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박근혜, 연금에 이어 의료비 공약마저 뒤집나

2013. 2. 11. 15:2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4대 중증질환 공약 파기 나선 인수위

 

김종명 가정의학과 의사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의료팀장 

 

연일 박근혜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암, 희귀난치성 질환, 뇌 질환, 심장 질환) 100% 보장 약속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보도가 나온다. 기초노령연금도 올해부터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뒤집은 데 이어 의료 공약도 수정하려 할 조짐이 보인다.

언론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의 의료 공약에 필요한 재원이 1조5000억 원이 아닌 5조4000억 원이라는 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를 인용하며 현실성이 없다는 식의 보도를 해댄다. 이런 비판에 부응하여 대통령직 인수위조차 간병 서비스,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는 보장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도 나온다. 사실상 4대 중증질환 100% 약속을 파기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4대 중증질환 공약 파기에 골몰하는 인수위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약속에 드는 재원 연간 1조5000억 원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2012년 기준으로 암 질환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출한 진료비만 4조 원에 이른다. 보장률이 70%이니 암 질환만 100% 보장을 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최소 1조7000억 원인 셈이다. 1조5000억 원은 4대 중증질환은커녕 암 질환만 100% 보장하기에도 부족하다.

심지어 이 재원조차도 공약집의 복지 재정 소요 추계에는 빠져 있다. 어떻게 재원 없이 4대 중증질환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말인가. 결국 경증질환 보장성을 줄여 재원을 마련하든지 건강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방안 역시 공약집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기초노령연금의 차등 지급이 공약집에 명시되어 있지 않듯이.

대선 후보가 제시한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재원 방안에 대해서는 대선 전에 따져보아야 했다. 그런데 대다수 보수 언론은 이에 대해 냉철한 분석은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야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를 한다. 마치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인상이 강하다.

사실 박근혜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정책은 보편 복지가 아닌 선별 복지다. 야권의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 공약은 질병에 상관없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둔 데 반해,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은 특정 질병에 한해 100% 보장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고액진료비 환자 중 4대 중증질환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여 국민의 의료 불안을 해결해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연합뉴스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료)를 보장에서 제외하겠다고?

언론 보도로는 인수위는 4대 중증질환의 100% 보장 약속에서 3대 핵심 비급여를 제외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약속에서 약간 후퇴하는 정도가 아니다. 사실상 공약 폐기에 가깝다.

암 질환과 희귀난치성 질환의 법정본인부담률은 현재도 5-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암 질환의 보장률은 현재 70.4%밖에 되지 않는다. 비록 평균적인 국민건강보험 보장률 62.7%보다는 높지만, 암 질환의 특성상 천만 원-수천만 원의 고액진료비가 소요돼 환자의 부담이 상당하다. 높은 비급여 진료비 비중 때문이다. 그 비급여 중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다. 간병료는 비급여 항목에도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이 3대 비급여를 보장에서 제외하면 암 질환의 보장성 확대의 의미는 대폭 축소된다. 

 


민간의료보험에 날개 달아주나?

박근혜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약속이 폐기될 경우, 가장 반기는 쪽이 있다. 바로 민간보험업계다. 박근혜 당선 다음날 보험업계의 주가는 건설, 전기·가스업에 이어 세 번째로 껑충 뛰어올랐다. 시장은 박근혜 당선으로 보험업이 수혜주가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100만 원 상한제 공약은 민간의료보험 시장을 위축시키겠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의료 공약은 실질적인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개선하지 않을 것이기에 민간의료보험의 판매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 기대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박근혜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논란이 되자, 여기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보험연구원의 김대환 실장은 4대 중증질환 무상의료 정책을 폐기할 것을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4대 중증질환 무상의료마저 무산된다면 영리 보험사는 민간의료보험 판매에 날개를 다는 셈이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이 아닌 민간의료보험의 팽창은 국민의 의료 불안을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과중한 보험료 부담으로 가계 부담이 되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 20만 원 정도의 민간의료보험료를 지출하고 있는데, 이는 가구 소득 대비 6.4%에 이른다. 국민건강보험료의 2배가 넘는 규모다. 금융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전체 국민의 60%인 30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보험료로 1인당 월 5-7만 원씩을 부담하고 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8조-25조 원이다.

이렇게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의료 불안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주로 젊고 건강한 층이다. 그런데 의료비 지출은 대부분 고령층에서 발생한다.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의 65% 이상은 65세 이후에 지출한다. 젊은 층이 민간의료보험에 아무리 많이 쏟아 붓더라도 나이가 들어서 의료비를 해결하지 못한다. 65세 이후 연령층이 실손의료보험과 같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수십만 원의 보험료를 부담(80세 기준 월 60만 원)해야 하는데, 소득이 없는 노령층이 비싼 보험료를 감당하긴 어렵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100만 원 상한제로 국민의 의료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는 데 필요한 재원이 14조 원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현행 건강보험 재원 구조에 따라 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그중 국민이 부담해야 할 몫이 6.5조 원(나머지는 사업주 4.4조 원, 국고지원 3.3조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국민이 내고 있는 실손의료보험료의 3분의 1 정도만 건강보험료로 돌려도 가능한 일이다.


4대 중증질환 국가 책임 약속을 지켜라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전에 '약속'을 강조한 바 있다. 자신의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이다. 비록 선별적 접근 방식이고 혜택이 제한되긴 하지만,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을 100%로 하겠다는 약속만큼은 최소한 지키길 바란다.

우리는 4대 중증질환뿐 아니라 모든 질환으로 인한 의료비 불안을 완전히 해결하기를 바란다. 이 과제는 우리의 몫이다. 박근혜 정부에 기대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요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