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논단] 박근혜 시대 복지국가 운동 제안

2013. 1. 3. 09:5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경향논단]박근혜 시대 복지국가 운동 제안

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새해가 밝았다.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마음이 부풀기보다는 허전함이 맴돈다. 총선, 대선을 거치면 올해부터 복지국가 길이 열리리라 기대했던 탓이다. 주위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인 듯하다. 어쩌랴. 이제 몇 해 더 치열하게 준비하자 마음을 다듬고 있다. 작년에 무엇을 놓쳤고, 앞으로 무엇에 주목해야 할까?

복지운동의 눈으로 보면 총선과 대선은 부끄러운 선거였다. 시민들의 복지 열망은 넘쳤으나 정작 복지는 쟁점이 되지 못했다. 복지민심을 열매로 영글게 할 복지정치가 빈약했다.

 

우선 핵심 의제가 없었다.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보편복지·선별복지처럼 복지철학과 정책 차이를 보여줄 쟁점이 드러나지 못했다.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는 박근혜 후보의 차별화 해소전략은 효과를 발휘한 반면 복지 원조격인 민주, 진보진영의 의제 기획은 무기력했다.

복지 재정방안도 불명확했다. 야권은 강한 복지 공약을 주창하면서도 그에 따른 재정방안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복지를 바라는 만큼 구체적 실행방안을 보고자 하는 시민들의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번 대선이야말로 반세기 동안 정의롭지 못하게 뿌리박아온 재정조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에도 포괄적인 재정개혁, 선언적인 부자감세 철회에 안주했다.

그 결과 시민들은 관람자로만 내몰렸다. 논점이 생겨야 이를 중심으로 찬반여론이 갈리고 지지자의 세력화가 가능하며 그래야 집권 이후 기득세력의 저항을 물리칠 대중적 힘도 만들어진다. 안타깝게도 복지공약 생산이 캠프 전문가집단의 전유물이 되고 시민들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공약을 접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 부족했던 것들을 채워나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민들이 집중할 핵심 의제를 논의하자. 일회성이 아닌 사회제도 개혁을 수반하는 의제로서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가 어떨까? 연 40조원으로 지출 규모가 가장 크고 5000만 국민 모두에게 해당되는 복지 과제가 바로 병원비이다. 고령화시대 시민들의 병원비 불안은 갈수록 커지지만 민간의료보험의 시장 보호를 위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는 게 박근혜 정부이다. ‘민간의료보험 대신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시작하자.

복지 확충을 위한 시민 증세운동을 펴자. 시민들은 세금에 대해 두 가지 복합 감정을 지니고 있다. 세금 쓰임새에 대한 불신에 따른 조세 저항과 복지 확충을 위한 증세 불가피성이다. 지금까지 저항만이 강조돼 왔고, 증세는 다음 일로 간주돼 왔다. 당연히 재정지출, 과세형평성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겠지만 이제는 복지국가를 향한 증세도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역으로 증세가 재정조세 인프라 개혁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증세가 대중운동으로 전개되기 위해선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개별 세목을 복잡하게 다루기보다는 상징적 단일 세목으로 복지목적세가 적절하다.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세,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세에 이어 지금은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위한 복지세의 시대이다.

시민들이 복지확충 활동에 주체로 나서자. 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회원만이 아니라 복지를 바라는 소박한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시민 참여형 복지활동이 필요하다. 1인당 평균 월 1만원씩 더 내서라도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를 실현하자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일반 시민도 처지에 맞게 내며 상위계층과 대기업의 책임을 압박하는 ‘사회복지세 도입’ 운동을 주목하자. 두 사업 모두 복지민심이 ‘낼 테니 내라!’를 외치는 ‘소득별 보편증세’ 운동이다.

새해가 떠오르듯이 다시 복지국가 꿈을 꾼다. 정치권의 지지부진을 감안할 때, 시민사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금까지 중앙, 지역 복지단체가 각각 사업을 벌여왔다면 이제는 공통 사업 기획이 요청된다. 복지에선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재정에선 ‘사회복지세 도입’을 내걸고, 풀뿌리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복지국가 만들기 운동에 나서자.