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그 20대 청년은 왜 취직 후 자살을 시도했나

2013. 1. 28. 18:1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국가, 시작은 사람에서

 

기현주 사회복지사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어제 뛰어내린 그 친구, 나도 아는 사람이에요."

체감온도 영하 17도, 매서운 칼바람에 귀까지 먹먹해지는 추운 날, 그는 아파트 옥상 난간에 섰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채 녹기도 전에 혹한이 시작되어서인지, 길바닥은 온통 꽁꽁 얼어붙었다. 그리고 차디찬 그 바닥으로 그는 곤두박질쳤다.


버틸 수 없다면, 떨어져라?

그는 20대 꽃다운 나이의 청년이고, 국가에서 매달 기초생활보장 생계비를 받는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인근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취직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댄스 동아리에서도 활동하던 '활달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 운이 좋게도 비정규직이지만 월 120만 원을 받는 일자리를 얻었다고 좋아했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그런데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주민자치센터에서 그에게 연락했다. 이제 돈을 벌게 되었으니 국가에서 매달 주는 생계비를 더는 줄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파트 옥상에 섰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벌써 3주가 지났다.

그에게는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는 어머니와 아직 고등학생인 동생, 그리고 할머니가 있다. 네 식구는 그동안 소득이 없이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생계비로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그가 취직하면서 월급을 받게 되니 4인 가구 소득인정액 기준을 초과하게 되어 소위 '수급권 탈락'을 맞은 것이다. 생계비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데 뭐가 문제냐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그에게 수급권 탈락은 목숨과 맞바꿀 만큼의 절박함이었다.

수급자에서 탈락하면, 지금 살고 있는 보증금 300만 원짜리 임대주택에서도 나가야 한다. 300만 원. 이 돈으로 당장 서울에서 네 식구가 등 붙이고 잘 곳은 '없다'. 어머니의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다니던 병원 비용도 이제 고스란히 그의 몫이다. 수급자여서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때에는 거의 무상의료 수준으로 병원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수급에서 탈락하면 전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고등학생인 동생의 학비도 내야 한다. 할머니는 점심 한 끼 정도는 복지관의 경로 식당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제 이것마저도 없어진다. 수급권에서 탈락한다는 것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지원'이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생계비보다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어야 이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계산은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에 없다. 한마디로 'All or Nothing'이다. 수급권이라는 제도 내에 들어오면 부족하더라도 최저생활을 지원받지만, 탈락하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위험천만한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만도 못하다. 곡예사에게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한 그물 안전망이 있지만, 우리 복지 제도의 안전망은 그것이 땅에 너무나 가까워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곧 사망이다.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사람을 붙잡고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를 아는 사람, 바로 그가 어릴 적부터 만나 온 복지관 사회복지사가 말한다. 며칠째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보고, 사회복지사는 그저 울기만 했다. 그를 위해 사회복지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탄식과 울음이 뒤섞인다.

사회복지사는 후원자를 찾아 그와 연결해 주거나 그의 할머니에게 도시락을 챙겨주거나 그가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상담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지원은 그저 부차적일 뿐이다. 그와 가족이 살 집이 없어지는 일,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 20대 청년으로서 보통의 삶에 대해서는 사회복지사도, 뛰어내린 그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살아난다고 해도 걱정입니다." 이런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먼저 병원비가 걱정이다. 그는 이미 수급권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본인 부담의 병원비는 고스란히 다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2% 수준이니, 중환자실에 간병인에 수술과 치료까지 병원비 폭탄이 걱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 상해보험에 가입해 두기는 했는데, 자살 사고는 해당하지 않는다니 국가도, 보험회사도 지원할 수 있는 곳은 더는 없다. 어떻게 병원비를 해결한다고 해도, 그가 의식을 찾더라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터이니 그것도 걱정이다. 거동할 수 있을지, 어쩌면 정신장애를 겪을 수도 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그가 취직해서 돈을 버는 일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장애인 복지 사업의 지원을 받으려면 장애가 얼마나 심한지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혹시라도 장애 상태가 경증이라면 그 또한 실제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회복지사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소위 '없는 사람', '취약계층'에게 이렇게 갑갑한 삶에서 비롯되는 사건은 종종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들이 눈길 사고로 주검으로 돌아왔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이유도 없이 해고되어 거리를 헤매는 아버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수십 번째 면접에 떨어지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강 다리 앞에 서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월급 150만 원 받는 직장에 취직한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동생은 여전히 시급 4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살 집은 있지만, 은퇴한 부모님은 소득이 없으니 집을 팔 수도 없고, 결혼하자는 여자 친구에게는 부모님 부양해야 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오빠도 있다. 당신은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어쩌면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취약계층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국가의 안전망이 필요한 사람이 아닐까. 매일매일 들려오는 사람들의 부고 소식에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탄식과 아쉬움, 두려움과 슬픔, 결국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연합뉴스 


시작은 사람에서, 그리고 함께

'세계 경제가 불황이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두 힘든 시기니 당신도 잘 버텨봐라, 국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딱히 없다. 버틸 수 없다면, 그냥 떨어져라.'

다소 과장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복지는 이 정도 수준이다. 사람들에게 혼자 잘 살아남으라는 메시지만 남겨준다. 불안한 사람들은 저마다 살 방도를 찾아 헤매지만, 세계 경제 위기라지 않은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뿐더러, 혹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미 위기에 처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에 동감한다. 사회 안전망이라는 거대한 제도를 바꿔내야 하는 일이니까, 당장 무언가를 확 바꿔버리는 것은 혁명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아니 혁명이라고 해도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에 보편적 복지 제도가 들어서기까지는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으니까.

지난 19대 총선, 그리고 작년 말 18대 대선에서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복지국가, 또는 생애 주기에 맞는 맞춤형 복지 제도 공약이 등장했다. 그런데 막상 복지국가를 향한 공약을 펼쳐보면, '저런 게 도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혹은 '당최 실현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더 많았다. 정책과 공약에는 '삶'이 보이지 않았다. 삶의 주체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복지국가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일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 2012년 12월 24일 기초생활수급자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복지국가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삶은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이 곧 떨어질 모양새다. 절박한 마음으로 나의 삶터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본다.

그 시작은 사람에 대한, 그리고 삶터와 일터에 대한 관심이다. 내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내 동료의 삶은 어떠한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지에 먼저 관심을 두고 지켜보자. 혹시 당신이 나처럼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라면, '클라이언트'라고 부르는 '취약계층'의 삶을, 어쩌면 나 또는 내 가족과 지인일지도 모르는 그 취약계층의 삶을, 같은 시대와 공간을 사는 '동시대인'으로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사람'을 먼저 보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먼저 말 걸기가 복지국가운동의 시작

먼저 말을 걸자. "거기, 안녕하세요. 잘 지내나요?"

잘 지내는지 서로 확인도 하고,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서로 돕기도 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힘든 점이 무엇인지, 나는 또 어떤 점이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시도해 볼 만한 것들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 운동의 시작이다.

복지 정책은 결코 삶과 동떨어질 수 없다. 또한 어려운 것이 아니어야 한다. 위험천만한 공중그네를 타고 있는 순간, 함께 잘 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다 같이 든든하게 쳐 보자는 시도이자, 실천이다. 그래서 나 그리고 당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을 꿈꾸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면 더더욱 그 순간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함께하자, 함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