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복지국가 안겨줄 '초인'은 없다

2013. 2. 17. 17:3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풀뿌리 민주주의로 변화를 체험하자

 


이세희 성공회대 NGO대학원 석사과정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복지와 정치 개혁의 야릇한 공통점


우리 사회는 '민주 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성취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국민은 더 이상 정치적인 부분에서 개혁할 문제들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정치가 사회의 모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갖게 되었다. 오히려 경제 성장으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 마치 이 사회의 '해결사'인 것처럼 인식되었고, 각 정당은 경제계 인사를 모시기에 혈안이 되기도 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성장 담론의 위력은 무상 급식 논쟁을 거치면서 보편 복지 담론에 한풀 꺾이기 시작하였다. 낙수 효과를 거론하며 성장이 최고라고 이야기하던 정치권이 180도 돌변하여 이번에는 '누가 더 잘 퍼주나'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며 복지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복지 중심주의자가 되어 상대방의 정책에 '받고 하나 더'를 외쳤다.

그리하여 지난 대선의 가장 큰 이슈는 복지가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대선 정국의 마지막 시기에 민주 진영의 단일화 과정에서 뜻밖에도 '정치 개혁' 이슈가 떠올랐다.

언뜻 보면 정치 개혁과 복지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둘에는 분명 공통분모가 있다. 그 공통분모란, 둘 다 한국 사회 내에서 현재 '성공한 실패자'라는 것이다. 정치 개혁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지만, 내용적인 면을 보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 보편적 복지가 핵심 의제로 부상했지만, 선거 기간 내내 재원 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아 왔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공약 철회 논의가 일어났다. 정치 개혁과 복지 모두 현재로서는 성공한 실패자로 남게 되었다.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각 과제를 추진할 만한 주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정치 개혁과 복지는 다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발전을 저해하는 악순환을 거치고 있다.


초인이나 선각자가 주체는 아니다

선거 때마다 정치 개혁을 할 주체로 '젊은 피' 수혈론이 대두하는가 하면, 새로운 인물이 부상하면서 우리 정치 시스템의 숙원 사업을 해결할 구세주처럼 대우받기도 했다. 그러나 새롭게 급부상한 인물들은 임기 말이 되면 레임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쉽게 낡은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에도 국민은 끊임없이 또 다른 구세주를 찾아 헤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정치 개혁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선각자가 아니다. 시민 전체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현 의지를 행동으로 표현할 때에만 정치 개혁은 가능하다.

복지의 주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상 급식 논쟁을 통해 지펴진 보편적 복지에 대한 열망을 시민이 선거를 통해 확인해 주고 힘을 실어 주었지만, 정치권에서는 국민적 열망의 의미를 제대로 담아낼 프로그램을 만들기는커녕 해석해 낼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한 열망이 왜 생겨났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모습의 공동체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사라졌고, 어떠한 모습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사라져버렸다. 대신 직업 정치인들은 얄팍한 복지 해석에서 비롯된 시혜적 성격의 퍼주기식 공약을 남발했다. 그리하여 보편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민적 열망은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의 천박한 이기주의로 치부되는 심각한 인격 손상을 입게 되었다.

 


▲ 대전에서 첫 무상 급식이 시작된 2011년 6월 1일 한 초등학교 점심시간. ⓒ뉴시스


강요받은 선거

이쯤 되면 국민이 들고일어나 "우리가 원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라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이를 바르게 관철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싶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 정치 구조에는 국민적 요구가 관철될 수 있는 경로가 매우 좁다는 두 번째 벽이 존재한다.

사실상 우리에게는 선거만이 민의를 정치에 반영할 유일한 수단이다. 그럼에도 선거를 통해 표출된 시민의 의사는 일회적이고, 그다음 선거 전까지 수정, 보완, 되먹임이 안 된다. 결국 선거라는 형식도 정치적으로 자원을 분배하는 집단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토록 요구하는 방법으로는 한계가 많다.

시민이 집단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대중 동원과 집회도 있지만, 이는 선후 완급 조절이 어렵고 집단 내의 진지한 논의가 가능할 정도의 응집력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갑작스레 모인 대중 집회는 의사 표현 방법이 획일적이어서 비조직화된 일시적 분노 표출 수준에서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은 선거를 대할 때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대중적 분출에 대해서도 그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는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조직화된 시민의 힘으로 정치권을 계속 압박하는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내며,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하는 집단에 대한 견제와 보완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선거를 통해 선택을 강요받고 생활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시민은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매너리즘에 빠질 뿐이다. 지난 2012년 우리는 큰 투표를 두 번 했고, 민주통합당은 당 대표, 선출직 후보, 선출직 후보를 위한 예비 후보 선정까지 국민의 의사를 묻곤 했다. 그 많은 선거에 동원되면서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 믿게 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12년은 "선거를 하면 할수록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최악을 피하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는 방어적 정치의식을 퍼뜨린 한 해였다. 이래서는 더욱더 조직화된 힘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는 정치 개혁, 복지에 모두 조직화된 시민 주체의 힘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주체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에 양쪽 모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주체는 '체험'을 통해 성장한다

주체는 당위와 명분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결과의 체험과 과정의 체험을 공유해야 한다.

결과의 체험이란 무상 급식, 무상 보육, 반값 등록금처럼 복지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의 질이 향상됨을 느끼고 그러한 복지가 시행되기 전까지 오가는 수많은 걱정을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안심할 때, 체험 공동체의 외연이 확장될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복지국가를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무상 의료처럼 삶의 변화를 결정하는 주요 의제에 집중하여 그것의 중요성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정책 결정자들을 압박하여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정의 체험을 겪으려면 구성원들이 변화를 위한 운동에 동참하여 스스로 힘으로 해냈다는 자신감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정을 통해 스스로 변하고 주변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시켰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먼저 시민 참여형 풀뿌리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직 국가적으로 시행되지는 못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를 통해 전 국민이 기본권처럼 향유해야 할 복지를 공동체 안에서 미리 체험해 보도록 해야 한다.

이런 체험을 통해 주체로 나아감에서 한 가지 꼭 지켜야 할 것은 책임에 대한 인식이다. 의제를 설정하고 주장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될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복지 체험은 곧 재원 문제와 직결된다. 복지를 체험하고 주체를 형성하더라도 그 책임을 모두 국가에 떠넘긴다면 과정상의 모든 노력은 의미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소득별 증세 운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복지 재정 확충에 동참해야 한다. 또 세금을 거두고 집행하는 원칙에서 잘못된 것은 없는지, 행정 체계는 효율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는지 꾸준히 감시해야 한다.


엘 시스테마를 주목하라

주체가 약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복지와 정치 개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까? 좋은 해답을 제시하는 사례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다.

엘 시스테마란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로, 음악 교육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심각한 빈곤과 양극화를 겪으며 그 무엇으로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고 체념해왔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통해 베네수엘라 국민은 자신의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엘 시스테마는 경제학 박사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섹스, 폭력, 마약에 찌든 빈민층 청소년을 상대로 음악 교육을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빈곤과 사회적 냉대를 당연한 삶의 일부라 생각했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손에 아무 의심 없이 악기를 쥐어준 한 남자가 신기해 음악 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까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멸시당했던 그들에게 손에 들어온 돈 되는 물건은 마약 교환권뿐이었다. 그러니 이 낯선 음악가가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빈민가의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법과 타인과 교감하고 함께 생활하는 법을 배웠다. 엘 시스테마의 취지에 공감한 베네수엘라 정부와 민간 기업의 후원을 통해 이 프로그램은 베네수엘라 전역에 확산했다. 빈민가 청소년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LA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더블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즈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도 탄생시켰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통해 빈민가 아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것을 막았을 뿐 아니라 꿈과 희망을 줬고 소속감과 협동심 등의 소중한 가치를 가르쳐줬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아야만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편견은 깨졌고, 베네수엘라에서는 문화를 향유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기본권처럼 인식되었다.

대한민국은 베네수엘라보다 소득 수준도 높고 양극화도 덜한 편이다. 사회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공동체 의식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시민의 보편적 복지에 대한 열망도 강하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선 문화를 향유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기란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진다. 과연 두 나라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체험의 힘'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체험을 통해 개개인이 직접 변화의 가능성을 이해했고, 사회 공동체에 가져온 변화를 목격했기에 그 믿음이 더 강해진 것이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보다 우리 자신이

주체의 문제를 생각하면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배운 '광야'란 시가 떠오른다. 나라 잃은 설움을 겪은 암흑기 조상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비록 광복은 얻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를 보며 언젠가는 백마 타고 온 초인이 모두 해결해 주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기회가 오더라도 염원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변화는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내가 먼저 그 주체가 되겠노라 실천하면서 내 곁의 누군가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더 넓게 확장시켜 나갈 때 우리가 꿈꾸는 변화는 진정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