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대놓고 노인 우롱한 MB…5년 만에 박근혜도?

2013. 1. 14. 16:3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기초노령연금 재원으로 국민연금 쓰는 건 곤란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 공약 이행 여부를 판가름할 중대한 사안으로 기초노령연금이 떠올랐다. 올해 예산에서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이 부각되었지만, 무상보육은 이명박 정부에서 상당히 진전된 것이었고, 반값등록금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를 반영한 것이어서 특별히 박근혜표 복지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예산 규모에서도 애초 정부안에서 박근혜표로 늘어난 복지 예산은 총 1.7조 원으로 정부총지출 342조 원의 0.5%에 불과하다.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박근혜 복지 공약 이행 여부 판가름할 중대 사안

그런데 기초노령연금은 다르다. 단일 항목으로 7조 원이 추가 소요되는 복지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공약에서 올해 당장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을 기초연금법으로 전환해 기초연금을 도입하고 즉시 모든 노인에게 작년 9만4000원(올해는 9만7000원)인 기초노령연금을 2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공약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이 사안을 다루었는데,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다. 곧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노인들을 우롱하는 일이 벌어질 듯하다.

5년 전 일이 되풀이될 것인가?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둔 날, 이명박 후보는 대한노인회를 찾아 기초노령연금을 20만 원으로 올리기로 약속했다. 이듬해인 2008년부터 도입될 기초노령연금이 약 8만 원으로 정해졌던 터라 노인들은 큰 기대를 품었다. 결과는? 지난 5년간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은 5%로 멈추어 있었고(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기준 5%), 금액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자연증가분만 반영돼 올해 9만7000원이다. 20만 원 공약은 '빈 공약'으로 귀결되었다.

▲ 지난해 6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농민·여성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노인 빈곤 해소와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위한 운동본부(준)'를 발족하고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공약집에 끼어든 문구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운영'

박근혜 당선인은 신뢰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인수위원회에서 애초 공약대로 인상 방안을 재확인하면 될 일인데 왜 이리 논란이 되는 것일까?

숨어 있던 복병이 나타났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집에는 기초노령연금 인상 옆에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운영'이라는 문구가 달려 있다. 선거 기간에 이 문구는 주목 대상이 아니었다. 보통 두 제도를 통합한다고 하면 각각의 제도 특성이 유지된 체 통합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관리 통합이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은 하위 70% 계층을 대상으로 지자체가 관리하고, 국민연금은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국민연금공단이 관리한다. 앞으로 기초노령연금이 전체 노인에게 지급되는 완전 보편연금으로 완성되면 국민연금과 동일하게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삼는 제도가 되므로 단일 기관에서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약집에 담긴 '통합 운영'은 관리 체계의 통합, 즉 국민연금공단으로 통합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통합 방안'의 실제 내용을 숨긴 공약은 반칙

물론 기존 제도의 현격한 변화가 수반되는 통합 운영도 가정할 수 있다. 국민연금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겐 다소 복잡한 내용이지만, 기초노령연금이 인상되는 만큼 국민연금 급여를 낮추거나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는(예: 현행 균등지수 하향 혹은 폐지) '급여 체계 통합'이 있을 수 있고, 더 나아가면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재정을 함께 운영하는 '재정 통합'도 가능하다.

이러한 통합들은 기초노령연금 인상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제도 변화이기에 박근혜 당선인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당연히 구체적 내용을 공약집에 담았어야 한다. 어떤 경우든 다수 국민연금 가입자의 급여 권리를 약화시키는 방안으로, 표 계산으로 따지면 명백하게 감표 요인이기에 특히 그러하다. 공약집에는 이에 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렇다면 이건 반칙이다.

마침내 인수위원회에서 숨어 있던 통합 방안이 등장하고 있다. 인수위원회가 공식 발표를 하지 않는 까닭에 명확한 내용으로 확정하기는 어려우나 언론 보도에 의하면 '급여 체계 통합'과 '재정 통합'이 모두 검토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중에서도 인수위 관계자 발언으로 구체적인 수치까지 알려진 방안은 '재정 통합'이다. 이 글은 이 방안에 한정해 살펴보겠다.

국민연금 보험료 일부를 기초노령연금 재정으로 사용하자고?

인수위원회가 검토하고 있는 재정 통합은 기초노령연금의 재정을 국민연금 보험료에서 일부 가져다 쓰는 통합이다. 전체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하기 위해선 현행 4.3조 원에 더해 7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인수위원회 관계자가 이 7조 원 중 20~30%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30%로 가정하면 2.1조 원, 전체 국민연금 보험료의 약 6%가 기초노령연금 지급에 쓰이게 된다(올해 국민연금 보험료 총액 약 33조 원 예상).

인수위원회의 입장에서는 기초노령연금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정 마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 국민연금 보험료를 사용하는 방안에 매력을 느낄 만하다. 현재 국민연금이 미래 연금 지급을 위해 약 400조 원의 적립금을 가지고 있어 당장 연금 지급에도 차질이 생기지도 않는다.

개혁/진보 진영 일부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참여연대 활동을 벌여온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이전부터 이 방안을 주창해 왔다. 지금 수많은 노인들이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수백조 원의 국민연금기금을 쌓아 두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현재 노인 빈곤 완화를 위해 국민연금기금을 기초노령연금 재원으로 사용해야 하며, 이로 인한 미래 연금 지급 재정은 후세대들이 사회적 합의로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국민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400조 원의 국민연금 적립금을 쌓아 놓고 노인 빈곤을 외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인수위의 방안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논의 여지를 열어두었다.

"나라 빚 내지 않는 재원 조달" 원칙은 어디로 갔는가?

나는 기초노령연금 재원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사용하는 방안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한다. 앞으로 개혁/진보 진영에서도 내부 논란이 있을 듯해 반대의 근거를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첫째, 이 방안은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위반이다. 박 당선인은 재정 공약에서 재정 조달 3대 원칙을 천명했다. 그 첫 번째가 "나라 빚 내지 않는 재원 조달"이다. 우리가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이후 우리가 받을 연금을 위한 지급 준비금이다. 지금 이 돈의 일부를 사용해버리면 그만큼 후세대들이 우리의 연금 지급을 위해 보험료든 세금이든 더 내야 한다. 이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것과 동일하게 현행 복지를 위해 미래 세대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일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에서 승리하자마자 재정 조달 공약으로 선언했던 첫 번째 원칙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있다. 올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 박근혜표 복지를 위해 '국채 발행'을 제안하더니 이번에는 후세대의 국민연금 재정 부담을 늘리려 한다. 그토록 신뢰를 내세우는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공약 원칙을 이렇게 뒤집어도 되는 일인가? 이럴 것이면 애초 "미래 세대 부담을 늘려서라도 기초노령연금을 인상하겠다"고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의 평가를 받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후세대 부담을 더 늘리는 건 곤란

둘째, 기초노령연금 지급을 위해 국민연금을 사용하는 건 지금도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일이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에서는 미래 세대로 갈수록 재정 부담이 커진다. 2007년 국민연금법 개정 이전에는 가입자들이 자신이 낸 것에 비해 평균 2.4배를 급여로 받았고, 2007년 개정으로 급여가 낮아졌지만 여전히 납부한 보험료에 비해 평균 1.8배의 급여를 받는다(현재가치 기준). 우리가 낸 것의 1배를 넘어서는 0.8배만큼이 후세대 어깨로 누적되고 있다.

물론 연금은 세대 간 연대 제도다. 현재 부모 세대의 연금 재정을 자식 세대에게 의존하는 게 기본 원리이다. 하지만 이때에도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자식 세대가 각각 부양하는 책임 몫이 비슷해야 공평하다. 후세대로 갈수록 부양 몫이 늘어만 가는 방식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지금도 그러한데, 인수위원회 검토 방안처럼, 현재 노인을 위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사용해버리면 그만큼 국민연금의 미래 적립금이 줄어들고 후세대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당장은 국민연금 보험료의 6%를 기초노령연금 재정으로 사용한다지만, 장차 한국의 고령화율이 지금보다 거의 4배나 높아지면 국민연금 보험료의 1/4이 기초노령연금으로 흘러가야 한다. 국민연금에 심각한 재정 불안이 야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후세대들이 보험료를 더 내거나 세금을 올리면 되는 일이라고? 젊은 세대가 고분고분 이를 수용할지도 의문이지만, 우리 세대는 보험료든, 세금이든 늘리지 않으면서 그 책임을 자식들에게 넘기는 건 무책임할 일이다. 아니 무책임을 넘어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

국민연금 신뢰가 훼손되는 만큼 민간 생명보험 커갈 것

셋째, 이 방안은 국민연금의 신뢰를 훼손하고 그만큼 민간생명보험 체제를 강화시킬 것이다. 지금도 국민연금기금 소진론이 위력을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방안이 시행되거나 논란이 되는 것만으로도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

모든 공적 사회보험은 시장 보험과 경쟁 관계를 형성한다. 국민들은 공적 보험 혹은 시장 보험을 통해 질병이나 노후에 대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이 취약한 만큼 민간 의료보험은 성장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계속될수록 민간 생명보험은 자신의 영역을 유지하게 된다.

민간 보험 성장에 긍정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있다. 기업들은 보험료의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보험 시장이 육성되니 꿩 먹고 알 먹기다. 하지만 다수 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은 하나 과도한 보험료에 시달려야 한다. 소득 재분배 기능이 없기에 가난한 사람에겐 더욱 불리한 제도가 민간 보험이다. 이러한 민간 보험이 성장하는 가장 좋은 환경이 무엇인가? 바로 공적 보험에 대한 불신이다.

2012년에 국민연금이 가입자와 사용자 몫을 합쳐 거둔 보험료가 총 28조 원이지만, 민간 생명보험 회사는 가입자에게서만 무려 90조 원을 거두었다. 왜 국민연금에 비해 돌아오는 급여가 적은 삼성생명에 사람들이 몰릴까? 신뢰의 차이이다. 국민연금의 후한 급여 특성이 알려지며 조금씩 신뢰가 생기고는 있지만, 여전히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다. 당분간 국민연금이 더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이때, 미래 재정 불안을 조장하는 논의는 피해야 한다. 이는 시장 세력의 이익만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재정 조달 편법 용인은 재정 체계 혁신 열기 빼는 일

넷째, 기초노령연금을 비롯해 복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의 편법 조달은 대한민국 재정 구조 혁신에너지를 약화시킨다. 박근혜 당선인이 내건 지출 구조 개혁,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개혁 등은 무척이나 중요한 과제들이다. 이는 박근혜 복지 공약의 이행 수단이자 대한민국의 국가 인프라를 혁신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재정을 사용하는 편법을 용인하는 건 대한민국에 절실한 재정 구조 혁신 열기를 빼는 일이다. 지금 인수위원회가 해야 할 과제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가져다 쓰는 편법이 아니라 포괄적으로만 선언되었던 재정 개혁 공약의 구체적 로드맵을 마련하는 일이다. 인수위원회는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가라.

'통합 운영' 논란을 빌미로 기초노령연금 인상 지연 꼼수 가능

다섯째, 이 방안이 계속 공론화될 경우 그만큼 박근혜 정부 임기 중 기초노령연금 인상이 지연될 수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사용했던 꼼수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기초노령연금 인상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공식' 이유는,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재구조화 작업'('통합 작업'의 다른 이름)과 연동하려 했는데 이것이 진척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연금 재구조화와 관련해 아무런 작업도,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도 이것을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거부하는 이유로 삼았다. 박근혜 정부에선 어떨까? 동일한 정치세력, 동일한 관료, 동일한 전문가들이 정부를 인수하는데 과연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기대보단 우려가 더 크다. 지난해 4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총괄 지휘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내걸지 않았다. 일찍이 2002년 대통령 선거부터 새누리당이 선거마다 주장해왔던 공약 카드를 접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단일 사안으로 7조 원이 더 드는 공약이 불편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대선 공약으로 다시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이 등장했다. 600만 명에 이르는 노인 유권자의 위력이다. 박빙을 다투는 선거에서 노인 표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박근혜 후보는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 초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인상 공약을 발표했다. 이명박 후보가 그랬듯이, 대한노인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9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총선에서 접었던 기초노령연금 카드를 6개월 만에 꺼내들면서 혹시 공약집에 명시된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 문구를 안전핀으로 여기진 않았을까? 국민연금 재정을 끌어다 쓰든, 국민연금의 급여 체계를 수정하든 엄청난 국민적 논란이 벌어질 '통합 방안'을 조건부로 삼으면 실제 공약 이행이 미뤄질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봄에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진행되는 국민연금재정추계 작업 결과가 발표된다. 작년부터 가동된 관련 연금위원회가 장기 국민연금 재정 전망과 제도 개선 방안을 공개하면, 국민연금 관련 논란이 커질 게 뻔하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연금 재구조화'라는 이름 하에 아무런 개혁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그것을 기초노령연금 인상 유예의 이유로 삼았듯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역시 '통합 운영'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지연시키는 꼼수! 이 불길한 예감공연한 걱정일까?

선 기초노령연금 인상 이행 이후 연금 제도 개혁 논의해야

아직 인수위에서 국민연금 재정 활용 방안이 확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논란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어떠한 꼼수도 작동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의 상식에 따라 약속을 지켜야 한다. 기초노령연금 인상과 연동된 '통합 운영'이 관리 체계의 통합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곤란하다. 만약 관리 체계 통합을 넘어서는 '통합 운영'을 추진하려면, 그것은 기초노령연금 인상과 별개의 사안이다. 국민들은 기초노령연금 인상 공약 옆에 붙은 '통합 운영' 문구를 그렇게 이해하지도 않았다.

인수위원회는 조건 없이 공약대로 전체 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는 방안을 확정하라. 이는 여야 후보가 유사하게 내걸었던 공약이므로 임시 국회에서 어렵지 않게 합의될 수 있다. 만약 재정 통합이든, 급여 체계 통합이든 이를 추진하려면 이는 기초노령연금 인상과 분리해 다루어야 한다.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먼저 이행하고 이후 연금 제도 개혁을 두고 국민적 논의를 벌여야 한다.

1970년대 방위세, 1980년대 교육세, 이제는 '복지세' 시대

그렇다면 지금 인수위원회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국민연금 보험료 활용이라는 편법이 아니라 애초 공약에서 선언한 재정 조달 방안을 구체화하는 일이다. 철저한 지출 구조 개혁,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는 너무나도 중요한 대한민국 인프라 혁신 과제이다. 필요하면 각계각층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세금정의세우기국민본부'(가칭)를 구성해 추진하라.

이와 함께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는 증세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곧바로 이행해야 하는 복지 지출과 달리 재정 지출 개혁은 재정 조세 인프라를 손봐야 하는 일이라 단기간에 재정 조달 효과를 내기 어려운 속성을 지닌다.

게다가 지출 개혁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규모에도 절대적 제한이 있다. 올해 한국의 재정규모는 GDP의 약 30%로 OECD 평균인 약 42%에 비해 턱없이 작다. 올해 GDP를 기준으로 무려 약 160조 원이 부족하다. 이에 재정 내부 구조 개혁도 필요하지만 절대 규모를 늘리는 세입 확대에 나서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다.

개별 세목의 증세 논의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복지 확대 시대에 맞추어 복지목적세 도입을 검토할 때이다. 1970년대에 자주 국방을 위한 방위세, 1980년대에 미래 세대 육성을 위해 교육세를 도입했듯이, 이제는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위한 '사회복지세'의 시대이다.

박근혜 당선인, 단호한 재정 개혁과 증세가 정공법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대한민국 복지국가' 꿈을 이야기해 왔다. 지금 빈곤에 시달리는 다수 노인의 복지 확대에 나서는 일, 대한민국을 건설해 온 노인들에게 보편 복지 방식으로 기초노령연금을 제공하는 일은 그 꿈을 향한 발걸음이다.

동시에 그 꿈은 대한민국 재정 혁신과 함께 가야만 이룰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한 재정 규모인데도, 복지국가를 말하면서 국채 발행, 국민연금 보험료 등 편법에 의지하는 건 곤란하다.

공약대로 단호하게 재정 지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복지국가에 걸맞은 재정 확충을 위해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증세를 제안하라. 이것이 공약의 신뢰를 살리고, 국민연금의 미래를 지켜는 일이다. 복지국가 꿈을 이루는 정공법이다. (사회복지세와 연금 제도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필자의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의 "제2부: 복지국가 재정과 시민 참여", "제4부: 노후 걱정 없는 사회"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