세'로 떠오른 '마을'

한국 사회는 급속하게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이와 동시에 출산율 저하·자살률 증가·이혼율 증가·양극화 심화 등 심각한 문제 또한 안고 있다. 개인 소외에서 비롯한 사고들이 연일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요즘에 '마을'이 탈출구로 제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복지계도 마을 이야기로 분주하다. 그렇지 않아도 '시와 구'(이하 '관'으로 표기)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 여러 서류 요청으로 바빠지는 복지관은 새로운 대세인 마을 관련 사업에 대한 관의 압박으로 비명을 지른다. 얼마 전까지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필자에게도 마을이 대세인 요즘 흐름에 복지관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문의와 요청들이 쏟아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에게 '마을'이란 단어가 반가운 의미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마을 관련 사업은 그전부터 복지관에서 꾸준히 추진된 주력 사업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마을 대신 '지역 사회'라 불렀던 점이다. 1990년대까지 복지관의 주력 사업이 저소득 주민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던 '재가 복지 사업'이었다면, 2000년대에 들어와 지역 사회의 주인공으로서 주민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들을 조직하여 역량을 강화시키는 '지역 사회 조직화'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재가복지'라는 사업 명칭도 '지역 사회 보호'로 바뀌었다.

이전까지 사회복지는 노인, 장애인, 아동·청소년 등 분야별 서비스 분업 체계로 진행됐다. 그러다 해당 분야로 특정해서는 사회복지 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반성이 나왔고, 해당 서비스 대상이 지닌 생태계를 종합 관리하기 위한 배경으로 지역 사회가 부각됐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12월 29일 서울 성북구 옛 종암동주민센터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허브센터' 및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 개소식에서 참석자들과 가림막을 걷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복지 현장에선 '지역 사회' 논의 시작했으나…

그러나 복지관은 주력 사업을 바꾸었을지는 몰라도 사업의 관점과 실행 방법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3년마다 진행되는 재위탁 심사는 갑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 관과 민의 사업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하였다. 복지관이 지역 사회 주민과 연대하기보다는 관 눈치 보기에 우선하게 하였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적 색채가 분명한 시장과 구청장의 정책에 따라 사업의 입장과 실행 방향도 춤을 추듯 변경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한때 지역 사회 조직화 사업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던 한 복지관의 위탁법인이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구청장에 의해 한순간에 바뀌는 일이 있었다. 이 복지관은 당시 구청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개인이 단체장으로 있는 위탁법인에 넘어갔다가 3년 뒤 구청장이 바뀌자 다시 새로운 위탁법인을 맞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지관이 소신 있게 지역 사회 주민과 연대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지자체 단체장과 정치적 코드가 다른 시민단체와 사업을 교류하고 연대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해가 지날수록 점점 복잡해지고 가중되는 복지관의 행정 업무 체계도 문제다. 제출 서류가 많아지고 관리 감독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젊은 사회복지사들은 사업에 대한 관점과 비전보다는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프로그램을 안전하게 진행하는 능력을 요구받는다.

'무료 급식'을 비롯해 최근 정책적 이슈로 떠오르는 수많은 사회복지 현안에 대해 일선 사회복지사들의 인식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많은 행정서류를 정해진 기한 안에 완성해야 하고, 사업을 잘 포장하여 공모 사업에 지원함으로써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당장 처리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복지관에 요구받는 마을 관련 사업도 이러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언제까지 서울시장직을 수행할지 알 수 없으므로, 복지관으로서는 관에서 요구하는 사업 시행 방침에 적당히 맞춰 액션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서류를 요구하는 공무원들도 마을 사업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공무원들이 전달하는 요구안도 가관이다.

복지관들이 양식을 받아 제출하는 데이터들의 질도 높을 리 없다. 복지관 내부에서 불평불만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일선 사회복지사들에게서 마을 사업에 관한 부정적 사례가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어쩌면 마을 사업을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세력 못지않게 사회복지사들 역시 그러할지 모른다.


다양한 주민을 만나는 주체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는 마을 사업에 대한 견해를 어떻게 정리하고 사업을 실행해야 할까? 마을 만들기 사업을 복지관의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관과 지속한 네트워크가 장점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사회복지사는 마을 사업을 함께할 적임자 가운데 하나다.

첫째, 사회복지사는 다양한 주민과 만나고 그들의 용어를 사용하는 주체다. 현재 마을 만들기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시민단체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민단체는 일정한 정치적 입장이 있으며 이런 색채에 의해 참여자 구성이 결정된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활용할 수 있는 지역 자원이 두텁지 않다. 정치적 선택이 눈앞에 가시화되지 않은 복지관의 시스템은 더 폭넓은 주민의 참여로 다양한 시각을 집결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시민단체는 '참여'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복지관은 '봉사'란 단어를 사용한다. 시민사회계에서 환영하지 않는 이 '봉사'란 단어에 들어 있는 의미를 파악해야 시민사회계는 그동안 접하지 않은 다수 주민과 공감대를 나눌 수 있다.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기존에 쓰이던 단어들의 부정적인 의미에 집중하여 새로운 언어를 개편하는 과정이 오히려 보편적 정서를 지닌 대중과 멀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민이 이해하는 용어에는 주민의 성장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억과 경험이 녹아 있다. 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주민과 서로 소통할 기반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는 중간 지점에서 서로 이질적인 두 집단이 만나는 다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무턱대고 기존의 터부를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터부라고 치부하는 것들 속에서 간과해 온 본질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터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도 개선될 수 있다.

필자가 복지관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기획한 마을 잔치에 진보적 단체의 구성원들이 대거 참여한 적이 있었다. 복지관 앞 골목길에 차량을 통제하여 마을 길 전체를 주민의 벼룩시장으로 활용하는 행사였는데, 이 길을 보호하고 차량을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지역에서 대표적인 보수 성향 단체로 손꼽히는 재향군인회 회장과 그 회원들이었다. 사회복지사는 지역 사회에서 성향을 달리하는 다양한 주민의 집합체를 배경으로 그들의 지향점을 공유해 더불어 사는 마을을 실행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관의 용어를 이해하고 관과 소통

둘째, 사회복지사는 관의 용어를 이해하고 관과 소통할 수 있는 주체이다. 사회복지사는 관에서 요구하는 양식들을 신속히 실행하고 사업을 진행해온 사람들이다. 이러한 점이 반드시 장점으로 활용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사회복지사는 관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들을 상당 부분 확보한 전문가임은 사실이다.

현재 진행되는 마을 사업은 시민사회가 그 주축을 이뤄 실행해오고 있으나, 시민사회는 기존 공무원과 소통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마을 만들기 사업은 관의 행정력을 배제하고는 진행하기 어렵다. 사회복지사는 이 점을 활용해 시민사회와 관의 동떨어진 생각과 언어를 소통시켜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일상적으로 주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성과의 지표를 만들어내며 관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민의 언어들을 행정의 언어로 바꾸어 중재하는 데 훈련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마을 만들기 사업의 중재자 역할을 맡는다면 민관 협력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소통의 어려움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과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주체

셋째, 사회복지사는 시민사회의 행정력을 끌어올려 관과 연결할 수 있는 주체이다. 현재 서울시가 진행하는 주민 참여형 마을 만들기 사업은 5인 이상 주민이 참여하면 가능하다. 기존 사회복지 행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소하지만, 일반 주민이나 시민사회계가 시행하기는 여전히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익숙지 않은 행정 일을 해야 하는 주민은 우선 예산을 진행하고 사후에 행정 양식을 채워 넣는 경우가 많다. 한꺼번에 보고 양식을 작성하다 보면 예정된 시한을 넘길 때가 많고 여기저기 누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마을 사업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단체, 주민의 목소리를 접하게 된다.

비록 관료적인 방식으로 훈련되어 있지만 사회복지사는 관에서 요구하는 행정 방식을 민간 영역에서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행정은 일의 진행에 대한 근거를 남기고 사업 실행 방식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신속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한 보고 양식을 마련해 내용을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복지사가 기존 주민이 터부시해온 행정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일을 실행하는 데 행정력을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주민을 지원하고 훈련한다면 마을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양적 평가를 벗어나 질적 평가를 위한 산파

넷째, 사회복지사는 새로운 성과 산출 방식의 산파가 될 수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정해진 시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기존 유사 사업들을 보면, 참여 주민 숫자에 지나치게 연연한 까닭에 이벤트 사업이 많았으며 이마저도 자발적인 참여보다는 동원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기존 참여자를 다른 사업에 돌려 또 참여하게 하는 일종의 '돌려막기' 식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성과를 산출하기가 쉽지 않기에 '마을 사업은 이거다'라고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관의 속성상 이런 모호함은 견디기 어렵다. 사업이 늦게 진척될수록 조급해진 관은 민간을 압박하는 수단을 동원하고, 이러한 관의 태도는 민간 영역과 갈등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사회복지사도 사업을 진행할 때 성과를 산출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행히 최근에는 사회복지관의 성과 산출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주민의 수보다는 그들이 참여를 통해 변한 내·외면의 징후들을 주목했으며, 그 일을 얼마나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느냐를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문지와 평가를 통해 성과를 숫자로 표현하는 양적 조사 방식보다는 대화와 만남을 통한 질적 평가 방식으로 마을 사업의 성과를 산출해야 한다. 아직 시민사회계는 이러한 방식에 익숙지 않다. 사회복지사들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때, 관이 안심하고 민간 영역의 활동을 기다릴 수 있고 이에 따른 지원 방식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을 잘 이해하는 주체이자 전문가

다섯째, 사회복지사는 마을을 잘 이해하는 주체이고 전문가이다. 마을 만들기가 가장 시급한 계층이 누구일까? 누구보다 마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마을의 기능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은 복지관의 주요 이용 대상 주민이다. 사회복지사는 마을에서 더불어 살기 위해 주민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그들을 주선하며 소외된 이들을 옹호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마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몇 년 전 마을에서 만난 아이 둘을 키우는 젊은 주부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가 하나 있을 때는 멀리서 열린다 해도 좋은 행사가 있으면 쫓아다녔어요. 그런데 아이가 둘이 되니 그런 데 못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멀티 네트워크를 확보한 청년층,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 직장인들에 비해 멀리 외출하기 쉽지 않은 노년층, 장애인, 아동·청소년, 어린 자녀를 둔 주부들, 자영업자들에게 마을의 환경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동안 복지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봉사자로 참여하고 행사에도 결합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분들의 욕구와 이분들이 공동체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소통해온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주민이 수동적 대상자에서 벗어나 마을 활동의 주체로 당당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사회복지사들이 매개가 되어야 한다.

사회복지계에서 대표적인 활동가로 꼽히는 한 사회복지사는 현장에서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회복지사는 늘 마땅함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마을 주민이 주체적으로 자기 일을 결정하고 책임지며 실행한다고 해서 사회복지사는 필요 없는 사람일까? 그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일시적으론 그렇게 될 수 있겠지만,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주민을 견인하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이상적인 일을 현실에 맞추고 이를 끝없이 공공의 가치에 적합하게 고민하는 역할도 사회복지사의 주요 몫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지금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기 생업이나 자기 가족의 일이 아니면 마음 쓰기 어렵다. 주도적으로 나서서 일을 추진하기는 더욱 어렵다. 비록 마을 공동체의 일이라도, 남을 돕는 착한 일이라도 그렇다. 꼭 좋은 말만 듣는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시기와 오해, 비교, 평가, 구설이 따르기도 한다. 이런 일을 현실적으로 계속 감당하긴 어렵다. 그러므로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그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주선과 지원이 필요하다."

 

마을이 대세인 지금, 사회복지사에겐 도약의 기회

지역 사회의 사회복지사는 많은 한계를 가진 집단이며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서는 사람들이다. 보수와 위신에서도 박한 평가를 받는 직업군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주민과 공무원을 만나면서 얻은 수많은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는 주민에게 확실한 공신력을 얻어내고 지자체와 공무원들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의 토대이기도 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마을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열악한 환경을 탓하며 소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한다면 사회복지사는 설 자리가 좁아 들고 주민에게서도 외면받을 것이다. 마을이 대세인 요즘, 사회복지사에게는 지금이 최고의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