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8. 18:25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박근혜, 공약 사수해야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재정 논란, 증세로 확장되나 ③] 오건호·정창수 대담
이대희 기자,최하얀 기자
'박근혜호'가 출항 전부터 암초를 만났다. 복지 공약 실행을 위한 재정 계획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 박 당선인은 "증세는 없다"던 말을 철회하고 공약 이행을 위한 진정성을 보이거나, 강조하던 자산인 '신뢰'의 구호를 버리고 공약을 포기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순조롭지 않은 미래가 이미 박 당선인을 기다리고 있다. 공약을 철회할 경우, 곧바로 새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크게 흔들리게 된다. 신뢰를 잃고, 국민의 지지를 잃으며, 그에 따라 '국민대통합 시대'는 헛구호에 그치는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약 이행도 쉽지 않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벌써부터 박 당선인에게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 무엇보다 증세 카드를 꺼낼 경우, 강력한 조세 저항이라는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박 당선인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프레시안>은 3편에 걸쳐 재정 확충 논란을 다룬다.
이번 ③편에는 지난 21일 서울 마포 서교동 <프레시안>에서 진행된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과 정창수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나라살림연구소장)의 대담을 싣는다.
이들은 박 당선인의 재원 조달 계획에서 '지출 구조 개혁' 부문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물음표를 남겼다. 지출 구조 개혁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나, 필요한 재원을 전부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크다는 분석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대표되는 세정 개혁 방안 역시 기대만큼의 큰 효과는 없을 것이란 설명도 이어졌다. 그러면서 이들 역시 <프레시안>이 해법을 구한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증세'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번 논란을 슬기롭게 이겨낼 경우, 박 당선인은 강한 권한을 갖고 '새로운 복지국가 건설'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표현했다. 다음은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재정 논란, 증세로 확장되나
<1> 기로에 선 박근혜…공약 포기냐, 증세냐
<2> 박근혜, 부자와 서민 중 누구에게 더 거둘 건가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복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조달하겠다고 밝힌 재원 총액은 134조5000억 원이다. 임기 5년간 매년 27조 원씩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절반이 넘는 71조 원을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하고, 48조 원은 세제 개편과 세정 개혁을 통해 마련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별도의 증세 없이 복지 재정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현실성이 있나?
정창수 : 이명박 정권 초기가 떠오른다. 이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낭비성 국가 예산을 한 해에 20조 원씩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구체적 방안은 취임 이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나온 게 없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 박 당선인의 재원 조달 계획은 굉장히 추상적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해 지난 5년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든다.
오건호 : 지금 밝힌 재원 조달 계획만으로는 실현 가능성 여부를 완전히 검증할 수 없다. 다만 '지출 구조 개혁' 부문에서 원하는 만큼 재원을 조달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대통령취임식준비위원회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출 구조 합리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프레시안 : 지출 개혁에선 무엇이 문제인가. 박 당선인은 정부 재량지출을 7% 일괄 축소하고(48.5조 원), 지출을 구조조정해서 7%(8.8조 원)를 추가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대상에는 사회기반시설(SOC) 투자, 산업 지원 등 경제개발 예산이 올랐다.
오건호 : 지출 구조 합리화란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당장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한데, 지출 구조 합리화 효과는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나타난다.
토목 사업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토목 사업은 보통 정부가 민간과 계약을 체결해서 진행한다. 정부가 직접 예산을 지출하는 게 아니다. 이와 더불어, 이미 시작한 토목 사업을 멈출 수는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에는 신규 사업만 오를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도 그 규모도 크지 않고 시간도 제법 걸린다.
정창수 : 조금 생각이 다르다. 박 당선인의 의지에 따라 지출 개혁을 통한 재원 확보 효과가 달라질 것이다. 서울시에서 지출 개혁을 진행해보며 불가능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편집자 : 정창수 교수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캠프에서 재정·예산 부문을 맡았다. 정 교수가 소장으로 있던 좋은예산센터는 지난 2010년 전임 서울시정 연속평가보고서 발표에서 재정 분야를 담당했다.) 7% 축소는 가능한 수준이라고 본다.
다만 일괄 축소는 문제가 있다. 만약 관료 개혁을 하지 않은 채 정부 재량 지출을 일괄 축소하면 '요요현상'이 생길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얼만큼 줄일 것인가에 관한 논의와 지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행정 공무원들은 기계적으로 예산을 일부 축소한 후, 나중에 다시 늘린다. 이런 현상은 김대중 정부나 이명박 정부에서 예산 절감 노력을 했을 때도 발생했다.
오건호 : 일단 지금 밝힌 지출 개혁 계획이 실현 가능하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짜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이 안 나오니,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의구심이 더 커지는 것이다. 특히 당선인 주변, 즉 보수 진영에서 먼저 공약의 현실성이 없단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 '재정안 진짜 부실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커졌다.
우리는 여태껏 제대로 지출 합리화를 꾀해 본 적이 없다. 지금 박 당선인이 내세운 지출 개혁 계획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어느 정치 세력도 가져본 적 없는 호기를 박 당선인이 맞았다. 게다가 집권 초기이지 않은가. 이럴 때 강력한 지출 구조 개혁, 재정 인프라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정창수 : 복지 목적을 내려놓고 재정 개혁이란 목적만 보더라도 큰 의미가 있다. 한 번 제대로 재정 시스템을 바꾸면, 이후에 그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다. 증세를 하든 다른 재정 확충 방안을 찾든, 개혁된 재정 시스템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재정 지출 계획이 꼭 성공적으로 이행되길 바란다.
지하경제 양성화, "과대 포장 그만해야…"
프레시안 : 세제 개편과 세정 개혁을 통한 세입 확충은 어떻게 평가하나. 박 당선인은 비과세·감면 축소 또는 정상화를 통해 15조 원, 세정 강화를 통해 탈루 세금을 축소해 28.5조 원, 그리고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해 4.5조 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 정창수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나라살림연구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정창수 :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탈루 세금 축소, 즉 지하경제 양성화는 결단과 의지를 필요로 한다. 탈세를 가장 많이 할 것으로 추정되는 경제 주체는 재벌이다. 박 당선인이 재벌을 상대로 강력한 국세 행정을 펼칠 수 있을까. 지지 기반의 저항에 부닥쳤을 때 결단할 수 있을까.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미국, 스웨덴 등보다 큰 편이다. (편집자 : 지난해 10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이 밝힌 바로는, 한국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26.8퍼센트(약 346조 원) 수준이다. 한편, 미국은 8.6%, 스웨덴은 18.8% 규모로 조사됐다.)
우리보다 지하경제 규모가 작은 이들 국가에선 한 번 (세금 탈루가) 걸리면 패가망신할 정도의 법 집행이 이루어진다. 박 당선인이 원하는 대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려면, 온갖 저항, 정치적 이해관계 싸움, 복잡한 국세 행정 문제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오건호 : 지하경제를 주로 형성하고 있는 쪽은 재벌이 아니라 영세·자영업 부문일 것이라고 본다. 시장경제 바깥에 존재하는 영세 중소상인들이다.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과세 대상으로는 굉장히 취약하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큰돈을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연간 체납액 5~6조 원과 연간 결손 처분 7~8조 원이 있다. 제법 크다. 하지만 국세청도 체납 세금을 징수하는 데 항상 애를 먹는다. 국세청이 결손 처리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금을 당장 납부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의 체납이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이면 결손 처리를 잘 안 해준다.
게다가 박 당선인의 계획을 봐도, 지하경제 양성화로 고작 1.6조 원 수준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편집자 : 박 당선인은 한국 지하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4% 수준이라고 추정했다. 이 가운데 6%를 양성화하겠단 게 박 당선인의 계획이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커다란 재원 조달 방안이 아닌데도, 과장돼서 논의되고 있다. 마치 지하에 엄청난 숨겨진 보물이 있을 것처럼 얘기하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을 것이다.
국채 발행? "절대 안 될 소리"
프레시안 : 국채 발행 방안도 잠깐 고개를 들었었다. 지난 2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새해 예산안에서 당초 검토됐던 국채 발행이 백지화되자, "국채 발행을 못 해 서민 경제 유지를 위한 필요 사업을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만약 박 당선인이 지금 내놓은 복지 재정 조달 계획에 따라 필요 재정을 마련하지 못하면, 국채 발행이 또다시 거론될 수 있다. 국채 발행 방안은 어떻게 보나?
오건호 : 국채 발행은 최후의 순간에 쓰는 카드다. 물론 경제 위기 국면이나 복지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때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적자 재정이란 원론적 차원의 얘기다.
국채 외에 다른 재정 확충 방안이 아직 있지 않나. 비록 부족하긴 하지만, 박 당선인의 지출 개혁안은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은 제대로 국가 재정 지출 합리화를 꾀해본 일이 없다. 이는 복지 확대를 앞두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 지출 개혁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조세 부담률(국내총생산 대비 조세 부담 총액 비율)을 올려 재정을 확충할 수 있다.
만약 그러고 나서도 재원이 부족하면 그때 국채를 얘기하는 게 맞다. 지금부터 국채 발행으로 문제를 풀면, '지출 합리화'란 시대적 과제는 또 무산된다.
정창수 : 국채 발행은 최후의 순간까지 반대하고 싶다. 국채는 굉장히 역진적이다. 이자는 금융자본이 대부분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다음 세대로 간다. 화급히 불을 꺼야 하는 금융 위기가 오거나, 장기적 미래 투자라는 관점에서 발행하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채 발행은 반대다.
돈이 없다고, 상황이 어렵다고 슬금슬금 국채 발행이 다시 논의될까 걱정이다. 지금 재원 조달 계획을 박 당선인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게, 준비를 안 해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국채 발행을 위한 사전 '바람 잡기'라는 느낌도 든다.
MB의 부자 감세 철회하면 증세 효과 나타날까?
프레시안 : 그럼에도 박 당선인은 '증세 없는 재정 확충'을 외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상당 규모의 감세를 단행했는데, 증세 없이 재정을 확충하는 게 가능하겠나.
정창수 : 박 당선인이 '증세 없는 재정 확충'을 얘기했지만, 사실 지금 나온 재원 조달 계획에도 증세안은 포함돼 있다. 비과세·감면 축소 및 정상화가 그렇다. 줄였다 늘리는 것이라 증세가 아닌 것처럼 얘기하지만, 어쨌거나 이 자체로 증세다. 다만 비과세·감면 항목을 제외하면, 증세안이 안 보인다.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을 어느 정도 마련하려면,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을 되돌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 말기 들어 조세 부담률이 다시 떨어졌다. (편집자 : 현재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9.8%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에 크게 못 미친다. 노무현 정부 때 조세 부담률은 21.6%였다.)
국내총생산(GDP)을 1300조 원으로 봤을 때, 1%면 13조 아닌가. 2%면 26조 원이고, 5년이면 65조 원이다. 결국, 조세 부담률을 올려야 지금 필요한 재정이 조달된단 얘기다. 가장 큰 규모의 재원은 증세, 즉 감세 철회를 통해서 마련할 수 있다.
오건호 : 감세를 철회한다고 큰돈이 모일까. 아니라고 본다.
▲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프레시안(최형락)
지난 대선 당시 박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내놓은 재정 확보 방안에 대한 사후적 평가를 해보자. 박 당선인이나 문 전 후보나 재정 공약은 오십보백보로 부실했다. 다만 결정적 차이는 증세 여부였다. 당시 문 후보는 이를 우회적으로 '부자 감세 철회'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선거일에 거의 임박해서 '부자 감세 철회 100조 원'이란 게 나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자 감세로 줄어든 세수가 100조 원가량 될 것이란 계산이었다. 이를 철회하면 100조 원을 만들 수 있다고 당시 문 후보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부자 감세 철회로 100조 원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100조 원을 얘기한 민주통합당이나 일부 시민사회계의 생각과 달리, 이명박 정부가 2008년 세운 초반 감세 계획을 그대로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9년 들어서 추가로 세제를 개편하며 감세안이 일부 보류되거나, 심지어 거꾸로 증세도 됐다. 소득세만 놓고 보면, 노무현 정부 때 최고 세율이 35% 수준이었는데, 이게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엔 내려가다가 지금은 38%까지 오른 상태다. 그러면서 중간 계층의 소득세율은 내려갔고, 고소득 계층은 올랐다. 소득세만 보면 이미 부자 증세가 됐다.
법인세의 경우, 최고구간 법인세율 목표가 20%였는데 현재 22% 수준에 멈춰 있다. 대기업 최고세율 감세를 두 단계로 진행하려 했는데, 한 단계만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전 기간을 두고 감세 효과를 살펴보면, 100조 원은 황당한 금액이었다.
'부자 감세 철회'란 구호만으로는 적극적 증세 논의를 끌어낼 수 없다. 감세 철회를 하는 데 있어 목적세, 법인세, 중간계층 세금 부담 정도 등등 세부적 논의가 진척돼야 한다. 너무 '퉁'으로 부자 감세 철회만 얘기해서는 타성적 담론이 돼버리지 않겠나.
사회보장세 신설, "칸막이 효과 우려되나, 가능한 대안"
프레시안 : 결국 기존 감세 정책을 되돌려 재원을 확보하는 것에 더해, 추가 증세가 필요한가? 지난 16일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 원장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박 당선인의 공약인 '중산층 70% 복원'을 위해서는 내년부터 2017년까지 추가 재원 105.5조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보장세 신설까지 주문했는데?
오건호 : 보사연의 발표가 대체로 타당했다고 본다. 우선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 특히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위한 재정이 과소 추계됐다고 정면 반박한 부분을 보자. (편집자 : 복지 공약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된 게 기초노령연금이었다. 박 당선인은 기초노령연금법을 올해 안에 기초연금법으로 전환해, 매달 만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현재 기초노령연금의 두 배인 2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작년 기준으로 기초노령연금은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만 선별적으로 월 9만7000원을 지급했다.)
박 당선인 측은 이 공약에 4년간 19조7139억 원(지방비 포함)이 필요하다고 추산했으나, 보사연은 내년에 9조7300억 원이 추가로 필요하고 2015년 10조5440억 원, 2016년 11조5360억 원, 2017년 12조7030억 원 등으로 점차 액수가 불어나 임기 말인 2017년까지 총 44조5130억 원의 재원을 새로 마련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인상액이 가입자 평균 소득과 연동돼 있다. 그리고 평균 소득 연동률이 물가 상승률보다 조금 높다. 이걸 경상금액으로 계산하면 정부 부담 증가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이번 보사연 계산은 시민사회계 계산보다 더 많이 나왔다. 이 추계가 타당하다고 본다.
또 최 원장이 사회보장세 신설을 언급한 것도 시의적절했다. 사회보장세 신설은 증세 저항을 넘어서기 위한 유용한 방안이다. 하지만 사회보장세를 부가가치세(생산 및 유통과정의 각 단계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에 대하여 부과되는 조세·VAT)에 부과하겠다고 했는데, 이건 적절치 않다. 직접세에 부과해야 한다.
정창수 : 국책연구기관들은 그간 꾸준히 한국의 부가가치세가 다른 나라보다 낮다고 하면서 증액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실제 우리보다 적은 나라는 일본 정도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세금을 늘리지 않고 부가가치세만 올리면 국민적 저항이 클 것이다. (편집자 : 한국의 부가가치세율은 현재 10%다. OECD 평균은 18.5%. 회원국 가운데 부가가치세 세율이 10% 이하인 나라는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10.0%), 스위스(8.0%), 캐나다(5.0%), 일본(5.0%)이 있다.)
프레시안 : 조세 저항을 피할 수 있을까. 감세 철회만 한다고 해도, 저항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게다가 저항을 줄이려면 정부가 국민에게서 신뢰받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겐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있다.
오건호 : 불신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재정 확충 방안 마련에 행정부만 고군분투해선 안 된다. 납세자 참여 없이 행정부만 세정 개혁을 하면, 또 '어디에 숨겨주는 것 아닌가'란 의심을 하게 된다. 따라서 행정부와 납세자가 지출 개혁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세금 정의 국민본부'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행정부와 납세자가 함께 지출 개혁을 하고, 지하경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는 가장 빠른 프로세스다.
정창수 : 그래서 여야 합의도 중요하다. '모든 이를 위해 증세하자'라는 합의를 공동으로 끌어내야 한다.
아울러 사람들이 복지 재정 증가에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 경제 형편이 어려우니 일단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되면 나아지겠지'란 생각을 했고, 그러고 나서는 '2만 달러 되면 나아지겠지'란 생각을 했다. 이런 '미루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구매력 지수 기준 국민소득(물가와 환율이 동등하다고 가정할 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PPP)으로 보면, 한국의 소득 수준은 이미 일본, 프랑스와 비슷하다. 현실 인식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단 말이다.
프레시안 : 증세, 어떻게 가능하겠나?
오건호 : '복지목적세'를 도입할 때가 왔다. 1970년대에 방위세가 있었고, 1980년대에 교육세가 있었다면, 이제는 복지세의 시대다. 복지가 시대 가치가 됐으므로 가능하다고 본다.
복지목적세는 따로 세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소득세, 법인세 등에서 일부를 떼어가는 형식이 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직접세를 다소 늘려야 한다. 4대 사회보험은 보험료를 증액해 얻고, 복지 재정은 일반회계에서 복지세로 충당하면 좀 더 가시적으로 복지 경로를 보여줄 수 있겠다. 조세 저항이 물론 강하겠지만, 이 경로가 그나마 저항을 잘 넘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크게 보면, 재정 규모를 지금보다 60조 원가량 늘리는 것인데, 40조 원 정도는 증세로 마련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사회 보험료를 제외하면 증세 규모는 25조 원 정도가 될 것이다. 국민 부담률(세금+사회보험료)로 치면, 약 3~4% 수준이다.
정창수 : 목적세에 대해선 조건부로 찬성한다. 사실 목적세는 '칸막이 효과'를 만든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좋은 세금은 아니다. 목적세는 특정 목적 이외에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는 칸막이식 재정 운용을 야기하기 때문에 재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있다.
다만 일몰 시기를 명확히 하는 등 로드맵을 만들고 이행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가능한 방법이라고 본다.
아울러 국가 재정 건전성도 함께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재정 건전성은 보통 보수의 프레임이다. 진보 진영은 '증세를 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있어서, 건전성을 위한 지출 구조 개혁 얘기를 강하게 못 했다. 그러나 증세 프레임으로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건전 재정을 외쳤던 정권에서 오히려 부채가 증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출 구조 개혁을 안 한 채 감세만 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증세를 시행한 정권에서 부채 증가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감세를 안 해 세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 지난 21일 서울 마포 서교동 <프레시안>에서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과 정창수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나라살림연구소장)가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 재정 조달 계획에 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왼쪽이 정창수 교수, 오른쪽이 오건호 실장.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공약 사수'로 국면 돌파하면 힘 있는 정부 될 것"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초반을 돌이켜보면, 상당히 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됐지만 집권 초기에 촛불집회 등이 벌어지며 바로 힘을 잃었다. 박 당선인도 지금 '공약 포기'와 '증세'라는 갈림길에 선 모습이다. 잘못하면 또 삐끗할 가능성도 있다. 이건 보수, 진보 양쪽에 다 안 좋은 일이다. 박 당선인이 이 국면을 잘 돌파해야 할 텐데.
오건호 : 이 국면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만약 박 당선인이 지금 공약 수정 의사를 들고 나오면 그때부터 레임덕이다. '선거 다시 하자'란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공약 이행을 위해 현 장벽을 뛰어넘으면, 복지도 확대하고 재정 인프라도 혁신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믿고, 복지 확대에 동의하는 국민과 야권을 설득해서 국민적 운동을 펼쳐야 한다. 성공하면 보수 혁신의 계기도 될 것이다. 정당성을 얻고, 기대했던 것보다 힘 있는 정권이 될 수 있다.
정창수 : 아직 박근혜 정부를 향한 국민 신뢰가 크지 않다. 하지만 자기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성공만 한다면 증오의 정치, 무력한 정치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야당과 진보 세력도 따라서 진화할 것이다. 진보·개혁 세력도 박 당선인이 하는 일에 최소한의 지지, 또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박 당선인은 선택을 해야 한다. 기득권 세력 중심으로 반쪽짜리 신뢰를 가질 것이냐, 아니면 공약 사수 노력을 보이며 국민적 신뢰를 얻을 것이냐. 앞으로 6개월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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