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경제와 세상]그러자 예수께서는 우셨다

2013. 1. 28. 18:3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경제와 세상]그러자 예수께서는 우셨다

김영순 | 서울과기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곁에 둘러 앉히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중략) 하늘나라에서의 보상이 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그 말씀을 잘 새겨 둬야 할까요?”/ 그러자 야고보가 말했다/ “그걸 갖고 우리끼리 시험을 쳐볼까요?”/ 그리고 빌립보가 말했다/ “우리가 그 뜻을 잘 모를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중략) 그리고 유다가 말했다/ “그 말씀이 실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바리새인 하나는 예수에게 수업 계획서를 보여 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 가르침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우셨다.” (작자 미상, <수업>)

학기말이면 늘 이 시를 떠올리곤 한다. 한 학기동안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이 엄혹한 경쟁의 시대에 예수라면 과연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셨을까. 혹 또 우시지는 않으셨을까.

 

영악한 유다가 캐물었듯이 이제 대학교육은 실생활과 관련이 있어야만 존재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실생활과 관련해 대학교육의 최종목표는 뭐니 뭐니 해도 취업률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워낙 엄중하다 보니 대학교육의 시장종속 문제에 대해 웬만해선 비판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교수들은 기업과 정부가 요구하는 맞춤식 교육서비스 상품을 공급하며 대학생들의 구직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적지 않은 대학들이 취업률 부풀리기에 혈안이 돼있다. 학생들은 졸업을 미루면서 각종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인문학적 교양마저도 깊이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펙의 일환으로써 요구된다. 대학은 ‘취업이 지상목표인 기업연수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문제는 이렇게 대학이 기업의 요구에 맞추고 맞춰도 학생들의 취업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72.5%였다. 미국 64%, 일본 48%, 독일 36%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반면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4년제 대졸자의 취업률은 54.5%에 그쳤다. 진학자 등을 제외한 실질적 취업률은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현실은 한국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에서와 달리 고등교육이 더 이상 빈곤이나 불평등 문제의 해법이 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한국의 교육문제가 단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님도 여실히 보여준다. 과열 조기교육, 과도한 사교육, 입시위주 교육,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청소년 자살 등의 문제는 사교육을 금지하거나 일제고사를 못 보게 하거나 학교현장에서의 징계 혹은 상담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공교육에서 외국의 귀족 사립학교처럼 최고 수준의 외국어는 물론 승마에 스피치까지 가르친다 할지라도, 혹은 서울대를 폐지하고 추첨으로 대학을 갈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지금처럼 좋은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일 수밖에 없다면,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어떤 형태로든 치열하게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교육문제’라고 얘기하는 대부분의 현상들도 이런저런 형태로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다. 예수까지 울게 할 대학교육의 시장화 역시 그 한 단면일 뿐이다.

결국 노동시장에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고 일자리 간의 보상 격차가 작아지고 시장 실패자에게 인간다운 삶과 재기를 위한 적절한 복지가 주어질 때만 교육문제뿐만 아니라 청년실업, 저조한 경제활동참가율, 빈곤, 불평등 문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을 달구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논쟁은 이런 사회적 자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벌써 새누리당 쪽에선 공약 ‘속도조절’ ‘출구전략’ 얘기가 흘러나온다. 인수위원회 구성, 부처 업무보고,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노동관련 의제들은 별 존재감이 없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한다는 박근혜 당선인이 어떤 해법을 찾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