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청년이여, 보편 복지 위해 연말 정산 거부하자!

2013. 3. 6. 12:4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청년 정치와 복지국가

 

최창민 비례대표제포럼 청년위원

 

나는 올해 서른두 살의 청년이다. 대학을 나와 취직한 상태다. 며칠 전 연말 정산 서류를 받았다. 이 서류를 보며 '청년 정치'와 '복지국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작년에 소득세 연말 정산으로 38만 원을 받았다. 연말 정산 제도 변화로 지난해에 비해 돌려받는 정산액이 다소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올해도 상당액을 받을 것 같다. 주변의 월급 많이 받는 동료를 보면, 많게는 150만 원 정도까지 환급받는 경우도 있다. 생각보다 연말 정산액이 많다.


연말 정산 서류 앞에서 '청년 정치'와 '복지국가'를 생각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생긴다. 요즘 복지 재정 논란이 뜨겁다. 복지는 늘려야 하는데 국가의 재정은 한정돼 있다. 어떻게 보면 쉬운 문제일 수 있다. 세출에서 복지 예산 비중을 확대하든 아니면 세입 자체를 늘리든.

나는 반값 등록금이 시행됐으면 좋겠다. 후배 대학생들이 등록금 부담 없이 학교에 다니기를 바란다. 나아가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실업수당을 받았으면 좋겠다. 고용보험으로 받는 실업급여의 금액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기간도 1년 이상으로 늘어났으면 한다. 또한, 모든 어르신이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위해선 세금이 필요하다.

나는 매년 평균 35만 원 정도의 세금을 환급받는다. 근로소득세 일부를 정부로부터 돌려받는 것인데, 결국 내 세금이다. 이 돈을 돌려받지 않는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세입이 늘고, 그만큼 세출 예산이 늘어날 수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복지에는 돈이 든다

2011년 1월 복지 재정 논란이 시작될 즈음, 국회에서 정동영 의원과 조승수 의원이 '복지는 세금이다'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파격적이고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복지를 실현하는 데는 돈이 든다는 당연한 명제를 이 문장은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 증세 논쟁이 일고 있다. 심지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도 처음에는 '박근혜 표 복지정책 다 못한다. 선별적으로 골라서 하자'고 하더니, 차츰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증세를 하자'라는 논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이 보편적 복지를 요구했고, 그 동력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상당히 기여한 상황이기에 보수 진영조차 보편적 복지와 보편적 증세를 조심스럽게나마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놀라운 변화이다.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찬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봐도, 국민의 절반 정도는 보편적 복지 확대와 증세에 동의한다. 물론, 심정적인 지지와 실제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동의는 차원이 다른 문제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국민의 절반이 보편적 증세에 찬성 의견을 보였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문제는 오히려 야권에 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복지 공약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서 증세를 해야 한다, 증세는 하지 말고 비과세 감면을 줄이고 지하 경제를 양성화해서 세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논쟁에서 민주통합당, 진보정의당 등 야당은 빠져 있다. 증세를 강조해야 할 보편 복지 정치 세력이 증세 싸움의 링에조차 오르지 않고 있다. 아니 오르지 못하고 있다.


증세는 독배가 아니다

야권에서 보편적 증세를 당론으로 하자고 하면 '정치를 모른다, 순진하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한마디로, 증세를 말하면 표 떨어진다는 것이다. '증세를 단행한 정권은 망했다'라는 말이 회자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치권에서 증세는 금기어나 다름없다.

야권이 그나마 주장하는 것이 부자 감세 철회 아니면 부자 증세 정도다. 민주통합당(이용섭 의원안)은 현행 소득세율 최고세율(38%) 구간을 '3억 원 초과'에서 '1억5000만 원 초과'로 하향 조정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진보정의당(박원석 의원안)은 현행 3억 원 초과 38% 세율 규정을 1억2000만 원 초과 40% 세율로 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해서 증가하는 세수는 매년 약 1조 원에서 1조6000억 원 정도다. 1조 원이 넘는 세수가 적은 건 아니지만, 반값 등록금 시행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돈이다.

야권에 요구하고 싶다. 이제 좀 솔직해지자. 정치의 역할이 국민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미래지향적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중장기적 과제일지라도 야권은 보편적 증세를 국민에게 제안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보편적 증세'라는 용어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과 '세금 폭탄' 프레임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더 많은 세금, 더 큰 복지' 등 기술적으로 메시지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보편적 증세를 국민에게 호소하고 공감하게 하는 캠페인을 통해 '더 좋은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 '정부의 세출 예산을 구조 조정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식시키겠다' 등의 의제를 확산시켜야 한다. 민주와 진보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야권은 증세 정치에서 리더십을 복원해 나가야 한다.

무상 급식 이슈의 성공이 보편적 증세 이슈의 오래된 미래다. 야권이 먼저 제기한 무상 급식 이슈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에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기 때문에 성공한 측면이 있다. 이슈 선명성에서 야권이 여권을 압도했다는 것인데 보편적 증세도 현재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이 이슈를 주도할 수 있다.

더욱이, 보편적 증세는 우리나라의 미래 비전을 이루는 중요한 골격이다. 저성장 국면에서 복지 재정을 확충할 방법은 증세와 국채 발행밖에 없다. 국채를 발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불가피하게 증세 논의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그 비전을 야권이 먼저 제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적게 내고 적게 받는' 복지 재정 구조를 가졌다면, 미래에 국민은 '많이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청년이 먼저, 연말 정산 거부 캠페인에 나서자

이른바 '더 많은 세금, 더 큰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나를 비롯한 청년, 젊은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청년이 먼저, 연말 정산 거부 캠페인'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참고로 고소득자일수록 연말 정산으로 돌려받는 금액이 훨씬 많다).

청년은 지금까지 반값 등록금 도입과 청년 주거 확대, 실업수당 등 정부와 기존 정치권에 '요구'만 해왔다. 자본도, 소득도 적은 청년이 사회적 약자로서 정치와 사회에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 하지만, 이른바 '찡찡'거리는 것으로는 정치와 사회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청년이 먼저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세력화된 청년 운동은 청년의 비정규 노동을 이슈화하고 조직화한 청년유니온에서 보듯이 급진적인 요소가 강했다. 청년 운동이 급진성을 넘어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젊은 직장인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충분히 논의되고 비전이 공유된다면 청년이 먼저 '연말 정산을 거부하자, 그래서 복지를 확대하자'는 캠페인은 젊은 직장인과 월급 생활자들에게서 동의를 얻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내가 받는 연말 정산은 이미 세금이었다. 내 돈이 아니다. 공공의 재산이다. 비록 금액이 적더라도 청년이 환급받는 세금을 정부에 돌려줌으로써, 또는 환급을 거부함으로써 세수를 확충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선배 세대, 현재 경제력을 지닌 핵심 계층에게 복지 재정 책임을 더 강하게 요청할 수 있다.

이는 미래를 이어갈 청년의 역할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보편적 증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청년은 주변부적 집단이 아니라 나라와 정치의 미래를 설계할 집단으로서 권리와 책임성을 부각할 수 있다.

청년이 먼저, 연말 정산을 거부하자. 내가 거부한 연말 정산을 계기로 복지목적세 개념의 재정이 늘어나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반값 등록금 등 복지가 확충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내가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신뢰도 생길 수 있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는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


2014년 1월 어느 날

물론, '더 많은 세금, 더 큰 복지'로 이름 붙인 보편적 복지와 증세 캠페인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는 없다. 복지와 증세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형성돼야 하는데, 아직은 세금을 올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국민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청년 정치'의 비전에서 볼 때, 장기적인 과제로 청년이 먼저 보편적 증세를 이슈화할 필요가 있다. 한 명이 꾸는 꿈은 허황된 것이지만 천 명, 만 명이 꾸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공감대를 넓혀나간다면, 머지않아 이룰 수 있다. 청년이 나서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2014년 1월 어느 날. 회사에서 연말 정산을 신청하라는 공지가 뜬다. 나는 연말 정산을 신청하지 않는다. 내가 받지 않은 환급세액은 복지목적세라는 '꼬리표'가 붙어 반값 등록금과 청년 실업수당, 기초노령연금, 기초생활보장 등의 재원으로 활용된다. '더 많은 세금, 더 큰 복지'의 대한민국이 나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오후, 나와 같은 연말 정산 무신청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우리의 무신청 증표를 가지고 우리나라를 주도하는 기득권층에 '증세'를 요구한다. 우리도 "냈으니 당신도 내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